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에 여러 색채로 빚은 자연물을 그려 생명력을 불어넣는 아티스트 아고스티노 이아크루치가 국내에서 아시아 첫 전시를 엽니다. 에르메스, 애플, 아디다스, 스타벅스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 그가 한국의 ‘단청’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공개했습니다.
역사적 가치를 가진 한국의 수많은 목조 건물에 장식된 다섯 빛깔의 ‘단청’을 새로이 볼 일은 적었습니다. 익숙한 것은 때로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발산하기도 전에 스쳐 지나가곤 하니까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아티스트, 아고스티노 이아쿠르치(Agostino Iacurci)가 아시아 첫 개인전을 서울에서 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가 한국의 여러 전통문화 요소 중 ‘단청’을 소재로 작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 의아했습니다. 왜 ‘단청’일까. 작가와 만나기 전, 작품을 보았을 때 더욱 그 의문은 커졌습니다. ‘단청은 무엇일까?’, ‘그가 본 단청의 모습은 어떨까’ 하고요. 이어지는 질문이 이어져 한참을 작품 앞에 서 있었습니다. 에디터 안에 피어나는 많은 질문을 작가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아고스티노 이아크루치 작가의 아시아 첫 전시입니다. 첫 번째 전시 장소를 한국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좋은 시기에 좋은 곳에서 전시를 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경험한 한국, 서울은 어떤 곳인가요?
아주 흥미로워요. 동네마다 다양한 매력을 지녀 신기했어요. 지금까지 다녔던 다양한 도시가 한곳에 모두 모인 듯하죠. 지금까지 만난 한국 사람은 에너지가 넘치고 호기심도 많아요. 처음 오는 나라이지만, 저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낸다는 것이 굉장히 감사했어요.
이번 전시는 한옥과 식물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중 메인 소재는 ‘단청’이고요.
한국에 오기 전, 레지던시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중에 한국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단청’이라는 소재에 흥미를 느꼈어요. 한국에서 전시를 할 때, ‘단청’을 활용해보자 싶었죠. 강렬한 색감과 패턴에서 리듬을 느꼈거든요. 물론 직접적인 방법은 아니에요. 단청을 직접 보고자 했다면 다르게 느낄 수도 있어요. 단청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추상적으로 작품에 표현했습니다.
단청에서 느낀 리듬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요.
한정된 공간에 자주 반복되며 패턴을 만들어가는 것이 리드미컬하게 다가왔어요. 단청의 다섯 가지 컬러 중 파란색과 빨간색이 굉장히 강렬하고 느꼈죠. 다른 아시아 나라와는 다르게 한국은 빨간색과 파란색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저의 이전 작품에 여백이 많았다면, 이번 작품은 여백이 적은 채로 더 추상적이고 실험적이에요. 저는 어떤 문화 안에서 작업할 때, 그 문화를 그대로 사용할 권리가 제게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약간의 연결 고리를 마련할 뿐이죠. 일부 색감을 활용한다거나 어떠한 부분을 활용하는 것처럼요.
단청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뿐 아니라 이전 작품에서도 다양한 색감이 돋보이는 작업을 했습니다. 모든 작품 속 색감은 내면에서 오는 어떠한 영감으로 채워지나요?
굉장히 본능적으로 색을 골라요. 그 순간 저의 감정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죠. 지금 제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라에서 어떤 문화를 표현하고 싶은지에 따라 확연히 색감이 달라지죠. 이번 전시를 위해 공간을 보고 어떤 색을 사용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졌어요. 이곳이 그레이 톤에, 선이 명확하기 때문에 밝은 톤의 색감을 사용하고자 했어요. 분위기를 좀 더 밝히고 싶었거든요. 어떤 색을 명명하는 건 참 어려워요. 캔버스나 공간은 그 순간순간의 팔레트가 되죠.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초록을 초록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짜 초록색인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끊임없이 하거든요. 진정한 색은 자신이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에서 통용되는 컬러가 아닌, 자신 내면의 색이요.
“진정한 색은 자신이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에서 통용되는 컬러가 아닌, 자신 내면의 색이요.”
그래서 이 공간과 잘 어울리는군요. 지금 공간에는 작품 위에 작품이 있는 듯해요. 기존 벽에 가벽을 세워 색으로 채운 뒤, 작품을 전시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작품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에요. 이 공간에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을 최대한 가리고 싶어요. 관객이 작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요. 다른 생각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서 앞으로 전시 기간 중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해 가는 과정이라고 여기면 좋겠어요.
전시하는 공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네요. 건물 전체를 비롯해 외벽 등 건물에 진행하는 대형 작품을 자주 진행하는데, 공간을 선정하는 작가만의 기준이 있나요?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을 프로젝트의 취재예요. ‘왜 이 작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할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꼭 가보고 싶다거나 관심 있는 곳 혹은 저의 커리어에서 도전이 될 수 있다 싶은 곳이어도 좋아요. 물론 매번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건 아닙니다. 같은 작품이 다른 곳에 갔을 때는 그 공간과의 합에 따라 새롭게 보이기도 하니까요.
그럼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구글 맵스 그 동네를 미리 탐방하죠(웃음). 전시하는 공간이나 건축물이 어떤 건축 스타일인지, 그 동네는 어떤 분위기인지를 봐요. 그 동네가 어떤 문화를 가지는지, 역사적으로는 어떠한지를 살펴보는 거죠.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는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요. 이런 과정 중에 겹겹이 쌓이는 지식이 저에게는 영감이 되곤 해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이 전시를 통해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측해 보죠.
그렇게 만난 관객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이번 전시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둘 있어요. 전시 오프닝에 만났던 어떤 여성분이 저에게 ‘마에스트로’라 칭하며 ‘리스펙’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저에게 ‘마에스트로’라는 칭호는 참 무거운데, 그렇게 말해줘서 영광이었죠. ‘내가 지금 여기까지 왔구나’하고도 생각했어요. 저는 아직 스스로 학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더 배워야 한다고요. 한편으로 ‘내가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싶기도 했어요(웃음). 다른 한 사람은 기자 회견에서 만난 기자예요. 한국의 문화 특히 단청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이다 보니, 저의 작품과 한국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한국의 문화를 소개해 주고 싶다고 말했는데, 자신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죠.
“저는 말보다 그림을 먼저 그렸어요. 그림은 저의 언어죠.”
작가의 시작이 궁금해요. 어떻게 예술 활동을 시작했나요?
그림은 저의 언어예요. 어렸을 때도 말보다 그림을 먼저 그렸죠. 청소년이었을 때는 벽화에 관심이 많아 그래피티를 많이 했어요. 그래피티 작업을 하는 중 예술에 대한 관심이 생겨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이십대 초반에는 큰 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좋은 직장, 근사한 집을 얻었죠. 그런데 스스로 굉장히 불행하다고 느꼈어요. 아티스트가 아닌 느낌이었죠.
지금은 어떠한가요? 여러 나라를 돌며 활동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는데, 작업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기다림이 제일 어려워요. 작품이 온전히 어울리고 잘 맞는 사람에게 가기까지 기다리는 과정이 지난하다 싶어요. 제 스튜디오에는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작품들이 있거든요. 저는 항상 “Right Place, Right time(적절한 상황, 적절한 시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때에 좋은 인연과 만나기를 계속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림 외에도 어려움이 참 많을 것 같아요. 작업하는 중에 좀처럼 자신의 생각대로 흐르지 않을 때가 있죠.
무언가를 실수할 때, 그냥 인정해요.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저의 부족한 부분을 같이 끌고 가려고 하죠.
그게 무엇이든 같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부족한 부분마저 ‘나’이니까요. 작업을 하지 않을 때에는 무얼 하며 보내요?
요리를 하고, 책을 읽어요. 최근 새로운 가족이 된 저의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요. 13개월 정도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쉬는 시간 같아요.
이번 전시인 <메이킹 룸(Making Room)>은 인큐베이팅 프로젝트예요. 한국에 머무는 기간이 꽤 긴데요. 그 기간 동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페인팅 외에 조각 작품이 있을까 하고 기대했거든요(웃음).
이번 전시가 레지던시 프로젝트인 만큼 변화가 있을 거예요. 물론, 그 안에 조각 작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작품은 제작 중에 있어요. 힌트가 된다면 ‘나무로 만든 나무’가 될 거예요. 2M 정도 되는 목재로 만드는 조각 작품인데요. 지금 전시된 작품과 연계된 작업물이 될 것 같습니다.
식물을 주 소재로 활용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데, 자주 집을 비우다 보니 식물을 키우기가 어렵더라고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식물을 그리게 되었죠. 제가 좋아하는 고흐의 말이 있어요. “해바라기는 결국 죽는다. 그러나 내가 그린 해바라기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식물에게는 에너지가 있지만, 그 에너지는 한정적이에요. 식물이 가진 그 힘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림이더라고요. 그래서 식물 그리게 됐어요.
전세계 모든 사람이 봐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모티프이기도 하고요. 이탈리아에서는 전통적으로 무언가를 꾸며야 할 때 식물이나 꽃을 활용해요. 저의 모태가 되는 문화이다 보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한 번은 이탈리아 중부 지방에 위치한 벽화 작업 의뢰를 받아서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 벽화에 파란색 엉겅퀴를 그렸죠. 그 꽃은 저에게 큰 의미였거든요. 가족과 요리를 하거나 이전의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작업했습니다. 나중에 완성한 뒤에 외벽 벽화 작업을 의뢰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에게 굉장히 중요한 꽃이었더라구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매년 파란 엉겅퀴로 테이블을 꾸미곤 했었다며, 작품이 선물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식물은 이런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단순히 식물에 대한 관심으로 그렸지만, 지금은 그 식물이 하나의 추상적인 의미가 되기도 해요. 계속해서 진화하는 과정인 거죠.
이번 전시에도 커다란 작품에 식물이 그려져 있어요. 이런 작품이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면 좋을까요.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좋아요. 그 자체로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만 남았어요. 아고스티노 이아크루치에게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어렵네요… 아름다움은 오로지 좋은 것에서만 느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추하거나 고통스러운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아름다움에 대한 수많은 의미가 부여되는 중에 지금 제가 가장 많은 아름다움을 느낄 때는 진실이 저에게 와닿을때인 것 같아요. 그 주체가 타인이든 저든 진실하다고 느낄 때 저에게는 추상적인 아름다움에 가깝다고 느껴요.
아름다움은 오로지 좋은 것에서만 느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추하거나 고통스러운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