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휘, <아레나> 에디터
선글라스를 습관처럼 쓰는 사람이 문득 귀엽게 느껴졌다. 밥을 먹을 때나 책을 볼 때나 담배를 피울 때나. 작은 불편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어떤 태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원 데이>가 생각났다. 영화에서 앤 해서웨이가 쓴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다. 동그란 선글라스와 어울리는 헝클어진 머리, 그 장면에선 수영복을 입고 있었지만 어쨌든 별거 아닌 옷을 신경쓰지 않고 입는 담담함. 불현듯 평소의 생활이 느껴지는 심플한 옷들을 입은 여자들이 좋아졌다.
최태순, 남성복 디자이너
봄을 맞으면 늘 하염없이 산책할 궁리를 한다. 5월의 데이트에서 산책을 빼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종종 산책과 어울리는 사람을 상상하는데, 그 사람이 봄의 풍경을 해치지 않는 담백한 차림이었으면 좋겠다. 은은하게 풍기는 머스크 향, 굵은 스트라이프의 포플린 셔츠, 자연스럽게 물이 빠진 청바지가 생각난다. 역시 머리는 짧고 생기가 있어야 한다. 문득 내가 아내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여기서 글을 맺는다.
김참, 사진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산촌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집에 혼자 남게 되면서 자급자족으로 생활하는 내용이다. 벼농사를 짓고, 밭에 채소를 키우면서 자기가 손수 키운 것들로 음식을 해 먹는다는 단순한 이야기. 문득 이 영화의 주인공과 봄밤을 함께 보내고 싶어졌다. 이 영화의 주인공 하시모토 아이는 영화 내내 목에 흰 수건을 두르고 상의는 땀에 젖어 축축해진 모습이었지만, 그 어떤 고운 옷을 차려입은 여자보다도 예뻐 보였으니까.
박세훈, 아트 디렉터
차분한 톤의 룩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문득 올해 5월엔 밝고 화사한 컬러의 룩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색의 과일이나 채소 또는 커다란 식물이나 꽃이 프린트된 스커트에 심플한 원색 상의, 거기에 대비를 이루면서도 조화롭게 어울리는 조그마한 백, 적당한 높이의 힐 정도가 생각난다. 물론 활짝 웃는 그녀의 밝은 미소가 올해 5월 보고 싶은 데이트 룩의 전부이긴 하지만.
김태환, 프로그래머
여자의 특권이자 여자가 남자와 다르다는 걸 확실히 느끼게 하는 옷이 있다면 그건 바로 원피스다. 그러니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여자는 더할 나위 없이 예쁘다. 문득 떠오르는, 봄날의 햇살을 가득 담은 듯한 피케 원피스부터 고혹적인 향기가 날 것만 같은 여성스러운 원피스까지 디자인은 아무래도 좋다. 바람에 치맛자락이 살포시 나부끼는 지금 이 계절만큼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사랑스러운 때도 없을 테니.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것만으로 사랑으로 충만할 것 같다.
장우철, <GQ> 에디터, 사진가
원피스를 좋아한다. 어쩌면 ‘원피스만’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만 입는다는 뉘앙스에서 뭔가 야한 느낌을 받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하나만 입어도 되는, 여성만의 간결하고 부드러운 힘을 느끼며 좋아서 웃는 쪽이다. 원피스 중에서도 몸에 딱 붙는 것보다 실루엣이 풍성하게 퍼지는 것을 더 좋아한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수많은 곡선이 생길 것이고, 그것은 곧 일상에 접힌 주름을 하나 하나 펴는 것 같은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가령, ‘내가 지금 데이트를 하고 있구나’라든가 ‘내가 지금 사랑이라는 걸 하고 있구나’라든가, 새삼스럽게 누구에게 어필하려는 게 아니라, 오직 혼자만의 은밀한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여자 옆에 설 땐 각진 제복을 입는 게 어울릴까? 최근에 본 원피스중에는 배트멍 런웨이에서 본 붉은 원피스가 좋았다. 얼마 전 경주에서 한창 절정인 동백꽃을 보면서도 그 원피스가 생각났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