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힙합 듀오 그루비룸이 걸그룹 튜이드의 데뷔 앨범 프로듀싱을 맡아 새로운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 롤러코스터 출신 히치하이커부터 진보, 디즈, 수민, 박문치까지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들이 K팝 프로듀서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 키라라와 버논의 협업, 한로로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작업 등 K팝 아티스트들이 인디 뮤지션들과 직접 교류하며 시너지를 냅니다.

지난 8월 24일 발매된 산뜻한 에너지로 가득한 튜이드(TUIDE)의 첫 번째 EP ‘Tune&Play’는 또 한가지 즐거운 흥미거리를 던졌습니다. 바로 ‘그루비룸(휘민&규정)’이 앨범을 총괄 프로듀싱했다는 사실 때문인데요. 팀 결성 초반 효린, 청하 등 K팝 아티스트들과 함께한 이력이 있긴 하나 대체로 힙합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해온 듀오가 걸그룹의 데뷔 앨범을 프로듀싱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죠. 릴모쉬 핏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는 휘민이 최근 보이넥스트도어의 첫 정규앨범의 선공개곡 ‘똑똑똑’의 아웃트로 비트를 선사했지만 보이넥스트도어의 음악은 힙합 범주에 가깝죠. 규정이 최근 아이온으로서 발매한 풀앨범 ‘XEÖUL’ 또한 완전히 댄서블한 일렉트로닉 사운드 그 자체였던 만큼 튜이드의 앨범은 그루비룸의 새로운 프로듀싱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루비룸의 데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두 팀의 음악적 여정이 앞으로도 쭉 이어질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싱어송라이터들의 프로듀서 변신
사실 그루비룸이 하이브의 새 걸그룹 앨범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이변은 아닙니다. K팝은 한국의 음악씬에서 가장 많은 자본이 몰리는 곳이죠. 새롭고 좋은 음악을, 단시간에 많이 만들어야 하는 목표 또한 분명하고요. 이미 십 수년전부터 인디 씬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던 여러 아티스트들은 K팝 엔터테인먼트들과 자연스럽게 편입해 일해왔습니다. 국내 애시드 재즈씬의 선구자였던 밴드 ‘롤러코스터’의 멤버였던 Hitchicker(최진우)는 브라운아이드걸스의 ‘Abracadabra’, (f)X ‘피노키오’, 보아 ‘허리케인 비너스’ 등 수많은 곡을 써냈고 SM에서 하이브로 소속을 옮긴 최근에는 피철인(세븐틴 디노)의 ‘놀아보세’를 프로듀싱하며 소식을 알렸습니다. 2000년대 중반 한국 R&B/힙합 씬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며 등장한 진보(JINBO the superfreak)는 샤이니, f(x), BTS ‘Pied Piper’ 등에 참여했던 바 있고, 네오소울 장르를 누구보다 세련되게 구사했던 디즈(Deez)는 SM 소속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보컬 프로덕션에 관여하며 특히 NCT DREAM 천러, 해찬의 음악적 멘토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평소 본인이 좋아하던 섹시한 R&B 무드로 가득했던 해찬의 솔로 앨범 ‘TASTE’의 일등공신 또한 디즈죠.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라고 불리며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뮤지션들과 협업해왔고,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상’과 ‘음반상’을 수상했던 수민(SUMIN) 역시 레드벨벳, 트와이스 채영, 아이유, 리센느, 에스파 ‘Armageddon’, KiiiKiii의 곡에 참여하는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입니다.


K-팝 아티스트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싱어송라이터&프로듀서 중 한 명으로 박문치 도 빼놓을 수 없죠. 엑소 수호, 정세운과 꾸준히 작업해온 한편 앤팀(&TEAM) ‘MIXMATCH’, NCT WISH ‘Surf’, 투어스(TWS) ‘SODA SODA’에 참여했습니다. KiiiKiii ‘Dancing Alone’ 리믹스, 그리고 라이즈(RIIZE)가 리메이크한 ‘Hug’, NCT WISH의 ‘Boy Meets Girl’ 편곡도 박문치의 손에서 탄생한 바 있습니다. 어쩐지 모두 그녀와 어울리는 사랑스러운 곡들이네요.


멜로디는 있어, 그럼 가사는 누가 써?
프로듀싱만 하냐고요? 아뇨, 노랫말을 쓰기도 합니다. 작사가가 아닌 아티스트들의 감각에 가사를 맡기는 것 또한 꾸준한 흐름 중 하나예요. 곡 작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K-팝의 구성상 랩의 비중이 있는 곡들이 많다 보니 래퍼 출신 아티스트들이 선호되기도 하는데요. 힙합의 틀에서 벗어나 흥미로운 음악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소코도모는 NCT 127 ‘질주(2baddies)’의 1절 벌스를 썼던 것에 이어 이번 127의 정규 7집 ‘Legacy’에 참여했고, 페노메코 역시 있지(itzy), NCT, EXO, 디오(D.O), 화사 등 다양한 팀의 작사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아티스트 중 한 명입니다.

키키(KiiiKiii)는 분야를 막론한 아티스트들의 감각을 자신들의 노랫말로 가장 잘 소환하는 팀 중 하나입니다. 이슬아 작가와 꾸준히 작업해온 것에 이어, 지난 8월 발매한 새 미니앨범 ‘WhyKiiiKiii’에서는 더 많은 아티스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404(New Era)’의 가사 전체를 도맡아 썼던 오메가 사피엔은 이번 앨범에는 수민(SUMIN)과 함께 타이틀곡 ‘Pop Off Pop Off’의 가사에 참여했죠. 1집부터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릴체리는 물론 카모(CAMO), 더딥(The Deep)같은 인디씬의 개성 넘치는 여성 뮤지션들의 이름도 보입니다. 특히 선공개곡이었던 ‘Candy Pink Magic Hole Flip Phone (나 어떡해)’는 하이퍼팝 씬의 신예인 2002년생 뮤지션 에피(Effie)와의 만남으로 화제가 됐죠. 비록 최종 크레딧 표기에 대한 에피 측의 이의 제기가 있는 등 마찰이 있었지만 계속 새로운 감각을 발굴하고 과감하게 시도해보는 A&R팀의 노력은 박수를 보낼만합니다.
그래서 올해 인디씬과 K팝 최고의 협업은?

하지만 올해 가장 뜻밖의 ‘발굴’은 단연 전자 뮤지션인 키라라(KIRARA)와 V8(디에잇&버논)의 만남이 아닐까 합니다. 멋진 두 사람의 유닛 앨범 ‘singasong’에 수록된 버논의 솔로곡 ‘미아’는 도입부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는 또렷한 리듬과 힘있는 드럼킥은 듣자마자 ‘키라라다!’를 외치게되죠. 조금 더 듣다 보면 신나게 펼쳐지는 멜로디와 별개로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보컬이 지난 버논의 솔로 ‘Shining Star’가 연상되고요. 이번 협업은 한번도 K-팝 아티스트와 작업한 적 없는 키라라에게 버논이 먼저 연락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키라라와 꾸준히 작업해온 한정인도 함께했습니다. “그래, 그렇지만 우린 정신을 좀 차려야 해/ 1만 년 전 그날처럼 다시 달려야 해 / 낯이 아닌 이제 말을 좀 더 가려야 해/ 시간 없어, 누가 우리를 좀 말려야 해”라는 가사 위에 어린시절 홈비디오 촬영분부터 데뷔 후 버논의 모습까지 쭉 담긴 ‘미아’의 필름을 보고 있으면 신나기만 했던 노래가 왠지 조금 애틋해져요.

요즘 K-팝 아이돌의 ‘아이돌’, 한로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최근 코르티스의 신곡에 본의 아니게 ‘소환’되기도 했던 한로로가 가장 먼저 협업했던 K-팝 아티스트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TomorrowXTogether)인데요. 2023년 발매한 앨범 ‘이름의 장: FREEFALL’ 앨범에 수록된 ‘물수제비’는 투바투의 음악이 가진 락의 정서가 한로로의 감수성으로 잘 표현된 아주 서정적이고 힘있는 곡입니다. 투바투는 유일하게 한로로가 작곡작사에 모두 참여한 곡을 선사받은 주인공이기도 하죠. 이 만남에는 2022년부터 위버스 등에서 한로로의 노래를 꾸준히 추천했던 수빈의 ‘팬심’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렇게 생겨난 인연은 2025년 MBC가요대제전에서 태현과 한로로의 ‘사랑하게 될 거야’ 합동 무대로 이어졌습니다. 같은해 한로로는 태연의 ‘악몽(Nightmare)’에, 그리고 이어서 ‘Blue eyes’ 작사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올해 한로로가 노랫말을 선사한 주인공은? 바로 엔믹스(NMIXX)와 예나입니다. 한로로는 엔믹스의 ‘Heavy Serenade’ 가사를 쓰며 처음으로 걸그룹의 타이틀곡에 참여하게 됐는데요. “커진 심장 소릴 들어봐 영원히 기억될 이 순간/ 가사가 된 우리들을 봐 이미 넌 불러본 멜로디”라는 노랫말을 들으며 심장이 벅차오르지 않을 수 없겠죠. 상반기 ‘캐치 캐치’로 뜨겁게 사랑받았던 YENA(예나)가 3월에 발매한 ‘LOVE CATCHER’ 앨범 수록곡인 ‘4월의 고양이’의 가사 또한 한로로의 손에서 탄생한 바 있습니다. 가사는 물론 맑고 가느다란 예나의 목소리가 사랑스러운 곡이랍니다. 남은 한해 또 어떤 만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분좋게 놀랄 준비를 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