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봄마다 찾아오는 ‘꽃무늬’가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유의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부터 자유분방한 스트리트 무드를 앞세운 룩까지,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쳐 다양한 스타일로 진화했으니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없다. 새 시즌에도 식을 줄 모르는 플라워 패턴 트렌드의 흐름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크게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플라워 모티프로 여성성과 로맨티시즘을 극대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그룹. 계절과 유행을 막론하고 변함없이 꽃을 향한 사랑을 드러내온 돌체 앤 가바나는 이번 봄·여름 역시 장미와 데이지 꽃을 적극 활용한 룩으로 밀도 높은 컬렉션을 완성했다.

 

여기에 다채로운 주얼 장식과 쿠튀르급 액세서리를 더해 낭만적인 분위기가 충만했음은 물론이다. 퇴폐적이면서도 우아한 알렉산더 맥퀸 역시 곳곳에 플라워 프린트를 영민하게 배치했는데, 섬세한 자수와 잔잔한 꽃무늬를 가미한 컬렉션은 맥퀸 특유의 이중적 매력이 돋보였다. 더불어 에뎀과 지암바티스타 발리, 델포조는 동화 속 공주가 떠오르는 서정적인 플라워 패턴을 선보였고, 볼드하고 그래픽적인 꽃무늬가 등장한 마르니와 드리스 반 노튼 역시 꽃의 낭만을 설파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한편, 꽃에 대한 직접적인 애정 공세가 낯간지러운 이들을 만족시킬 새로운 감성의 플라워 모티프 역시 눈에 띈다. 앞서 언급한 패션 하우스가 직접적인 방식으로, 그러니까 ‘대놓고’ 여성성을 자극해 거부감이 든다면 지금 소개하는 이들을 주목할 것. 간결한 트렌치코트와 원피스에 스며들 듯 피어난 캘빈 클라인 컬렉션의 플라워는 더없이 쿨하다. 여기에 납작한 슬립온 슈즈까지 더해 그야말로 ‘쿨 키즈’들이 입을 법한 플라워 룩을 완성했다. 평범한 흰색 면 티셔츠와 함께한 넘버 21, 브로케이드 스커트에 스웨트셔츠를 매치한 마크 제이콥스, 잔잔한 꽃무늬를 입힌 코치의 바이커 룩은 또 어떤가.

 

특유의 사근사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 탓에 플라워 프린트를 멀리해온 여성들의 마음도 단번에 사로잡을 듯. 뭐니 뭐니 해도 단연 백미는 생 로랑과 베트멍이 아닐까? 장미꽃 시폰 드레스에 축 늘어지는 니트 카디건을 걸친 생 로랑, 앞치마를 두른 듯 독특한 꽃무늬 원피스를 선보인 베트멍은 그야말로 가장 동시대적인 플라워 트렌드를 창조했다 할 만하다. 이는 꽃무늬의 전형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 여성스럽고 청초한 모습과 상반되는 요소를 영민하게 조합한 결과물. 이쯤 되면 더 이상 플라워 트렌드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듯. 새 시즌, 디자이너들이 다채롭게 선보인 스타일 중 자신의 입맛대로 고르기만 하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