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에디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딩을 사본 적 없는 패딩 반대론자였다. 이유는 단순한데 옷의 생김 자체가 두루뭉술하고 과한 볼륨이 싫어서다. 패딩의 어원을 찾아보면 ‘속’ 또는 ‘충전재’. 옷에 충전재를 더했으니 따뜻하긴 할 테지만 부피감 또한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사실이다. 말하자면 패딩=뚱뚱한 옷인데, 패션 에디터 자존심상 엄동설한에 땀띠가 날 만큼 따뜻하다해도 뚱뚱한 옷 따윈 입을 수 없었다. 겨우내 감기를 달고 살지언정 예쁘고 폼이 나야 직성이 풀리니, 패션 에디터에게 패딩은 안타깝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대. 물론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토록 패딩을 폄하하던 에디터가 올겨울엔 패딩이 너무 사고 싶어졌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지난 F/W 시즌 세린느 쇼를 보고 난 직후부터다. 어깨를 슬쩍 드러낸 세린느의 곱디고운 크림색 더블 브레스티드 패딩 코트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렸다고나 할까. 세상에 패딩이 이토록 클래식하고 세련돼 보일 수 있다니(심지어 날씬해 보이기까지). 지금까지 에디터가 알던 패딩과는 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역시 피비 필로가 패션 천재로 불리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뭉뚝하고 못생긴 줄만 알았던 패딩이 세상에서 가장 쿨한 외투로 탈바꿈했으니, 성형수술도 이만하면 신의 경지다.

세린느와 더불어 이번 시즌 패딩의 뉴 패러다임을 이끄는 데는 샤넬 역시 한몫 톡톡히 했다. 샤넬은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트위드 수트에서 영감 받은 독특한 패딩 수트를 선보였는데, 올록볼록한 엠보싱 화장지가 연상되는 패턴을 적용한 패딩 스커트와 재킷 시리즈를 완성했다. 단, 광택 있는 소재에 엠보싱 가공까지 한 덕분에 화려하기 그지없으니 한 벌로 입기보다는 데님이나 트위드, 혹은 캐시미어 아이템과 믹스 매치하길 권한다. 샤넬 VIP임을 광고할 게 아니라면 그편이 훨씬 쿨하고 스타일리시해 보일 테니.

 

한편 파리의 패딩 열풍은 밀라노에서도 계속된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건 막스마라펜디, 그리고 모스키노. 먼저 지지 하디드의 마릴린 먼로 식 코트 입기로 히트를 친 막스마라는 패딩 역시 그래니 시크 스타일의 레트로풍을 고수했다. 퍼를 안감으로 덧대고 새틴을 누빈 패딩 코트는 고급스럽기 그지없는 데다 디자인도 클래식해서 겨우내 입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아이템. 여기에 그 옛날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서 고소영이 즐기던 스타일로 리바이스 501 청바지와 흰 티셔츠, 동그란 골드 링 귀고리까지 조합한다면 머리를 안 감고 나간다 해도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세련된 룩을 연출할 수 있다. 만약 앞서 언급한 패셔너블하거나 시크한 스타일보다는 여릿여릿한 천생 여자 스타일을 연출하고 싶다면 우유색과 살구색으로 걸리시한 패딩 룩을 선보인 펜디 컬렉션을, 힙합 스피릿으로 충만하다면 모스키노에서 선보인 형형색색의 현란한 패딩 컬렉션을 참고하면 좋을 듯.

이처럼 이번 시즌 패딩의 환골탈태는 가히 놀라울 정도다. 사실 보온성만 놓고 보면 리얼 퍼와 패딩의 우위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리얼 퍼를 입을 때의 가격 부담, 동물보호 연대의 눈치를 살피는 수고, 스스로 양심의 가책 등을 고려한다면 패딩은 겨울의 혹한에서 당신을 포근하게 감싸줄 최상의 선택이다. 그런데 심지어 이토록 아름다운 자태마저 겸비했다면 이런 옷은 사는 게 돈 버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