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3월 4일, <타임> 표지
“그의 책에도 나와 있듯 크리스찬 디올은 사람들이 자신을 장인으로 기억해주길 원했습니다. 이 가위 역시 그런 의미죠. 장인이 존재하기에 디올과 같은 패션 하우스가 특별해집니다. 사람들은 디올을 그저 하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하지만, 디올이 오트 쿠튀르 하우스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1996년 12월 10일, 뉴욕 현대미술관을 찾은 다이애나 비
“디올의 액세서리는 절 매혹시켰죠. 이 백을 보면 늘 페레가 이끌던 시절의 디올이 생각나요. 어떤 대상이 아이콘으로 기억될지는 시간만이 말해줄 수 있습니다. 한 시즌용으로 만든 아이템이 두 시즌 이상 살아남는 것도 대단한데, 2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죠.”
1955년 8월, 리처드 애버던이 촬영한 ‘도비마와 코끼리 그리고 겨울 서커스’
“처음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전 애버던의 사진에 완전히 매료됐어요. (당시 디올의 조수였던) 이브 생 로랑의 드레스와 그걸 둘러싼 이미지 자체가 너무나 강렬했거든요. 코끼리, 헤어스타일, 도비마의 포즈까지도요. 서커스 속의 이 오트 쿠튀르 드레스는 디올 하우스가 펼치는 남다른 미학의 정수를 포착한 작품이죠.”
1947년, 파리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힙 라인을 강조한 1947년의 코롤 라인(Corolle line)은 파리라는 도시, 그리고 에펠탑의 라인과 대응되죠. 인체 구조도 마찬가지고요.”
1949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주노 드레스
“무슈 디올은 건축가와도 같아요. 형태와 구조로 기억되거든요. 그렇지만 그게 그가 가진 능력의 전부는 아닙니다. 디올은 가볍고 섬세한 아름다움이라는 면모 역시 갖추고 있었어요. 멜랑콜리한 색조를 보면 알 수 있죠.”
에디 슬리먼
“에디 슬리먼은 디올에 머물며 남성복의 실루엣을 바꿔놓았습니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알 거예요. 디올의 이름은 이브 생 로랑, 마크 보앙, 지안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에디 슬리먼, 라프 시몬스 등 여러 디자이너의 명성 위에 세워진 길고 풍부한 역사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마치 디올의 유산을 관리하는 큐레이터가 된 것 같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막대기를 들고 작업 중인 크리스찬 디올
“크리스찬 디올이 들고 있는 막대기는 쿠튀리에가 그의 팀을 이끄는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죠. 마치 지휘자가 지휘봉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처럼요. 리더가 되려면 비전과 열망을 가지고, 또 그걸 나눠야 해요. 반대로 팀은 그러한 리더를 지지하고 공동의 목표를 함께 이뤄가죠. 무언가를 혼자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섹스 앤 더 시티>
“‘디올을 사랑해(J’adore Dior)’는 존 갈리아노의 모토였고, 사람들의 입에 끝없이 오르내렸어요. 사라 제시카 파커가 이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던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주 멋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