무더웠던 여름을 보낸 후 선선해진 바람을 느낄 새도 없이 어느새 가을에 다다랐습니다. 울긋불긋한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길거리를 가득 수놓은 지금, 가을의 볕을 한껏 쬐고 나면 짧아진 해가 서둘러 밤을 부르죠. 쌀쌀해지는 가을 바람에 왠지 모를 쓸쓸한 기분이 들 때를 위한 음악을 소개합니다.

탕웨이의 만추

영화 <만추>는 가을을 위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훈 역의 배우 현빈이 안나 역의 탕웨이를 시애틀행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 보내는 늦가을의 시간을 그린 영화죠. 특히 두 인물이 폐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타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만추>의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입니다. 탕웨이가 중국어로 부른 OST인 ‘만추’는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던 ‘안나’가 본인의 곁을 지켜주던 ‘훈’에게 부르는 곡입니다. 단조로운 기타 선율에 맞춰 담담한 목소리로 씁쓸한 사랑을 노래하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이 곡은 머릿속을 맴돌며 긴 여운을 남깁니다. 마지막 가사인 “늦가을이 끝나지 않은들 뭐 어때요”를 곱씹어 보며 ‘만추’를 들어보기를 추천합니다.

검정치마의 혜야

검정치마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랑을 노래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Diamond’와 나의 사랑밖에 없다고 외치기도 하고, 멈춰있는 시계의 ‘한시 오분’처럼 한곳만 바라보는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죠. 명반으로 꼽히는 검정치마의 3집 <TEAM BABY>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이야기합니다. 그중 ‘혜야’는 검정치마의 보컬인 조휴일이 아내 김신혜를 위해 만든 노래입니다. 그가 서울과 부산을 오고 가며 장거리 연애를 하며 느낀 사랑의 감정을 꾸밈없이 담았죠. 어느 때보다 솔직한 태도로 가사를 읊조리는 조휴일의 목소리는 가을밤의 공백을 메워줍니다. 혹시 지금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이번 가을에는 ‘난 너랑 있는 게 제일 좋아’라는 솔직한 가사처럼 고백해 보는 건 어떨까요?

쳇 베이커(Chet Baker)의 Autumn Leaves

Autumn Leaves’는 가을을 대표하는 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해당 곡은 이브 몽땅(Yves Montand)이 부른 ‘Les Feuilles Mortes’라는 샹송의 원곡에 영어 가사를 붙이며 재탄생했습니다. 조 스태포드(Jo Stafford)를 시작으로 냇 킹 콜(Nat King Cole),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빌 에반스 트리오(Bill Evans Trio)처럼 전설적인 음악가들이 ‘Autumn Leaves’를 본인만의 스타일대로 재해석하며 다양한 버전으로 남았습니다. 그중 20세기 재즈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쳇 베이커의 연주는 트럼펫의 경쾌한 리듬감과 각 악기의 조화가 일품입니다. 트럼펫의 대가인 그가 연주하는 ‘Autumn Leaves’를 감상하며 가을을 맞이하는 건 어떨까요?

방백의 다짐

방백은 종합예술가인 백현진과 음악 감독 방준석이 결성했던 듀오입니다. 그들의 앨범 <너의 손>은 본인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솔직하게 쳐다보려는 어른의 태도를 담았습니다. ‘다짐’은 이별을 겪은 후에 다시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다가 낙담하는 반복적인 패턴의 허탈함과 무력감을 표현한 곡입니다. 특히 ‘그냥 중이나 될걸’이라는 가사는 헛웃음을 짓게 하는 동시에 씁쓸했던 지난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연애를 끊어야겠다는 백현진의 다짐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가는 본인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죠. 많은 관계에 지쳤다면 고요한 가을밤에 ‘다짐’을 들으며 자신을 마주해보는 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