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거펠트가 타계했다. 불로장생할 것만 같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알리는 부고는 각종 포털 사이트의 메인 이슈로 자리했고, 패션 피플들을 비롯한 대중은 앞다퉈 SNS를 통해 패션계의 전설을 추모했다. 칼 라거펠트가 별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보인 2019 F/W 시즌 샤넬과 펜디 컬렉션에선 저마다의 방식으로 최대한 예의를 갖춰 그들의 수장을 추도했다. 펜디는 칼 라거펠트의 영상을 마지막으로 쇼를 마무리했고, 샤넬은 1분간 경건한 묵념과 함께 칼 라거펠트의 목소리를 오디오로 틀어 장엄한 분위기에서 컬렉션을 시작했다. 샤넬의 캣워크엔 브랜드 앰배서더인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가 새하얀 꽃 한 송이를 든 채 등장했으며 피날레 무대에 오른 카라 델레바인을 비롯해 칼 라거펠트와 절친했던 톱 모델들은 눈물을 훔치며 그녀들이 사랑한 천재 아티스트를 추억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캉봉가의 샤넬 부티크 앞엔 약속이라도 한 듯 팬들의 애정 어린 편지와 새하얀 꽃다발이 수북이 쌓였다.

새까만 선글라스와 가죽 장갑, 빳빳한 하이칼라 화이트 셔츠, 단정하게 묶은 백발. 칼 라거펠트를 단순히 디자이너로만 정의하기엔 무리가 있다. 독일 함부르크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은 천재적인 재능과 무한한 열정으로 혁신적인 스타일과 새로운 코드를 창조해내며 패션계의 거장으로 성장했다. “나는 지극히 패션적인 사람입니다. 패션은 단순히 ‘옷’이 아니에요. 변화를 일으키는 모든 요소를 집약한 예술이죠.” 그가 생전 남긴 말처럼 칼 라거펠트는 패션계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83년 샤넬 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된 후 칼은 샤넬을 단순히 ‘패션 레이블’ 그 이상의 ‘종합예술(Gesamtkunstwerk)’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았다. “내가 샤넬 메종을 살려냈죠. 계약서에 사인할 때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는 문장을 꼭 넣어달라고 했고, 그 결과 패션계 총매출의 약 60퍼센트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는 초호화 브랜드로 성장한 거예요.” <마리끌레르> 프랑스판 2018년 10월 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칼 라거펠트가 자신 있게 한 말처럼 한때 고루한 이미지로 침체돼 있던 샤넬은 칼 라거펠트 영입 이후 국경과 세대를 초월해 여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로망으로 진화했다. 그랑 팔레는 우주, 설원, 공항 터미널, 바다, 고대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1년에도 몇 번씩 상상을 초월할 만큼 환상적인 샤넬 왕국으로 변모했고 보이 샤넬, 가브리엘 백 등 코코 샤넬이 이룩한 아카이브를 재해석해 만든 액세서리 컬렉션은 폭발적인 매출을 기록했다. 샤넬의 CEP 알랭 베르테메르는 칼 라거펠트에 대해 ‘창의성, 관대함, 뛰어난 직감을 갖춰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다. 그는 1980년대에 전권을 위임받아 샤넬 하우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킨 인재였다’라며 그의 타계를 안타까워했다. 샤넬 패션 부문 사장인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역시 칼 라거펠트가 이룩한 성과에 경의를 표하며 ‘현재에 충실하며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따를 것이라고 전했다.

펜디는 또 어떤가? 1965년 칼 라거펠트가 합류한 지 2년 후 창조한 ‘펀 퍼(Fun Fur)’는 펜디 메종의 시그니처 로고인 더블 F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지치지 않고 브랜드에 예술성과 대범한 실험정신을 더하며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와 함께 펜디 하우스를 발전시켜 나갔다. “칼은 성격이 매우 급했어요. 늘 쇼가 끝나자마자 ‘다음!’을 외치곤 했죠. 결코 과거로 돌아가거나 스스로의 스타일을 복제하는 경우도 없었어요. 그는 마르지 않을 영감의 원천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펜디의 CEO 세르주 브륀슈위그의 말은 펜디 하우스에 칼 라거펠트가 남긴 엄청난 존재감을 증명한다. 어릴 적부터 칼 라거펠트를 보며 자란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 역시 펜디뿐만 아니라 자신을 이끌어주던 히어로를 떠나 보낸 심정을 절절하게 밝혔다.

“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 지구상에선 아니죠.” 칼 라거펠트가 남긴 유명한 말처럼 그는 천재였지만, 이는 끝없는 열정의 산물이었다. 분명한 건, 자신의 존재 자체가 국경을 초월할 만큼 뜨거운 트렌드(Multinational Fashion Phenomenon)로 남고 싶다는 그의 목표를 생전에 이뤘다는 것. 그만큼 칼 라거펠트가 남긴 유산은 원대하고 또 위대하다. RIP, KA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