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 깊게 건져 올린 언어로 이야기라는 세계를 짓는 이들이 있다. 시인의 고유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신간 에세이 3.
<눈에 덜 띄는> 이훤
“눈에 덜 띄는 것들은 비밀을 품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몇 개의 비밀을 나눠 갖게 될 거다.”
무언가를 가만히 오래도록 응시하는 것. 쉽게 경계를 나눈 뒤 판단하기보단 담담히 바라보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것. 시인 이훤의 신작 에세이 <눈에 덜 띄는>에는 그 사려 깊은 태도가 있다. 시인은 이 책을 통해 언어와 이미지, 모국어와 외국어의 경계를 횡단한다. 오랜 기간 이민자로, 이방인으로, 소수자로 살아온 시간을 기반으로 ‘눈에 덜 띄는’ 것들을 들여다본다. 사라지기 쉬운 존재들을 다정히 바라보고 또 하나하나 호명하는데,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깨닫게 된다. 우리의 차이는 차별의 이유가 아니라, 시야를 넓혀주는 매개임을 말이다.
<생활체육과 시> 김소연
“먼 데로부터 차곡차곡 도착해 온 울분들이 온몸에 꽉 차 있을 때마다 나는 오래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걸으며 시간을 횡단하는 일은 세상을 들여다보며 시를 써나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수학자의 아침> <촉진하는 밤> 등으로 삶의 장면들을 섬세하고 명징하게 포착해오던 김소연 시인의 새로운 에세이 <생활체육과 시>는 시와 생활이 그리는 포물선을 따라 걷는다. 시와 산문이 함께 담겨 있고, 그의 목소리를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웠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게 된다. 시를 쓰고 읽는 행위는 언어를 통해 너와 나 사이를, 과거와 미래 사이를 떠다니는 일임을, 그리하여 ‘같은 자리에 앉아서 다른 세계로 도착하는 일’임을 깨닫게 하는, 그리하여 자꾸만 걷고 또 쓰고 싶게 만드는 에세이.
<쓰는 생각 사는 핑계> 이소호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글쓰기가 일이 되어 버리면서, 소비는 유일하게 나를 지탱해 주는 쉼터가 되었다. 비록 내 삶에는, 통장에는, 구멍이 나기 일쑤였지만.”
어떤 힘으로 글을 쓰냐고 묻자 “손가락이 한순간도 쉬지 못할 정도로 40매 정도는 써야 향수를 살 수 있다”라고 답하는 시인이 있다. <캣콜링>으로 문단에 뜨겁게 등장한 이소호 시인의 새로운 에세이 <쓰는 생각 사는 핑계>는 문학과 쇼핑이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듯한 두 단어가 손을 맞잡은 채 유쾌하게 행진하는 책이다. 무언가를 사기 위해 쓰고, 쟁취한 물건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쓰기 위해 삶을 관찰하고 주변을 포착하며 온 힘을 다해 쓰기를 반복하는 시인의 나날이 이 책에 있다. “이 글을 읽는 분이 계시다면, (…) “아 오늘 뭐라도 사야지, 짜증나서 안 되겠네!” 소리 치면서 이소호 책 샀으면 좋겠다.”는 시인의 표현을 빌리며 당신의 소비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