숄 형태의 글러브와 오버사이즈 셔츠, 스커트, 부츠 모두 Rick Owens.

판화로 시작해 사진, 영상, 그리고 3D 프로그램으로 작가 추수의 작업은 경계 없이 시도된다. 심지어 AI 프로그램까지. 그리고 기술의 발전이 창작의 영역에 이른 지금, 그는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기술과 손잡고 창의성을 발현하는 중이다. 나이도, 인종도, 젠더도 규정되지 않은 버추얼 액티비스트 에이미를 탄생시킨 이 창작자는 불가능한 세계는 없다는 듯 다음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TZUSOO, ‘Dalle’s Aimy’, neon glass, uv print on stainless steel box, 50×50×15cm, 2024


스튜디오가 베를린에 있어서 제작 공장에서 촬영하게 되었어요. 이곳에서는 어떤 작품을 만드는 중인가요?
최근에 스테인리스 박스에 네온 유리를 접합하는 <달리의 에이미>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스테인리스 철을 박스로 만드는 작업이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가 디자인을 워낙 까다롭게 부탁드려서, 기사님께서 용접 이음새가 남지 않게 한 땀 한 땀 만들고 계세요.

베를린과 서울, 두 도시를 오가며 작업하는데, 1년을 기준으로 각 도시에 얼마 동안 머무는 편인가요?
한국에는 1년에 한 달 정도만 있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해요. 공장도 최대한 자주 다니고, 미팅도 하고, 아티스트 토크도 많이 하려고 해요.

‘서울 집은 천국이고 베를린 집은 놀이터 그리고 내 마음의 집은 온 우주에 흩어져 있네.’ 에세이에 이런 문장을 남겼어요. 두 도시에 대한 단상이 다른 거겠죠?
서울은 부모님과 친구들이 언제고 열렬히 서포트해주는, 언제나 마음이 편한 곳이에요. 동시에 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고요. 제가 한 번 작업을 시작하면 길게는 세 달까지 아예 휴대폰을 끄고 몰입하는데, 서울은 그게 절대 불가능한 환경이거든요. 특히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이 많은 제게는요. 그 반면에 베를린은 작가 추수로서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두었어요. 에세이에 영어로 ‘playground’라고 썼는데, 놀이터이자 전쟁터라는 뜻에서 쓴 단어예요. 내 작업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곳이면서도, 외국인으로서 또 작가로서 치열하게 싸우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내 마음은 온 우주에 흩어져 있다는 부분은… 사실 최근에 이별을 했어요.(웃음)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뜻에서 남겨둔 문장입니다.

TZUSOO, ‘The Cyborg Manifesto’, video with sound, 2021


이미 여러 전시를 통해 언급했지만, 오늘의 인터뷰에서도 ‘에이미’의 탄생에 대해 먼저 물어볼게요. 작가 추수의 대표작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가상의 존재에 대해서요.
AI 음악을 만드는 회사에서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필요하다며 제작 의뢰를 받은 적이 있는데, 처음엔 거절했어요. 저는 작가로서 버추얼 인플루언서나 아이돌로 여성들의 전형적인 겉모습을 디지털 세계에서 반복하는 것이 싫었거든요. 그런데 다른 면에서 생각해보니 이 작업을 통해 다른 영역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이 보이더라고요. 마침 주로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며 부딪힌 한계들에 대해 고민하던 지점이거든요.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저의 언어를 이해하고 동의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밖으로 나오면 세상은 아직 멀었다고 느껴지는 거죠. ‘이런 나의 작업이 상업 음악 신에서 일하는 분들과 연결된다면 어떨까’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와는 굉장히 다른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가지 조건을 붙여 수락했어요. 원하는 버추얼 뮤지션 ‘에이미’를 만들어주겠다. 그 대신 나는 그 에이미가 집에 돌아왔을 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싶다고요. 놀랍게도 의뢰한 회사에서 흔쾌히 제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태어난 집에 돌아온 후의 에이미를 제 작업에 등장시키게 되었어요. 가발과 옷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액티비스트 에이미로요.

에이미는 서울과 베를린 중 어디서 탄생한 건가요?
어느 나라에서 탄생했다거나 그런 건 에이미에게 없어요. 사람이 규정한 어떤 카테고리에도 넣고 싶지 않아서 만든 미지의 존재거든요. 그래서 나이도, 인종도, 젠더도 규정하지 않았어요.

에이미를 작가의 페르소나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에이미의 엄마”라 정정하는데, 스스로에게 엄마라는 호칭을 부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래 엄마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그런데 작가 생활을 하다 보니 365일 24시간 내내 작품 생각만 하고 작업만 하는 삶에 임신과 출산, 육아가 끼어들 수 없는 구조더군요. 어느 날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가진 열정과 엔트로피를 작품과 치환하고 있구나, 정말 모든 걸 쏟아부어서 낳고 있는 게 있기 때문에 아기를 못 낳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제 작품이 다 제 자식 같아요. 이런 의미에서 스스로 엄마라 칭하게 됐습니다. 에이미는 제 페르소나가 아니에요. 저를 투영한 게 아니라 고유한 에이미만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TZUSOO, ‘Aimy The Pregnant’, video with sound, 2024


AI 프로그램에 몇 가지 입력값을 넣어서 나온 수만 가지 샘플 중 선택해서 완성된 에이미는….
아, 그 부분도 많은 관객이 가진 오해예요. 에이미는 제가 직접 디자인해 피부, 얼굴, 뼈, 근육 등을 3D 프로그램을 활용해 하나하나 만든 거예요. AI 흐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아바타나 게임 관련 작업을 많이 했던 터라 제가 직접 만드는 게 가능했던 거죠. 그렇게 만든 에이미가 등장한 시리즈 작품을 내던 시기에 지금의 AI 붐이 불었어요. 처음에는 ‘나는 이 아바타를 만드느라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 AI가 해봤자 얼마나 창의적이겠어’ 하면서 시험 삼아 입력값을 넣어봤는데 놀랍도록 창의적인 거예요.(웃음) 저는 디자인 하나를 세 달, 네 달 걸쳐서 겨우 해냈는데 1초 만에 몇 천 개가 쏟아져 나오는 수준이 됐으니까. 거기서 한 번 충격받고, 창작자로서 이런 시각적 창의성에 대한 질문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이 시점에서 AI 프로그램의 창의성에 대해 제가 맞다 틀렸다 판단을 내리기보다 그냥 이 기류 속에서 AI의 창의성과 인간 창작가의 관계는 어떻게 변해갈지 계속 탐구하는 작업으로 <달리의 에이미>를 시작하게 됐어요. 살펴보면 제가 만든 에이미랑, <달리의 에이미> 속 에이미의 모습이 되게 달라요. 후자가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 ‘달리’를 활용한 작업이고요.


AI 프로그램은 분명 사람이 만든 것임에도 이를 가장 경계하는 존재 역시 사람이에요. 우리의 영역이, 특히 창의성이 침범당하진 않을지 두려워하고요. 이런 분위기에서 AI와 손을 잡고 창작물을 만들어낸다는 게 작품 자체만큼이나 인상적입니다.
제 작업이 가끔 국립현대미술관 인스타그램 같은 데 올라가면 댓글이 많이 달려요.(웃음) AI는 창의성이 없다. 그냥 이미지를 조합해 보여주는 거다. 이런 식의 논의가 지금 활발한데, 제가 창작자로서 봤을 때는 대단히 창의적이거든요. 충격적일 정도로 창의적이어서, 이건 인간이 더 잘났다고 할 수 있는 영역일까 싶어요. 창의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논하는 건 이제 의미가 없지 않나 싶고요. 오히려 지금은 우리가 이 툴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관건이죠. 그리고 이런 생각이 미술사를 사랑하는 제게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TZUSOO, ‘Agarmon-20230828-Ice Cream in My Bed’, sculpture, installation, 123×74×130cm, 2023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이미지 중 창작자로서 가장 놀란 부분은 무엇인가요? 좀 전의 답변처럼 충격적일 정도로 창의적인 무언가에 대해서요.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한 작품 중에 에이미가 갑자기 다리를 벌리고 있고, 카메라가 밑에서 찍은 것 같은 이미지가 있어요. 그게 제겐 되게 파격적이었어요.(웃음) 제가 아무리 자유롭고 싶다고 해도 사회화된 사람이기에 넘지 못하는 상상력의 선이 있잖아요. 늘 그 상상력에 도전을 하지만요. 그래서 나라면 못 만들었을 것 같다 싶은 이미지들을 보여줄 때 충격을 받죠.

그 반대로 실망한 적도 있겠죠?
굉장히 많죠. 왜냐하면 AI가 지금 발전하는 방향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데이터를 계속 공부한 결과거든요. 처음에는 충격적일 정도로 이상한 것을 많이 만들어줬는데, 업데이트되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선택할 것 같은 정형화된 이미지가 나와요. 그래서 지금 난관에 봉착한 게, 아무리 이상하게 해달라고 해도 인간이 선호하지 않는 방향으로는 데이터를 축적하지 않았는지 재미있는 그림을 안 줘요. 자유도가 더 떨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TZUSOO, ‘Pandemic Eden’, installation, 208×316cm, 2022


작가 추수의 작업물에 대해 ‘급진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이 표현에 동의하나요?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요. 저는 예술의 역사에 한 획을 긋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매번 색다른 다음 스텝을 밟는 것이 제 사명이라 생각해요. 그러려면 당연히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고 계속 도전해야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었죠.

그럼 반항적이라는 이미지는요?
아마 작업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본 투 비 반골이거든요.(웃음) 그런데 ‘무조건 반대한다’는 아니고, 문제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누군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제가 그 역할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경계가 없다는 말에는 동의할 것 같아요. 작업 방식도 다양하지만 디지털 프린트, 영상, 설치 등 매체도 다양하게 활용하는 편이에요.
가끔 저를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해야 하느냐, 아니면 영상 작가라고 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저는 한 가지 매체를 계속해서 디벨롭하는 사람이 아니고, 영감이 떠오르면 그걸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매체를 찾는 쪽이에요. 제가 AI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냥 ‘AI 그림이다’ 이렇게 보여주는 게 아니거든요. 담아내고자 하는 개념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재료, 매체, 공간을 하나하나 구성하는 게 제가 작품을 해나가는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예요.

작업도, 전시도 경계와 한계를 두지 않는 작가 추수에게 궁극의 활동 장소는 어떤 곳인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예술에 대한 환상 속에 살던 사람이어서, 유수의 미술관이 늘 꿈의 장소였어요. 거기서 너무나도 궁극적인 작품들을 만났고, 또 민주적인 공간이라는 환상에 어릴 때는 그곳이 최종 목적지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초대를 받고, 세계 각지에서 전시를 하다 보니 미술관이 두른 장벽은 돈도 장소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미술관에 가면 바보가 된 것 같다.”는 대중들의 목소리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렇다면 이제는 다시금 새로 찾아나가는 과정이겠군요.
그런 것 같아요. 물론 순수예술에 대한 진정한 토의를 할 수 있는 곳은 미술관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름다운 그곳에 계속해서 뿌리를 두겠지만, 동시에 다음 세대의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활동 영역과 무대를 펼쳐나갈 거예요. 그게 지금 당착한 저의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