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 뜰 새 없이 정신없었던 한 해를 보내고 나니 어느덧 12월! 이맘때면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걸 새삼 체감합니다. 12월은 늘 보고 싶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보지 못했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인을 모아 송년회 파티를 열기에 최적인 달이죠.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파티 분위기를 무르익게 할 음악만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완벽한 파티가 될 거예요. 아마도 적당한 리듬감이 느껴지는 미디엄 템포의 비트와 긴 여정을 마치는 듯한 분위기의 엔딩곡이 제격일 테죠. 마리끌레르 에디터가 잊지 못할 연말 파티를 만들어줄 음악을 소개합니다.

 

실리카겔의 그린내

현 대한민국 밴드의 방향과 흐름은 실리카겔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실리카겔은 밴드 음악을 하지만 록 장르에만 치우치지 않고,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 전자음을 과감하게 섞어 틀에 박히지 않은 도전적인 음악을 지향하죠. 본인들의 음악을 스스로 ‘귀가 썩는 음악’이라고 표현하는 실리카겔은 밴드 장르를 불문하고 현시대의 음악 씬에서 단연 주목받는 아티스트입니다. 2017년에 발표한 EP<SiO2.nH2O>의 수록곡이자 최근 실리카겔 단독 공연 <POWER ANDRE 99>의 엔딩곡이었던 ‘그린내’는 듣다 보면 어딘지 모를 감동이 피어납니다. 순우리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제목과 멤버 전체가 참여한 보컬 그리고 사운드에 맞춰 끼워 넣은 시적인 가사는 ‘그린내’가 큰 사랑을 받아온 이유겠죠. 특히 중반부에 들어오는 현란한 신디사이저 연주는 마치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무한궤도가 부른 ‘그대에게’의 도입부를 연상시키며 감정을 벅차오르게 합니다.

 

카니예 웨스트의 Last Call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가 2004년에 발매한 데뷔 앨범 <The College Dropout>은 일명 ‘올드 칸예(Old Kanye)’로 불린 시기에 나온 여러 명반 중 첫 번째 앨범입니다. 시카고 출신의 프로듀서였던 카니예 웨스트가 아티스트들에게 비트만 만들어주던 시기를 지나 우여곡절 끝에 래퍼로서 출사표를 던진 역사적인 앨범이죠. 해당 앨범의 마지막 곡인 ‘Last Call’은 무려 13분가량의 긴 분량의 아카펠라 곡입니다. 카니예 웨스트의 이름을 알리는데 큰 영향을 끼친 제이지(Jay-Z)의 장난 섞인 멘트로 시작해 카니예 웨스트가 당시 최고의 레이블인 라카펠라(Roc-A-Fella Records)에 입단하기까지의 과정이 여실히 담겨있습니다. 거절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최고의 아티스트가 된 세월과 노력을 고려하면 13분은 결코 긴 분량은 아닐 테죠. 마치 한 편의 영웅담을 들려주는 듯한 해당 곡에서는 그의 초창기 시절 낭만 가득한 음악 스타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This is the last call for the alcohol’이라는 가사처럼 치열했던 2023년을 추억하며 축배를 들어봐도 좋겠습니다.

 

브록햄튼의 The Ending

스스로를 ‘보이 밴드’라고 칭하는 브록햄튼(Brockhampton)은 케빈 앱스트랙트(Kevin Abstract)의 주도 하에 구성된 힙합 그룹입니다. 2022년 11월에 마지막 앨범 <The Family>와 <TM>을 같은 날 발매하는 동시에 공식 해체하여 힙합 팬들에게 몹시 큰 아쉬움을 안겼죠. <The Family>는 레이블과의 계약상 문제로 인해 브록햄튼의 이름으로 나온 케빈 앱스트랙트의 솔로 앨범입니다. 그중 ‘The Ending’이라는 곡은 7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 짓는 작별 인사 같은 노래입니다. 유년 시절에 막연히 ‘슈퍼스타’를 꿈꾸던 케빈 앱스트랙트과 멤버들의 끈끈한 우정을 이야기하죠. 브록햄튼은 칸예 웨스트의 팬 페이지에서 만나 결성한 밴드답게 보컬을 높은 피치로 올린 칩멍크 스타일을 활용해 브록햄튼의 시작점을 되돌아봅니다. 환호와 박수소리를 가미한 사운드로 브록햄튼의 긴 여정에 경의를 표하고, ‘This the ending we all envisioned, right?(이게 우리가 상상한 결말이지, 그렇지?)’라는 가사는 오랜 시간 함께한 멤버들과 팬들에게 아름다운 작별 인사를 건네죠. ‘The Ending’이 마치고 나면 마치 화려한 축제가 끝난 뒤 긴 여운이 남은 채로 집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해당 곡처럼 2023년의 아쉬움은 뒤로하고 소중했던 추억을 간직한 채 2023년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시길 바래봅니다.

 

250의 휘날레

250은 뉴진스의 데뷔 EP<New Jeans>를 포함한 히트곡 ‘Ditto’의 메인 프로듀싱을 맡았던 2022년부터 현재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중입니다. 소위 ‘뽕짝’으로 불리는 한국의 성인가요 혹은 한국 EDM 음악을 다루는 아티스트이기에 뉴진스의 프로듀싱진 참여 소식이 더욱 화제가 되었죠. 2022년에 발매한 250의 앨범 <뽕>은 명백하게 밝힌 타이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뽕짝을 내세운 일렉트로닉 장르의 앨범입니다. 250은 해당 앨범으로 2023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의 3관왕을 비롯해 ‘올해의 음악인’ 상을 받으며 뽕짝 음악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죠. 어깨가 마구 들썩일 정도로 신나는 ‘뱅버스’는 이박사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해당 앨범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반면에 앨범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휘날레’는 구슬프면서도 애절한 듯한 분위기로 타 수록곡들과는 극명히 다른 스탠스를 취하죠. 한 여성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는 도입부는 약간 섬뜩하게 느껴지지만, 20초가 지난 후 연주가 시작되면 마음 한 켠이 몽글몽글해지는 동시에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가를 부른 오승원입니다. 250은 “뽕 음악의 주된 정서는 슬픔과 노스탤지어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죠. 80년대생인 본인에게 노스탤지어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기공룡 둘리>의 노래였기에 오승원에게 보컬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슬픔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가사는 앨범의 마지막 트랙에 배치된 이유일 듯합니다. 아무래도 ‘휘날레’는 파티가 끝나가는 무렵의 엔딩곡으로 트는 것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