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에서 말하면 목소리가 이상하게 고립되고 벌거벗은 채로 공중에 떠다니게 됩니다. 마치 단어가 아니라 새를 내뱉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모국어와 외국어,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것. 그렇게 창조된 낯선 세계에서 삶과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것. 다와다 요코의 문장을 따라가면 일어나는 일.

작가 다와다 요코, ⒸJH Engström

경계에서 춤추다

“나는 A어로도 B어로도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A어와 B어 사이에서 시적 계곡을 발견해 떨어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태어나 독일로 이주한 뒤, 일본어와 독일어를 함께 사용하며 소설, 시, 희곡, 산문 등 여러 장르의 글을 써온, 작가 다와다 요코의 말이다. <목욕탕> <개 신랑 들이기> <헌등사> 등 여러 작품을 집필하며 노벨 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어온 그의 문장 안에서 우리는 언어의 사이를 떠다닐 수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그에게 언어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신체와 긴밀히 연결된 일종의 경험이자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다. 그렇게 언어의 경계를 오가는 일은 자아와 타자, 몸과 몸 바깥의 것을 넘나들며 세상를 탐구하는 일이 된다.

다른 언어로 새롭게 보기

작가 다와다 요코. ⒸKODANSHA LTD

“외국어를 말할 때면 구멍이 뚫리거나 꺾이거나 쪼개지거나 부서지거나 휘거나 하는 부분이 생깁니다만, 그런 부분에서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알 가치가 있는 속사정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편하고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문제를 잘 느끼지 못하고, 낯선 것 앞에서야 지금껏 당연히 여겨온 것을 다시 보게 된다. 다와다 요코는 이런 순간이 자기 문학의 시발점이라 말한다. 1979년, 열아홉의 다와다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홀로 독일로 건너갔다. 낯선 언어를 사용했을 때의 감각. 내가 바라보던 세상과 사물이 완전히 새롭게 다가오는 전위적인 체험이 거기에 있었다. 그 후 작가는 ‘언어’ 자체에 천착하며 글을 써나갔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해 세계의 감춰진 면들을 들여다 보고 다른 방식으로 탐구하려는 문학적 시도를 지속해온 것이다. 기존의 문법에서 벗어나고, 예상치 못한 어휘들을 조합하는 그의 문장은 고정된 인식들에 물음표를 새기며 독자에게 새로운 시선을 가져볼 것을 제안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끊임없이 여행하는

다와다 요코의 문학에는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채 떠도는, 이방인의 시선도 있다. 소설 <목욕탕>은 독일에 거주하는 일본 여성에 주목하며, 언어가 사라진 인위적인 상황에서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그리고, <지구에 아로새겨진> <별에 넌지시 비추는> <태양제도>로 이어지는 여행 3부작은 유럽 유학 중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지구에서 사라져 동일한 모어(母語)를 쓰는 이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아낸다. 나의 몸을 타인의 시선 속에서 인식하고, 신체와 외부 세계의 경계를 고민하는 일이 그 안에 있다. 다와다는 이를 통해 정체성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또 사라지는 것임을 말한다.

낯섦 속에서 헤매기

다와다 요코의 문학은 기존의 것을 의심하며 해체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어디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세상을 그려내기에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긴 여행을 떠나면 어느 순간 여행 자체가 목적지가 돼”라는 그의 문장처럼, 우리는 그저 그가 만든 세계 안에서 떠도는 것 자체가 목적인 여행을 지속하면 된다. 언어의 억압이나 인식의 고정에서 벗어나 단어와 단어 사이를 유영하다 보면, 그렇게 낯섦 속에서 헤매다 보면, 다와다의 문학 안에서 새로운 차원의 자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