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끌레르 피처 에디터 5인이 선택한,
각자의 새해 첫날을 여는 ‘첫 잔’의 술.

햇살주 AM 11:30

2024년의 첫날은 새해를 살아내기 위한 각오를 다지기보다는 산뜻한 마음으로 보내고 싶다. 오렌지 주스처럼 가볍게 마실 수 있으면서도 취기가 적당히 오르는 술과 같이 말이다. 이쁜꽃 양조장과 먼데이모닝마켓이 함께 선보인 햇살주 AM 11:30은 상큼한 패션프루트와 햇살을 한껏 받으며 자란 쌀로 만든 막걸리로, 묵직함보다 감칠맛을 살려 부담 없이 즐기기 좋다. 월요일 아침 숲속에서 마시는 낮술을 떠올리며 빚어 한 모금만 넘겨도 복잡했던 머릿속을 오로지 ‘맛있다’는 생각으로 채울 수 있다.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지만,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버거나 육전을 곁들이기를 권한다.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술이라면 무엇이든 즐기는 에디터 김선희

야마노코토부키
준마이긴조 오마치 13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로 나아가는 시점,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사케가 제격이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데운 사케로 따뜻하게 몸을 덥히거나 차갑게 칠링해 와인처럼 즐길 수 있기 때문. 새해 첫날을 위한 단 한 잔의 사케로는 야마노코토부키의 준마이긴조를 권하고 싶다. 부드러운 탄산감이 상쾌한 샴페인의 느낌을 내면서도 쌀과 누룩, 정제수만으로 만든 준마이 특성상 다음 날 숙취 없이 가뿐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새해 절주를 다짐하는 에디터 안유진

스텔라 아르투아

맥주는 여름의 술이라지만, 어쩐지 스텔라 아르투아만큼은 한겨울에 더 자주 찾게 된다. 청량하지만 지나치게 가볍지 않고, 쌉싸름한 정도도 적당하다. 미세먼지 없는 날의 쾌청한 겨울바람과 닮았달까. 그래서 끈적하게 취하기보다 말끔하게 딱 한 잔만 비워내고 싶은 새해 첫날은 어김없이 스텔라 아르투아가 생각난다. 3℃일 때 가장 좋은 맛을 낸다고 하지만,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차갑게 마시는 걸 선호한다. 페어링 메뉴 역시 너무 따뜻하지 않은 편이 좋은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풍미 깊은 올리브 오일과 레몬즙을 듬뿍 뿌린 세비체다. 청량한 맥주와 쿰쿰한 내추럴 와인을 사랑하는 에디터 강예솔

러셀 리저브
싱글 배럴 라이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무릎에 큰 흉터를 만드는 등 지난 한 해 술 때문에 후회할 일을 잔뜩 만든 터이기에, 내가 정녕 인간이라면 새해 첫날에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지 않나… 싶지만 대체 이 좋은 것을 어찌 멀리할 수 있을까. 이런 양가감정을 해소해줄 만한 새해 첫술로 러셀의 새로운 라이 위스키를 선택했다. 바닐라, 레몬, 오렌지, 오크까지 복합적인 맛과 향을 구현한 것이 특징. 입 안 가득 바닐라 향이 묵직하게 퍼지다 목을 넘어갈 때쯤 배의 달콤함과 후추의 스파이시함이 기분 좋게 남는다.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니 가볍게 생초콜릿을 곁들이기를 권한다. 초콜릿을 한 입 베어문 뒤 위스키를 마실 때 느껴지는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느낌은 올 한 해도 굳세게 살아낼 수 있다는 작은 위로를 건넬 것이다. 술 먹다 무릎 깨진 에디터 임수아

닥터루젠 블루 슬레이트
리슬링 카비넷 2022

새해의 첫날은 리슬링처럼 청명하게 보내야만 할 것 같다. 잔에 담아두고 오래 보고 싶은 영롱한 노란빛, 입 안을 순간 환하게 밝히는 산도, 은은히 오래 머무는 복숭아 향까지 한 모금만으로도 주변 공기가 바뀌는 것 같다. 새해를 맞아 새롭고 싶은 마음을 마구 토닥여준다. (엔트리 와인마저 이토록 공들여 만들어내니 닥터루젠이 리슬링의 왕이라 불리는 거겠지.) 차갑게 마시기보다 미지근한 상태에서 리슬링이 품은 향과 미네랄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다. 그저 이 한 잔으로 충분해 굳이 뭘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안 든다. 어떤 술이든 낮에 마시면 다 좋은 디렉터 유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