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자비 메건 마클이 공식 석상에 팬츠 수트를 입고 등장했다. 외신은 그녀를 룰 브레이커 또는 반항아라고 표현했다. 대외적인 자리에서는 가급적 드레스나 스커트 수트 차림이어야 하고, 반드시 스타킹을 신어야하며, 키가 너무 커 보이지 않도록 구두 굽의 높이까지 제한한다는 영국 왕실의 보수적인 규율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비단 영국 왕실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삶에는 종종 스‘ 커트가 요구되는 순간’이 있다. 대학 졸업 사진을 촬영할 때는 단체복이라도 맞춘 듯 화사한 색의 H라인 원피스를 입는 것이 관행이고, 입사 면접을 볼 때 바지 정장을 입는 행위는 금기시되곤 한다. ‘여성적인 단정함’은 불편한 스커트에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지금까지 유지돼온 데는 미디어의 역할이 크다. 몸을 한껏 노출하는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에 선 배우들부터 불편한 스커트 차림으로 뉴스 데스크에 앉은 아나운서들까지, 다양하고 일상적인 사례들이 여성의 정복은 스커트이며 팬츠 수트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우리의 무의식에 심어놓았다. 그동안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이런 장면을 뜯어보면 여성들의 자세가 옆에 선 남성 배우나 아나운서들의 능동적인 자세와 달리 불편하고 수동적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남성복 수트의 당당한 분위기가 부여하는 권위적인 이미지를 여성들이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는 점은 패션계의 여성주의 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이야기돼왔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옷들의 수동적 이미지에 염증을 느낀 여성들은 팬츠 수트를 적극적으로 각자의 삶에 끌어들였다. 대학가에서는 몸에 붙는 원피스 대신 팬츠 수트를 입고 졸업 사진을 찍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팬츠 수트를 입고 출근하는 여성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사실도 예로 들 수 있다. 몇 시즌에 걸쳐 정착한 팬츠 수트의 유행은 그렇기에 더욱 유의미하다. 많은 패션 하우스에서 남성복에 사용하던 재단 방식과 소재로 여성을 위한 좋은 수트를 만들어내고, 케이트 블란쳇처럼  의식 있는 배우가 입은 것 역시 큰 몫을 했지만 말이다.

물론 팬츠 수트는 외적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 운동화, 로퍼, 하물며 슬리퍼까지 어울리지 않는 신발이 없고, 어떻게 입어도 멋스럽다. 그러나 여성주의와 패션의 상관관계가 끊임없이 대두하는 이 시점에 주목해야 할 팬츠 수트의 진정한 미학은 여성들에게 통 넓은 팬츠에 낙낙한 재킷을 입고도, 필요할 경우 마음껏 뛰거나 앉을 수 있는 옷을 입고도, 지금껏 요구받은 것처럼 불편을 감수하지 않고도 당당하고 프로페셔널해 보일 수 있는, 말 그대로 스타일리시한 신세계를 선사한다는 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