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고, 부수고, 무너뜨리고. 끊임없이 조각의 확장을 고민하는 고요손의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은 이토록 다양하다. 그의 조각은 어디에든 머물 수 있고, 어떻게든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조각에 가해지는 모든 충돌을 오히려 환대한다. 이 자유로운 조각을 어떻게 감각할 것인지는, 이제 관객의 몫이 된다.
누가 어떻게 감상하느냐에 따라 변화하는 조각, 계속해서 조각의 확장성을 고민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만질 수 있고, 심지어 부술 수도 있는 조각 작업은 어떻게 출발하게 된 건가요?
지금의 제 작업은 제 성격과도 많이 닮아 있어요. 어릴 때부터 납득되지 않는 사회적 규율에 대한 반항심이 좀 있었거든요. 저는 이해가 되지 않는데, 다들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따르고 싶지 않았달까요. 그 기조가 자연스레 작업으로 이어지더라고요. 대다수 작품이 그렇지만 만져서는 안 된다거나, 일정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한다는 일종의 룰이 있잖아요. 작업을 하다 보니 당연히 그런 룰의 필요성을 느낄 때가 많지만, 종종 제 작업에서만큼은 그 선을 넘도록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제 조각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지만, 부서지거나 훼손되는 데에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그게 작품을 감각하는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다면 오히려 좋겠다 싶고요. 마음껏 만지고 부숴도 보고, 형상이 없어지도록 먹어도 보는 거죠. (작가는 전시 <섬세하게 쌓고 정성스레 부수는 6가지 방법>을 통해 디저트를 조각으로 바라보는 방식을 실험했다.)
타 장르 아티스트와의 협업 또한 확장의 한 축이 됩니다. 싱어송라이터 샤이 아시안, 공간 연출가 임승택과 프로젝트 밴드 ‘바우어’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어요.
바우어는 조각을 확장하게 된 작업의 시작점이기도 해요. 대학생 때 기타를 형상화한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 내가 만든 조각이 악기처럼 보이고, 소리가 난다면 정말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우어를 결성하게 되었어요. 무대 세트로 보여지는 모든 요소 또한 제 조각으로 채워지길 바랐고요. 어릴 적부터 무대에 서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러한 생각이 멤버들을 섭외하고 공연까지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죠. 그리고 무대 세트부터 의상까지 다 직접 제작하거나 바우어 맞춤으로 구성했고, 그 작업이 주목받은 덕분에 고요손이라는 이름으로 전시와 실험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한 조각을 보면서 가장 궁금한 건 완성 시점이었어요. 전시장에 놓인 순간 혹은 관객이 감각한 이후, 어느 시점을 완성이라 여기나요?
그건 아직도 제게 질문으로 남아 있어요. 결국은 두 시점 모두인 것 같아요. 작업실에서 손을 떼는 순간도 완성이고, 관객의 손을 거쳐 헝클어지고 삐뚤어져 있는 것도 완성이죠. 그러니까 작업실에서부터 전시를 마치는 날까지 매일이 완성인 동시에 완성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해요.
조각을 대하는 관객의 행위를 보면서 영감을 받기도 하나요?
모든 관객이 영감의 원천이죠. 사람들의 성격이 다 다르잖아요. 누구는 무척 조심스럽게 대하고, 또 누구는 생각보다 과감하게 체험하기도 해요.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작업실에서 막연하게 혼자 준비해온 것들이 관객을 만남으로써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어요.
스펀지나 시트지, 스티로폼처럼 찢기거나 부서지기 쉬운 재료를 쓰는 편이에요. 이는 관객의 감각을 위해 의도한 선택인가요?
조각을 전공하지 않았고,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더 자유롭고 무자비하게 재료들을 선택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조각의 재료로서 생각해보지 않던 것을 붙이고 자르면서 조각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더 주변에 있는 일상적 소재를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유달리 애정이 가는 소재가 있다면요?
셰이빙 폼이요. 어느 날 칙 하고 뿌렸을 때 순식간에 주먹만 하게 부푸는 모습을 보면서, 그 자체로 조각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곤 몇 시간 혹은 며칠이 지나면 다른 형상으로 바뀌며 공간에 흡수되는 느낌이 흥미롭더라고요. 그걸 긴 시간 동안 지속되는 전시 공간에 가져와 얼마큼 버틸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작업을 했어요. 신기하게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는 3개월 동안 꺼지지 않더라고요. 온습도 조절이 잘되는 곳이라 가능했던 거죠. 이와 반대로 옛날 집을 개조한 전시 공간에선 6~7시간 만에 벽에 흡착해 예쁜 세포 무늬로 남더라고요. 이를 보면서 저라는 사람, 그리고 제가 하고자 하는 조각의 지향점을 이 재료 하나만으로 설명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다른 확장은 <비욘드 더 벌쓰 플레이스(Beyond the Birthplace)> 프로젝트에서 발견할 수 있었어요. 집 안에 머무는 소재를 활용한 조각 작업을 디지털 공간에서 전시한 거죠.
팬데믹 기간에 시작한 작업이에요. 이러다 영원히 집에서 못 나가면 어떡하지? 이런 환경에서 조각가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모색하다가 제가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그런데 쓰지는 않는 것들을 조각의 재료로 활용해보게 되었어요. 그렇게 이것저것 하나씩 붙여보니까 오히려 자유롭고, 두렵지 않게 형태를 만들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어차피 전시장에 못 가져가니까 온갖 장소에 세워보자 싶더라고요. 조각을 전시할 수 없을 것 같은 화산이나 우주, 바닷속에요. 그렇게 디지털 작업으로 원하는 배경을 만들고, 그 안에 제 조각을 넣었어요.
그리고 그 작품을 NFT로 선보였어요.
사실 납득되는 방식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이 흐름을 한 번쯤 받아들여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때마침 제가 작업한 조각 중에 이 프로젝트가 NFT화 되면 사람들이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판매전 <두 번의 비행과 네 번의 스텝(Two Flights and Four Steps)>에선 QR코드를 통해 작업의 내용이 담긴 음원을 제공하기도 했어요.
제가 가변적인 것도 많이 쓰고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소장하기 애매한 것을 많이 만들잖아요. 조각이 잘 팔리지 않는 매체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처음으로 굿즈화 해본 작업인데… 하면서 내내 불편한 거예요. 판매와 작업의 순수성이 대비되는 말은 아닌데도요. 그래서 저만의 실험을 이 전시에서도 시도해본 거죠. 당신들의 방에 내 작업을 가져가게 된다면, 또 다른 이벤트가 펼쳐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요. 가져가서 QR코드를 찍으면 이 작품을 위해 만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또 다르게 감각하는 방식을 만들었어요.
조각 밖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욕망이 디지털 세계까지 닿은 셈이에요.
사실 QR코드는 모양도 너무 기계적이어서 싫고, 방식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발전된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시대를 사는 만큼 과거의 조각가들과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저에게도 생소한 여러 현상이 새롭고 빠르게 생겨나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제 작업을 새롭게 기록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땡큐라 생각해요.(웃음) 조각을 더 새롭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작가의 조각이 어디까지 확장되길 바라나요?
제 시도들이 객기처럼 보여지지 않는 선에서 더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예정이에요.
혁신과 무모함이 굉장히 미묘한 차이이긴 하죠.
내 작업에 취해서, 내가 가장 신선하다고 생각해서 객기를 부리는 것도, 그렇게 보이는 것도 극도로 경계해요. 그래서 확신이 있을 때만 변화와 확장을 꾀해요. 이 시도가 허술하게 보여선 안 되니까요. 그리고 매일 성실하게 작업하려 해요. 이 확장의 끝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고 싶거든요.
이미 충분히 확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더 많은 실험이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이네요.
그럼요. 다만 확장 자체에 강박적으로 집중하며 작업을 한다기보단 스스로 꾸준히 정리하고 고민하며 일종의 실험을 계속 해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