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얼굴이 있다면 어떤 형상일까. 유독 흐리고 추운 얼굴의 낱낱을 세밀히 그려내는 것이 시(詩)가 하는 일이라면, 이 지면에 등장하는 4명의 시인들은 오늘 이 순간 가장 도전적이고 예리한 붓이다. 무의미를 이겨내고, 쓸모의 강압 앞에서 의연히 자기 질문을 짊어지는 이들. 사유하고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네 시인의 첫 시집. 가장 빛나는 초상.
어젯밤 우리가 나누던 말들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우리의 언어는 멸종에 관한 것이었는지 사랑에 관한 것이었는지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중에서
폭발할 때 가장 빛나는 것
말 단어 대화 목소리들



“지질시대, 백악기, 트라이아스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지금까지 지구에 대멸종이 다섯 번 일어났거든요. 보통 대멸종 하면 공룡의 멸종만 생각하잖아요. 근데 역사상 가장 큰 대멸종이 일어난 건 페름기-트라이아스기예요. 이런 걸 읽는 게 재미있었어요.” 지구상에 나타난 초식동물 중 가장 거대했다는 브라키오사우루스를 실제 크기로 구현해놓은 한 과학관 공원으로 향하는 길. 유선혜 시인과 나눈 대화의 일부다. 이날의 대화는 시인과 나눈 것이라기에는 다소 생경하고 신선한 단어들이 툭툭 빛을 발했는데, 이는 그의 첫 시집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속 ‘뼈의 음악’, ‘어떤 마음을 가진 공룡이’, ‘지질시대’ 등 그의 시 곳곳에서도 낯설고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유선혜 시인의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는 2024년에 만난 가장 강렬한 시작이었다. “그러나 나는 기어이 써버리는 사람 / 논리도 없이 / 비약만 있는 미래를 꿈꾸고 / 망해버린 꿈들을 죄다 옮겨 적는 사람 / 이걸 토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죠?” 시집의 첫 페이지 ‘시인의 말’(이자 시 ‘반납 예정일’)을 지나 이어지는 첫 시의 첫 행에서는 “삶에 대해 자꾸 논하고 싶은 게 제가 걸린 병이에요. 잘못된 선택이 모이면 그 인생은 대체로 슬퍼집니다.”(‘괄호가 사랑하는 구멍’)의 기세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애써 고개 돌리고, 눈감을 법한 것을 기어이 감각하고 인지하는 사람. 그리하여 죄다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의 예리한 슬픔은 그렇게 동시대 독자들의 지지를 받는 중이다. 발간한 지 2개월 반이 지난 지금 그의 첫 책은 5쇄 증쇄를 앞두고 있다.
유선혜 시인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다 문학으로 몸을 옮겼다. 그 과정이 ‘반납 예정일’, ‘구멍의 존재론’ 등 그의 시 일부에 담겨 있기도 하다. “철학은 주로 ‘OO란 무엇인가’라는 형식으로 거대한 문제에 대해 질문하잖아요. 언어란 무엇인가, 의미란 무엇인가처럼. 언어철학과 심리철학을 좋아했는데 거기서 말하는 게 결국 회의주의적 결론으로 빠지는 것 같았어요. 지난 2천5백 년 동안 많은 이들이 결론을 내고자 했음에도 아직도 이렇게 논쟁하는 것이 제게는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문학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의 시는 철학으로 인해 풍요롭고, 다채롭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조연정은 해설에서 “‘철학적으로 청소된’ 영혼의 문장들”이라 했다.) 철학의 흔적은 그의 시 곳곳에서 드러난다. “상상 가능하다 / 그러므로 가능하다. / 그러므로 어딘가 존재한다”(데이비드 차머스가 제안한 철학적 좀비에 관한 상상 가능성 논변을 변형) 처럼 철학자의 문장을 발췌하고, 인용하며, 뒤튼다. 이 문장들은 작가를 거치며 내포한 논증의 내용과 무관하게 문학적 아름다움을 갖추게 된다. “철학을 안다고 해서, 혹은 모른다고 해서 제 시를 읽는 데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북 토크에서도 자주 하는 말인데, 철학은 그저 제가 가져온 이야기일 뿐이니 심오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해요.”
표제작인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의 시적 기발함 역시 철학적 사고 실험으로부터 출발한다.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Hilary Putnam)의 ‘쌍둥이 지구’라는 사고 실험이 있어요. 지구와 동일한 조건을 갖춘 쌍둥이 지구가 존재하는데, 단 하나 물의 원소 구조만 다른 거예요. 모든 관찰 가능한 특성(맛·색·비등점 등)이 물과 동일하지만 화학적으로는 물과 다른 물질인 거죠. 이 경우 우리가 물을 물이라 했을 때 지시체(용어가 가리키는 대상)가 달라지기 때문에 물의 의미도 바뀌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져요. 의미라는 것은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에도 존재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이 실험의 의의보다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그렇다면 사랑과 멸종을 바꾸어 불렀을 때, 두 단어만 바뀐 지구를 상상하니 어딘가 좋게 느껴졌어요. 동시에 말이 되고요.” 멸종과 사랑이 긴밀히 겹쳐지고 포개지는 여정, 작가가 짜놓은 문장에서 두 단어를 바꿔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사랑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멸종하고, 멸종하기에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시가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라는 명령이잖아요. 근데 이를 바꿔 읽어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아무것도 사랑으로 바꿔 읽을 수 없는 현실에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요. 또 멸종이라는 게 그저 낭만적으로 읽히기에는 실제 우리의 삶에서 임박한 문제이기도 하고요. 멸종이 아름답게 읽히는 게 조금 무서웠어요. 무턱대고 낭만적으로만 읽히는 건 윤리적이지 않은 문제니까. 다행히 그렇게 읽지 않으시는 것 같긴 하지만요.”
요즘 작가를 붙잡는 하나의 질문은 ‘어떻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이다. “저는 제 이야기만 쓸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세계의 진리, 바꿔 말해 어떤 보편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말 앞에서 항상 부끄러워집니다. 그래서 어떻게 제 비명과 중얼거림이 이 세상 모든 것의 목소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요. 가장 미시적이고 개별적이고 사소한 것이 어떻게 가장 거시적이고 커다랗고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 과제예요. 특히 요즘의 뉴스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답을 찾는 와중에 마주하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은 그를 계속 쓰게 한다.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면 속에서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 한 단어를 굳이 고르자면 어떤 균열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어요. 매일 걷는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의 보도블록들이 이상해 보이고, 모든 것이 다 가짜가 아닐까 하는 괴상한 생각이 들 때요. 저는 그 감각을 최대한 구체적인 일상과 경험에 발 디딘 채 써보려고 하고, 제가 배우고 읽은 모든 것과 연결해 설명해보려고 해요. 늘 실패하는 쪽에 가깝지만요.” 실패의 여정 속에도 시의 막강함, 그 힘은 그를 계속 쓰게 한다. “시가 제게 준 것이 너무 많아요. 제 이야기를 남들이 들어준다는 사실이 가장 신기하고 감사하죠. 시를 통해 연결되는 모든 사람과 사건이 과분하게 느껴져요. 저는 가끔 과하게 솔직해서 마치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나체라는 것이 징그럽기 마련이잖아요. 경찰에 잡혀가고요. 시는 알몸으로 바깥을 뛰어다니는 저 자신에게 입혀주는 옷과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제 징그러운 내면이 옷을 입고 밖에 나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의 힘 자체만으로도 영원히 쓰고 싶은 기분이 들어요.”
그의 시 중 독자들에게 자주 발췌되고, 사랑 받는 문장 중 하나가 “사랑의 모양이 있다면 / 서로를 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 접힌 눈매의 모양일 거야 / 착각 없이 무엇도 사랑할 수 없으니까 // 그렇기에 / 맘껏 착각하는 것 / 그게 우리의 임무지”(‘그게 우리의 임무지’)다. 사랑이 어려운 지금 기어이 사랑하기로 결심한 이의 용기가 어느 때보다 더 귀하게 다가온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어딘가 뻔하잖아요. 근데 편집자분이 제 시집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오는지 세어봤는데 총 마흔한 번이 나왔다는 거예요. 많이 쓰지 않으려고 애써 피했는데, 피하면서도 결국 이만큼 썼다는 건 내가 사랑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거잖아요.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어요. 그래서 뒤표지에 “어쩔 수 없이 / 사랑이라는 단어를 고르는 마음을 존중하고 싶다’’라는 문장을 넣었어요. 그는 그렇게 “살아가는 모든 것의 / 타고난 결핍 / 타고난 허무 / 타고난 무의미 / 타고난 균열 / 타고난 어긋남’’(‘구멍의 존재론’)에서 도망치지 않고, 힘껏 껴안은 채 마흔두 번째 사랑을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