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에게 주어지는 선택과 표현의 폭이 예술가만큼이나 다채롭다고 생각해요.
식재료를 선별하고 조합하다 보면 무궁무진한 맛이 탄생하니까요.
그 풍미를 누군가에게 선보일 때, 말이나 글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전해질 거라고 믿어요.”
에드워드 리 셰프가 펼쳐가는 요리의 미학.

에드워드리 셰프 흑백요리사 EdwardLee 더루프 레스토랑

2년 전 공개된 <흑백요리사> 이후 틈틈이 한국을 찾고 있어요. 이제는 이곳이 한층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전엔 한국에 올 때마다 저 자신이 외부인이나 관광객 같았는데요. 요즘은 한국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 덕분에 이 나라를 더 아끼게 됐죠. 한국 문화에 대해 더 알아가며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고 싶어요.

최근 한국에서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나요?

한국에 오면 혼자 서울 곳곳의 식당을 찾아가곤 하는데, 며칠 전 수원에 가봤어요. 통닭을 먹기 위해서요.(웃음) 훌륭한 맛이었고, 우연히 들른 시장도 인상 깊었어요. 새로운 발견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방송이나 행사 등을 통해서도 한국 각지를 찾아가고 있죠. 모든 행보가 한식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요. 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일을 선택하는데, 한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면 더 좋더군요. 지난봄 방송한 다큐멘터리 <열두바다>에서는 배우 류수영과 함께 속초 등지를 찾아가 한국 해산물에 대해 배웠어요. 아줌마들과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눠 먹고, 포장마차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웃음) BBC에서도 공개된 프로그램인 만큼, 한식에 대한 세계의 인식을 높이는 기회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우리 음식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죠. 한식을 다루는 셰프로서 요즘 무엇에 더욱 주목하고 있나요?

한식의 다양성을 널리 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비빔밥과 갈비, 김치 등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실제로 미국에 있는 제 레스토랑에서 늘 젓갈을 활용합니다. 젓갈 없이 김치를 담을 수 없고, 그게 우리 식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현지 손님에게 소개하면서요.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이탈리아나 프랑스 음식처럼 계속 사랑받을 수 있다고 봐요. 그 영역을 더 확장할 기회가 분명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찍은 사진의 배경이 되어준 ‘더 루프(The Roof)’에서 한국 식재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식을 선보이고 있죠. 그동안 한식의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해왔습니다.

혁신만을 추구하면 음식이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고, 전통을 존중하는 동시에 창의적인 시도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전통과 혁신을 나누지 않기도 해요. 저는 미국에서 자라면서 한식에 핫도그나 햄버거, 피자를 비롯한 미국의 음식 재료를 섞어왔으니까요. 여러 문화 속에서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게 저한테는 익숙합니다.

본인이 접해온 문화가 담긴 음식은 단순한 끼니 이상의 의미를 지닐 것 같습니다. 이를 요리하는 마음은 어떤가요?

고민이 많지는 않아요. 오히려 본능에 가깝습니다. 제가 살아온 배경과 다양한 음식 경험을 믿는 편이기도 하고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면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의 관점에서 보게 돼요. 다양한 문화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태가 곧 제 음식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셰프에게는 장점으로 작용할 듯한데 어떤가요?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어요. 한 나라의 식문화에 대한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제게 떡볶이는 하나의 음식이지만, 한국인이 생각하는 떡볶이는 종류가 아주 많잖아요. 이런 미세한 차이까지 느낄 수 있는 입맛이 부러워요.(웃음) 그게 제가 한식을 더 배워가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리하는 과정 중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끔 제 음식을 먹고 “아, 이 맛은…!” 하면서 뭔가를 떠올리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있어요. 최고의 칭찬이자 자랑스러운 순간이죠. 손님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요. 하지만 그 기쁨을 얻기 위한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하루도 마음껏 쉰 적이 없어요. 출근하지 않는 날에도 음식 생각을 하고, 꿈에서조차 요리를 할 정도거든요. 힘들지만 이 일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저에게 셰프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에요.

혹시 집에서도 요리를 자주 하나요?

그럼요. 매일 합니다. 대체로 맛있어요.(웃음)

레스토랑 바깥에서는 어떤 음식을 제일 많이 만드나요?

늘 냉장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걸 활용해 면 요리나 샌드위치 등을 만들어요. 남은 재료를 요긴하게 쓰는 편이죠. 음식물을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오르네요. “우리가 나고 자란 땅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 재료를 쓸 때마다 우리는 땅에서 뭔가를 가져가는 것이니, 가져간 만큼 다시 돌려줘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특히 자녀가 생기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점차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어느덧 열세 살이 된 제 딸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계속 마주할 수 있도록 지구를 잘 지켜가고 싶어요. 제 딸이 환경오염 때문에 물고기를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어획량을 줄이고 바다와 대지, 공기를 비롯한 자연환경을 보존해야 합니다. 모든 식재료는 결국 자연에서 비롯되니까요.

지구를 생각하는 그 마음은 워싱턴에서 운영 중인 한식 레스토랑 ‘시아(SHIA)’에서도 느껴집니다.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며 비영리 활동을 이어가는 곳이라고요.

지속 가능한 레스토랑을 위해 주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연구 중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에요. 일례로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면서 ‘주방에 플라스틱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주변에 영향을 주고자 합니다. 물론 플라스틱을 절대 쓰지 말자는 뜻은 아니에요.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아주 조금만 줄여도 괜찮아요. 모든 레스토랑이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효과는 무척 클 테니까요.

레스토랑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따를 수 있는 방법이네요.

그렇죠.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본인 가정의 주방에 플라스틱이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고, 그중 하나만 다른 소 재의 제품으로 바꿔보세요.” 저도 집에서 위생 랩을 쓰지 않고, 나무 도마를 10년 가까이 사용 중이에요. 다소 비싸더라도 오래 쓸 수 있는 도구와 식기를 사려고 합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실천이라고 생각해요.

한편 공동대표를 맡은 비영리단체 ‘리 이니셔티브(The LEE Initiative)’에서는 외식업 내 평등과 다양성을 위해 힘써왔습니다. 업계를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행동하며 변화를 실감하나요?

네. 여성 셰프와 바텐더, 오너가 많아지고 있어요. 레스토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고, 남성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성과 여성, 다양한 인종의 팀원이 주방에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흐뭇하더군요. 30년 전, 제가 젊은 셰프였을 때만 해도 미국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아주 많아졌어요. 한국 셰프의 인기가 대단합니다.(웃음) 그만큼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앞으로 더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영문학을 전공한 덕분인지 에드워드 리의 글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리와 관련한 책을 3권 출간했고, 모두 한국어 번역본이 있죠. 최근에 낸 <버번 랜드>(2024)에서는 위스키 애호가라는 사실도 엿볼 수 있어요.

위스키는 보드카나 맥주보다 긴 시간을 필요로 해요. 짧게는 3년, 길게는 10여 년의 숙성을 거쳐야 하죠. 그래서 위스키를 만드는 일은 수익보다 그 술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훌륭한 위스키를 마실 때마다 그 안에 깃든 열정과 헌신을 느끼고, 저도 셰프로서 그런 태도를 가져야겠다고 되새깁니다. 한국에 있을 땐 ‘기원’을 비롯한 한국 위스키를 자주 즐겨요. 보리가 주재료이다 보니 옥수수로 만든 버번위스키보다 당도가 낮고, 스파이시한 풍미는 더 강해요.

한국 위스키와 어울리는 음식을 추천한다면요?

오 마이 갓.(웃음) 기름진 삼겹살에 매콤한 쌈장을 올리고, 위스키를 곁들여보세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조합입니다.

또 다른 저서인 <버터밀크 그래피티>(2018)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레시피라는 것이 놀라우리만치 개인적인 표현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음식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나요?

특별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편은 아닙니다. 그저 제가 살아온 과정이 레시피에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 같아요. 사람이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듯, 제 요리도 조금씩 변해왔어요. 스무 살 시절과 50대가 된 지금의 제 음식은 매우 다릅니다. 지금은 좀 더 차분하고 단순하지만, 깊은 풍미를 지녔죠. 결국 셰프는 자기 자신을 음식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한 사람이 오롯이 담긴 음식이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보나요?

음식은 문화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비슷한 것 같아요. 어느 나라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컴포트 푸드(comfort food)’가 있잖아요. 한국의 만두나 미역국 같은 음식이 다른 곳에도 분명 있겠죠. 음식의 보편성에 대한 이해와 믿음을 바탕으로 요리하고 싶어요. 제가 미국에서 갈비찜을 내놓을 때, 그와 관련한 기억이나 향수가 없는 현지인도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어딘가 우리 할머니 음식과 닮았네’ 하고 느낄 수 있도록요.

누군가의 음식에서 그런 인상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요?

나이 든 모녀가 손님을 맞이하는 인사동의 작은 식당에서 연탄에 구운 고등어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연탄불은 셰프 들도 다루기 어려워하는데, 수십 년간 수많은 생선을 구워오면서 완벽히 익히는 법을 터득하셨더군요. 소박한 공간에서 내어주는 단출한 음식이었지만, 한 조각 맛보니 그 가족의 노고와 역사가 녹아 있는 듯해 감정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참 맛있었어요.

식재료를 언어로 삼아 이야기할 때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음식은 미술이나 음악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화가가 색을 고르고, 음악가가 음을 택하듯이 셰프도 어떤 식재료를 쓸지 살피잖아요. 셰프에게 주어지는 선택과 표현의 폭이 예술가만큼이나 다채롭다고 생각해요. 식재료를 선별하고 조합하다 보면 무궁무진한 맛이 탄생하니까요. 그 풍미를 누군가에게 선보일 때, 말이나 글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전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마치 예술 작품을 해설 없이 감상하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음식과 예술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회화는 영원히 남고, 음원은 언제든 다시 들을 수 있죠. 하지만 음식은 먹고 나면 없어져요. 또 먹고 싶어 다음 날 다시 찾아도 어제 맛본 것과 조금 다를 수 있고요. 저는 그게 음식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라지지만, 그 순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아름답게 여겨져요.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어가는 지금의 본인을 식재료에 비유한다면, 무엇에 가까운 것 같나요?

마늘이요.(웃음) 마늘은 주재료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여러 문화의 음식에 두루 쓰이잖아요. 어디에나 잘 어울리고, 없으면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제 몫을 다하죠. 저도 그런 셰프였으면 해요. 어느 나라에서 무엇을 하든, 음식을 통한 나눔과 배움을 지속해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