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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오이초에서 열린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전시.

열네 살의 나이에 고향을 떠나 숲길을 따라 파리까지 2백80마일에 달하는 거리를 2년 동안 걸어간 소년이 있다. 소년은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고 포장용 나무 상자를 만드는 장인 밑에서 배우며 일하게 된다. 그리고 청년이 된 그는 ‘깨지기 쉬운 물건을 안전하게 패킹합니다. 패션 제품 짐 꾸리기 전문입니다’ 라는 문구로 광고를 하며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다. 기나긴 여정 끝에 파리에 도착하고, 다시 긴 시간 동안 짐을 보호하는 나무 상자 만드는 법을 배운 그가 바로 루이 비통이다. 세계적인 럭셔리 패션 하우스 루이 비통은 소년 루이 비통의 여정에서 시작된 셈이다. 파리 그랑 팔레에서 루이 비통의 역사를 담은 전시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가 열렸다. 올리비에 사이야르(Olivier Saillard)가 큐레이팅한 데 이어 도쿄에서 4월 23일부터 6월 19일까지 이 전시가 열린다. 전시가 열린 공간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선보인 루이 비통 매장이 있던 자리다.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전시는 루이 비통의 시작과 현재를 방대한 컬렉션과 함께 보여준다. 그 컬렉션은 루이 비통이 직접 나무로 만든 평평한 트렁크부터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디자인한 최근 컬렉션까지 브랜드의 역사가 고사란히 담겨있다. 인도 왕족이 들고 다니던 찻잔과 찻주전자를 담을 수 있는 트렁크, 자동차가 주된 여행의 교통수단이던 시절 여분의 타이어를보관하기 위해 만든 가방, 마르셀 프루스트가 여행하면서 글을 쓸 수 있도록 자그마한 책장과 책상이 되어주기도 하는 트렁크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mine’이라는 태그를 달아놓은 그녀의 소장품까지 역사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컬렉션이 가득하다.

 

루이 비통의 이 흥미로운 전시는 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전시를 바탕으로 제작한 앨범 한 권에는 전시 내용이 해설과 함께 생생하게 담겨 있다. 전시를 소개한 책은 아니지만 <여행의 정취>에도 루이 비통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에는 프루스트가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언급한 ‘새로운 교통수단이 풍경을 망칠 것’이라는 말이 인용되기도 했다. 그의 생각과 달리 새로운 교통수단은 더 다채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주로 마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던 시절에는 뚜껑이 평평하지 않고 둥근 트렁크를 제작했고 요트를 타고 대양을 횡단하던 이들을 위해서는 배 위의 한정적인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캐빈 트렁크를 고안하기도 했다. 이때 여행을 하면서 생기는 빨랫감을 보관할 수 있는 ‘스티머 백’을 디자인해 트렁크 안쪽에 집어넣었다가 빨래가 생기면 꺼내어 쓸 수 있도록 했는데, 이 가볍고 실용적인 스타일은 현대의 핸드백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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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는 교통수단에 따라 달라지는 여행의 풍경이 담겨 있다.

기차가 생기면서 트렁크는 다시금 디자인의 변화를 겪는다. 보다 많은 짐을 편리하게 실을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옷과 액세서리를 담을 트렁크가 필요하게 되었고, 간편하게 객실에 들고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손가방도 필요했다. 새로운 교통수단에 따라 달라진 가방 디자인은 디자인에 발명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루이 비통의 아카이브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교통수단의 변화만은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프랑수아즈 사강 등이 사용한 라이브러리 트렁크와 지휘자의 지휘봉을 담을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한 지휘자 트렁크 등에서는 예술을 대하는 루이 비통의 특별한 태도가 엿보인다. 전시 아카이브에서 흥미로운 것 중 또 하나는 루이 비통의 손자인 가스통 루이 비통의 컬렉션이다. <먼 옛날부터오늘까지 이르는 여행(Travel from Olden Times to Our Times)>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 그는 여행을 좋아했으며 오래된 트렁크와 여행 소품, 여행지에서 모은 라벨을 꼼꼼하게 수집하기도 했다. 그의 수집물 중에는 ‘트렁크에서 발견된 시체’같은 트렁크와 관련된 온갖 사건, 사고 기사를 스크랩한 것도 있다.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에는근 2세기에 걸쳐 채워진 루이 비통의 아카이브와 그 안에 담긴 그 시대의 모습 그리고 그 아카이브를 채운 것들과 함께한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루이 비통 <시티 가이드> 도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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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루이 비통의 애정은 지금도 식을 줄 모른다. 루이 비통의 여행 가이드북 <시티 가이드>는 화려한 색감과 감각적인 사진, 독특한 종이 질감만으로도 소장하고 싶은 여행 책이다. 책에는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킨 공간부터 새로운 힙 플레이스,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곳부터 오로지 루이 비통 <시티 가이드>에만 소개된 장소까지 빼곡하게 소개되어 있다. 책 뒤에는 옷을 개는 법까지 일러스트로 위트 있게 그려 넣었다. 도쿄에서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전시가 열리는 기간에는 ‘루이 비통 시티 가이드 도쿄’ 앱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앱을 이용하면 책에 소개된 장소를 찾기 수월할 뿐 아니라 ‘24시간 동안 머문다면 반드시 가야 할 곳’처럼 여행 스팟이 색다르게 정리되어 있어 요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