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청소용 천을 든 아이들 (J-Cloth) 아들이 친구와 함께 세차를 도와준 뒤 젖은 천을 양손으로 들어 말리고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날!(O What a Beautiful Day!) 들판 한가운데 선 막내딸이 관객처럼 모여 있는 소 떼 앞에서 높이 뛰어오르고 있다. 즐거움이 물씬 느껴진다.

 

세 자녀와 어머니를 촬영하는 프로젝트 ‘허가(Permissions)’를 20여 년간 진행했다. 그 시작점에 대해 묻고 싶다.

이 프로젝트는 아무런 계획 없이 시작되었다. 그저 내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포착하려 했을 뿐이다. 사진 촬영은 그들을 향한 내 사랑의 표현이었다. 온 마음을 다해, 정성과 열정을 품은 채 셔터를 눌렀다.

프로젝트 제목을 ‘허가’라고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

사진을 촬영할 때는 피사체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카메라가 일상의 일부가 된 요즘, 많은 어머니가 자녀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묻지 않는다. 이런 부모들을 보며 마음이 불편한 적이 있다. 이 지점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 ‘허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족의 허가를 꼭 받았다. 그들의 참여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하며 촬영을 이어갔다.

가족은 당신이 뷰파인더로 마주할 수 있는 대상 중 가장 친숙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촬영할 때 신경 쓴 지점이 있나?

우선 머릿속에 있던 전형적인 가족사진 이미지를 지우려 했다. 그리고 내가 촬영감독이 되어 우리의 삶을 오롯이 기록한다고 상상했다. 내 가족이 카메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를, 사진을 위해 연기하지 말기를 바랐다. 그들에게 표정이나 자세를 억지로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가능한 한 진실에 가까워지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목도한 모든 순간이 내게 진한 인상을 남겼다.

 

내 어머니와 그의 어머니(My Mother and Her Mother) 80대가 된 어머니가 외할머니의 초상화 앞 침대에 앉아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셔터를 눌렀다. 초상화와 이 사진 사이에 1백25년의 간극이 있다.

서양민들레(Taraxacum Officinale) 아이들과 20년 넘게 생활한 집을 떠나기 전 부엌에서 찍은 사진. 노란 민들레가 회색의 아름다운 ‘시계’로 바뀌는 건 놀라우면서도 덧없는 일 같다. 사랑했지만 놓아주어야 했던 모든 것에 찬사를 보내며.

 

이 프로젝트를 위해 여성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작업을 찾아보며 ‘여성의 시선’에 대해 공부했다고 들었다. 이 과정을 거치며 무엇을 배웠나?

어머니의 시선은 저마다 다르다는 걸 배웠다. 내가 살펴본 여성 다큐멘터리 사진가 중에는 자신의 예술적 기교를 철저히 조절한 어머니도, 보다 자유롭고 본능적으로 작업한 어머니도 있었다.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사랑으로 가득 찬, 단순하고 정직한 시선을 갖고 있었다. 그 시선이 사진을 보는 이들의 마음에 닿아 큰 울림을 일으키는 것 같다.

사진 작업을 함께하는 동안 당신과 아이들, 어머니 사이에 많은 사건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20여 년간 일어난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려면 책 한 권은 족히 필요할 것이다.(웃음) 우리는 신뢰와 조바심, 애정과 좌절, 존재와 부재의 시간을 겪었다. 그사이 어머니와의 관계에 특히 큰 변화가 생겼다. 카메라 앞에 선 어머니의 몸이 점점 약해졌기 때문이다. 스스로 전혀 곱지 않다고 여기는 노년의 어머니에게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싶었다.

사진은 지나온 어느 순간의 장면을 보존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사진에 새롭게 부여되는 의미도 있을 것 같다.

맞다. 촬영 당시의 내 의도와 달리 하루, 한 달, 1년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에 대한 새로운 감상이 층층이 쌓였다. 이는 사진을 바라보는 내 감정을 굴절시켰다. 때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갈망하며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이 있었기에 과거를 기억하는 동시에 그 순간에만 머무르지 않을 수 있었다.

 

붉은 수영복의 피에타(Pieta in Red Swimsuits) 나는 오래전부터 르네상스 회화와 조각에 심취해 있다. 이에 대한 내 열정을 담은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딸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가재 사냥(Hunting Crayfish) 연못에서 작은 가재를 낚다가 우연히 잡은 낯선 생물을 관찰하는 딸과 친구.

정원에서 보내는 어느 여름 저녁(A Summer Evening in the Garden) 집오리가 파리를 쫓는 동안 애인과 통화 중인 어머니.

 

결국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떠나보낼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삶이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두었을 때 얻을 수 있는
배움이 있을 거라고 본다.

 

사진을 통해 과거와 현재 사이의 틈을 인지하고, 그럼으로써 과거를 보내줄 수 있는 셈이다. 프로젝트 소개 글에 적혀 있는 ‘허가’의 정의가 떠오른다.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하거나, 무언가가 일어날 수 있도록 수용하는 행위.’

전쟁과 대량 학살, 질병, 빈곤 등 전 세계적 위기와 관련이 있지 않은 이상 통제보다 수용이 더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라면 간섭할 이유가 없지 않나. 물론 어떤 대상은 사라지지 않도록 꽉 붙잡아두고 싶기도 하다. 내게도 사물이나 상황에 강한 애착을 느끼며 보낸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살아온 날들이 쌓이며 애착이 외려 방해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지나친 애착의 근원에는 두려움이 있고, 그 두려움은 사랑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결국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떠나보낼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삶이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두었을 때 얻을 수 있는 배움이 있을 거라고 본다.

이 프로젝트가 공개되고 사진집으로 출간되며 많은 사람이 당신 가족의 삶을 접하고 있다.

그게 내가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이 프로젝트에 가정생활의 진정한 에너지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내가 보여준 가정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내 사진을 통해 각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향수와 애정을 느끼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이는 꽤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기쁘게 하는 건 내 가족이 이 사진들을, 카메라를 들었던 나를 자랑스러워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삶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하루하루는 서로 다르고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랑만은 한결같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삶이 참 아름답다고 느낀다.

 

 

피어싱이 없는 마지막 순간(Unpierced for the Last Time) 막내딸의 귀를 뚫으러 집을 나서기 직전에 카메라를 들었다. 아이가 스스로 몸을 장식하기 이전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하루하루는 서로 다르고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랑만은
한결같을 수 있지 않을까.

 

하굣길의 서리와 안개(Frost and Fog on the School Run Home) 건조한 서리와 습한 안개가 동시에 낀 이상한 날씨에 완벽히 어우러지는 코트를 입은 막내딸의 뒷모습.

최애 드레스와 쇼핑백(A Favorite Dress and a Shopping Bag) 뜨거운 햇빛 아래 행인들의 팔과 다리 사이에 선 아이의 보이지 않는 얼굴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