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진가 콜린 판털은 소파에서 쉬고 있는 어린 딸의 모습을 2년 동안 프레임에 담았다. 다양한 감정과 무한한 상상력을 드러내며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아이의 성장기는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한 권의 사진집으로 탄생했다. 이를 함께 완성한 부녀가 과거의 장면들을 현재의 관점으로 살피며 각자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서로에게 위로와 평안을 전해온 어느 가족의 아름다운 순간들.

Colin Pantall 사진가

10여 년 전 어린 딸 이사벨(Isabel)의 모습을 촬영한 결과물을 모아 사진집 <소파 포트레이트(Sofa Portraits)>를 완성했다. 이 사진들을 찍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이사벨이 어릴 때 아이와 단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아내가 일하러 간 사이에 아이를 보살폈 고, 방과 후나 주말에 집 근처 공원에서 같이 놀기도 했다.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이사벨은 소파에서 쉬며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 했다. 옆에 앉아 화면에 집중하는 아이의 얼굴을 관찰했는데, 어린 딸의 환상 속 세계가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했다. 그 모 습이 우리 집 거실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이사벨이 소파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당신의 가족에게는 소파가 단순한 가구 이상의 의미를 지닐 것 같다.
당시 우리가 거주한 임대아파트에 구비되어 있던 소파였다. 여기저기 뜯긴 낡은 소파였지만 왠지 특별하게 여겨졌다. 이사벨은 이 소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담요와 인형, 장난감, 우유가 든 컵을 비롯한 아이의 물건이 소파 주변에 마구 흩어져 있었는데, 이사벨 내면의 삶이 소파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물건들을 정리하지 않은 채 소파 곁에 머무는 딸의 얼굴과 팔다리에 집중하며 셔터를 눌렀다. 이 작업은 우리 가족이 아파트를 떠날 때까지, 약 2년간 이어졌다. ‘소파 포트레이트’의 마지막 사진에는 소파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푹 꺼진 소파가 이사벨의 흔적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촬영한 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소파 포트레이트’를 살펴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사진은 촬영된 순간부터 이 세상에서 분리되어 그것만의 시공간을 형성한다고 본다. 그래서 소파에 기대어 있는 어린 이사벨이 나와 다른 행성에 사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 만 신기하게도, 나는 사진 속 이사벨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사진이 인간의 영혼까지 보여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진을 통해 본인의 어린 시절을 마주한 이사벨의 반응은 어땠나?
이사벨은 늘 ‘소파 트레이트’를 마음에 들어 했다. 몇 년 전 그 이유를 물어봤는데, 미술가 트레이시 에민 (Tracey Emin)의 침대를 아이의 버전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트레이 시 에민이 불안정한 성인의 삶을 다뤘다면, 내 사진은 아이의 안전과 안락에 대해 이야기 하는 듯하다고 했다. 딸이 사진 속 소파를 ‘소녀’의 것으로 바라본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 사벨은 여성이 남성과 다른 방식으로 유년의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경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사벨이 어느덧 성인이 되어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다고 들었다. 그가 사진들을 보고 그린 그림과 본인의 감상을 적은 글이 사진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사벨의 글과 그림은 본인이 지닌 예술적 태도를 알려준다. 이를 통해 이사벨이 여성이자 미술가로서 직설적 시선을 기반으로 이미지를 해석하고, 인간의 내면을 살피려는 욕구를 강하게 품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사벨은 이제 자신만의 가치관과 열정을 지닌 사람이 되었다.

어린 딸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나?
이사벨의 모든 것이 자랑스럽고, 특히 강인하고 독립적인 내면을 사랑한다.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하다. 이사벨이 자랄수록 내 품에 폭 안기던 작은 딸의 모습이 사라졌고, 이로 인해 내 삶을 구성하던 많은 부분도 점점 희미해졌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 을 지닌 채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내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 한 사람이 성장하며 아이의 세계를 벗어나는 건 멋진 일이고, 그가 성인이 되어 자녀를 낳으면 다시 아이의 세계에 편입되지 않나. 이 사실이 모든 부모의 희로애락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소파 포트레이트’는 가족의 의미를 고찰하게 만드는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다. 이를 진행한 당신은 가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가족은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일지라도 갈등, 분노, 소통의 단절과 이별을 경험할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우리는 가족과 함께하며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고, 이는 인생에 서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요소다. 혹독한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회복하며 나를 가장 나 답게 만드는 대상, 그게 가족의 의의가 아닐까 싶다.

당신 가족의 일상을 기록한 이 프로젝트를 대중에 공개했다. 이를 본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나?
어린 시절의 기억은 한 사람을 진정으로 성장하게 하고, 더 나 아가 삶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사벨의 다양한 감정과 무한한 상 상력이 담긴 사진을 마주한 사람들이 잊고 지내던 유년을 떠올린다면 좋겠다. ‘소파 포트 레이트’가 아이들을 비롯한 모두의 더 나은 삶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당신의 SNS를 살펴보니 성인이 된 이사벨의 사진들이 있었다. 딸의 사진을 꾸준히 촬영 하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이사벨과 함께할 때 카메라를 자주 들었다. 생일과 여행 등 특별한 날은 물론, 어린 딸이 신발을 스스로 신지 못해 울면서 짜증을 내던 순간까지도. 그런데 이사벨이 독립한 이후에는 딸의 사진을 자주 찍지 않는다. 하지만 난 여전히 내가 포착한 이사벨의 모습을 사랑한다. 그중에서도 이사벨이 본인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 한 작품 옆에 서 있는 사진들을 제일 아낀다.

당신과 이사벨이 공유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였나?
이사벨이 태어난 이래로 매해 특별한 순간들이 있었다. 함께 아침 산책을 하다가 물총새를 발견한 날, 숲속에서 그네를 실컷 탄 날, 성인이 된 딸의 집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크리스마스를 즐긴 날 등이 하나하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단 하나만 고르라면, 이사벨이 열 살일 때 웨일스(Wales)로 캠핑을 떠났던 기억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는 햇빛 아래 반짝이는 바다에서 시간을 보낸 뒤 일몰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했고, 다음 날 산등성이를 올랐다. 목표 지점에 먼저 다 다른 이사벨이 뒤돌아보며 이렇게 외치더라. “이게 나예요!” 이사벨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신을 명확히 인지하던 그 순간, 딸에게 앞으로 새로운 나날이 펼쳐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기억 속에 삶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게 아닐까.

Isabel Pantall 사진가의 딸

사진가인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오래전부터 카메라를 마주하는 일이 익숙했을 것 같다.
그렇다. 아빠의 ‘소파 포트레이트’ 작업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언제 처음 촬영을 인지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빠가 셔터를 누를 때 손가락을 내밀어 렌즈를 가려버린 적도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내가 어릴 때 얼마나 엉뚱한 딸이었는지 말해줬다.(웃음)

아버지가 ‘소파 포트레이트’를 진행하던 때를 기억하나?
어렴풋이 기억난다. 당시 나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거나 몸이 좋지 않아 쉴 때 소파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자주 봤다. 그 소파는 어린 나에게 안온한 휴식을 선사했다.

아버지의 프로젝트에 담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프로젝트 초반에는 내가 텔레비전 화면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진 속 내 모습이 바뀌더라. 패션에 관심이 생겨 옷을 차려입기 시작했고, 표정도 다양해졌다. 방송을 지루해하거나 화면 속 장면을 의심하는 듯한 어른스러운 표정들을 살피며,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내가 성장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진집 <소파 포트레이트>에 실린 당신의 글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이 사진들을 통해 나 자신을 본다.”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다 보면 현재의 나와 닮은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내
얼굴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내성적인 성격도, 몽상적인 내면 세계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웃음)

사진 속 본인의 모습을 스케치로 그린 이유도 궁금하다.
스케치는 현재의 내가 예술을 통해 과거에 관여하고, 어린 시절을 새로운 맥락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사진의 중요한 요소만 검은색 선으로 빠르게 그려냈다. 팔다리를 비롯한 내 신체와 소파가 물리적으로 어우러지는 지점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아버지와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이 현재의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아빠 덕분에 내 일상은 항상 이미지로 가득 차 있었다. 사진과 미술, 디자인 관련 서적이 집에 많이 있었고, 아빠랑 미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박물관과 갤러리를 찾아가기도 했다. 피사체의 얼굴에 집중하며 직관적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아버지의 영향이 내 작업에 드러날 거라고 기대한다. 현재 대학 졸업 전시를 준비 중인데, 내 일상 속 사람들과 장소를 큰 캔버스에 담은 유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인물과 그의 삶을 그려내며 숨어 있는 자아를 보여주는 작품을 좋아한다. 예술은 영혼의 엑스레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이 현재의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아빠 덕분에 내 일상은 항상 이미지로 가득 차 있었다. 사진과 미술, 디자인 관련 서적이 집에 많이 있었고, 아빠랑 미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박물관과 갤러리를 찾아가기도 했다. 피사체의 얼굴에 집중하며 직관적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아버지의 영향이 내 작업에 드러날 거라고 기대한다. 현재 대학 졸업 전시를 준비 중인데, 내 일상 속 사람들과 장소를 큰 캔버스에 담은 유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인물과 그의 삶을 그려내며 숨어 있는 자아를 보여주는 작품을 좋아한다. 예술은 영혼의 엑스레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가족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고 싶다.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만이 아니라 내 삶 가까이에 존재하는 절친한 사람들도 넓은 범위의 가족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족 안에서 가장 안전하고 안락하다. 어릴 때 부모님과 숲속이나 바닷가를 거닐며 쌓은 추억들이 문득 떠오른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