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얼굴이 있다면 어떤 형상일까. 유독 흐리고 추운 얼굴의 낱낱을 세밀히 그려내는 것이 시(詩)가 하는 일이라면, 이 지면에 등장하는 4명의 시인들은 오늘 이 순간 가장 도전적이고 예리한 붓이다. 무의미를 이겨내고, 쓸모의 강압 앞에서 의연히 자기 질문을 짊어지는 이들. 사유하고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네 시인의 첫 시집. 가장 빛나는 초상.
<샤워젤과 소다수> 고선경

쓰러진 풍경을 사랑하는 게 우리의 재능이지
‘샤워젤과 소다수’ 중에서


넘어진 뒤 툭툭 털고 일어나기보다 그 자리에 누워 있고 싶을 때, 칠흑처럼 어둡게 느껴 지는 오늘이 반복될 거라 느껴질 때면 고선경의 <샤워젤과 소다수>를 꺼내 들었다. 그럼 ‘샤워젤’ 같은 사물이 눈앞에 몽글거리고, ‘소다수’를 마실 때의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지는 듯했다. “단잠에 빠졌다가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 그런 걸 소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내 주변엔 많다”(‘돈이 많았으면 좋겠지’)며 익숙한 슬픔을 되뇌다가도, “손가락 위에서 달콤하게 빛나는 / 내일이라는 약속”(‘돈이 많았으면 좋겠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 하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시편들이 그 안에 있었다.
곱슬머리를 한 고선경 시인과의 만남은 명랑했다. 그가 맑게 웃으며 농담하거나 또렷한 목소리로 말할 때면 기분 좋은 에너지가 퍼져나가는 듯했다. 사려 깊은 대답 너머로는 주위를 응시하고 보살피려는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와 시의 첫 만남은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서관 책장에 꽂힌 시집을 우연히 꺼내 읽었어요. 교과서에서 본 시와 다르게 파격적이고 노골적이면서도 난해한 시들이 수록돼 있었고요. 파편화된 문장 사이에서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때도 작가를 꿈꿨지만, 이런 게 시라면 나는 평생 시를 쓸 수 없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어떤 강렬한 감정이 일었어요. 아마 그건 내가 모르는, 언어와 언어로 구축된 한 세계에 대한 매혹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 후 시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도 스스로 ‘나는 시인이 될 것만 같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어떤 절박함과 좋아하는 마음이 저를 계속 쓰게 했던 것 같아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가 삶을 견디게 해준 방식이었기에 그리도 절박했던 것 같아요. 쓰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었어요. 쓰기를 지속할 때만 제 삶을 긍정할 수 있었거든요.”
시와 시 아닌 것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는 오히려 시 바깥에 있는 것 같아요. 아주 천진하고 맑은 장면, 또는 지극한 사랑의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 굉장히 시적이고, 그 자체로 시라고 느껴요. 이를테면 대낮부터 술에 취한 두 노인이 어깨동무를 하고서 뒤뚱뒤뚱 걸어가는데, 한 분이 ‘네가 나를 부축하는지 내가 너를 부축하는지 모르겠어’ 하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 장면은 꼭 시 같아서 오래 곱씹어보게 돼요.”
그의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에는 기발한 발상과 웃음이 떠돈다. 세계 최초 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열린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고(‘스트릿 문학 파이터’), 시인과 래퍼가 홍대 앞 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그린다(‘리얼 다큐멘터리’). “유머는 우리를 삶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 같아요. 웃음이 가진 에너지는 정직하고 건강하다고 믿고요. 그것들이 저를 번번이 일으켜 세웠어요. 저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사랑을 느껴왔거든요.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지만, 미지의 독자들을 한 번만이라도 웃겨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게 제 애정인 것 같아요.”
그의 농담이 독자에게 더욱 와닿는 이유는 허무와 우울의 감각이 그 이면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엉망진창이라고 느낄 때가 많아요. 현실은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잖아요. 하지만 ‘원래 그런 거야’ 하며 체념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시를 쓰며 그런 말에 저항하고 싶어요. 세상은 엉망진창이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고 환대하고 사랑할 수 있는 놀라움의 연속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허무에 지지 않은 채 그럼에도 긍정하기 위한 힘은 어디에서 발현되는 것일까. “무너진 너를 일으킬 수 없더라도, 일으켜 세우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구했냐는 결과보다 구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요. 한강 작가님이 ‘희망을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요? 이런 마음들이 저를 숨지 않고 움직이게 해요.” 불행이 눈앞에 있더라도 희망을 희망하는 태도, 그건 고선경 시인과 그의 시에서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와 공명하는 질문은 무엇일까.’ 지금 시인이 붙잡고 있는 물음이다. 그런 그는 시 안에 청년의 현실을 빚는다. ‘아르바이트에 잘린 뒤 몇 번쯤 고용되고 하루에 몇 시간씩 노동하는’ 화자가 ‘빚은 푹신푹신하다’고 말하거나(‘알프스산맥에 중국집 차리기’)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를 떠올리며 “아무도 망가뜨리지 않았는데 저절로 망가지던 스물”(‘수정과 세리’)을 회상한다. 허무감과 절망감, 사방이 꽉 막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폐색감이 그 주위를 떠돈다. “저는 시인임과 동시에 서울에 살고 있는 20대 중 한 명이잖아요. 제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이 시 안에 자연스레 담긴다고 봐요.” 이와 동시에 그에게는 믿음이 있다. “내가 살아내고 겪어낸 시간과,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안에 현재와 공명하는 것들이 충분히 있을 거라 믿어요.”
“시의 효능에 대해 골몰한다. // 감동 그리고 따뜻한 시선과 관심…… / 받겠냐?” ‘건강에 좋은 시’에 담긴, 시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시인의 자조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에도 당신이 계속해서 쓰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그는 “재미있으니까요!”라고 씩씩하게 답했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에 이런 표현이 있음을 덧붙였다. “엄마가 블루베리를 먹는 이유는 / 블루베리가 눈에 좋기 때문이라는데 / 뻥이고 엄마는 그냥 블루베리를 좋아한다”. 이렇듯 고선경 시인은 그냥 시가 좋다. 시는 자신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허락하지도 거절하지도 않는다. 자신을 가치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며 때론 성큼 다가와주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느냐며 너스레 떨 듯 말한다. 뒤이어 그는 영화 <헤어질 결심>의 대사를 덧붙이며 시를 떠올릴 때 드는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다. “나 너 때문에 고생깨나 했지만,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라고.
쓰는 사람으로서 고선경이 잃지 않고 싶은 것은 ‘사랑’이다. 쓰기에 대한 사랑, 세계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그리하여 삶에 대한 사랑. “사랑은 저를 책상 앞에 앉히고, 밥 숟갈 들게 하고, 잠에서 깨게 해요. 일상이 일상일 수 있도록 해줘요. 어쩌면 생존 방식이자 생존 욕구일지도 모르겠어요. 더불어 사랑에도 생존 욕구가 있어서 아무리 훼손당해도 회복하고 재생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믿어요. 사랑이 저를 먹이고 입히고 재운 것처럼 저도 그것이 훼손되지 않게 잘 돌보고 싶어요.” 시인이 돌본 사랑은 시라는 열매로 무럭무럭 자라 시 너머의 독자들에게 퍼져나갈 것임을 안다. 그 옆에서 고선경 시인은 해맑게 웃으며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을 것만 같다. “당신은 마음에서 돌을 꺼내주세요 / 나는 그것으로 별사탕을 만들 줄 압니다”(‘별사탕과 연금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