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밀리아노 지오니
Massimiliano Gioni
<마리끌레르> 코리아 독자에게 당신을 소개해주기 바란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이자 현대미술 비평가로 뉴욕 뉴 뮤지엄의 아티스틱 디렉터를 맡고 있다. 최근 <포에버 발렌티노> 전시의 공동 큐레이션을 맡았고, 미국은 물론 한국을 비롯해 해외 여러 곳에서 전시 큐레이션을 진행했다.
중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메종 발렌티노 전시 <포에버 발렌티노>에 참여했다. 카타르와 인연이 깊은데 이번 전시 또한 남다를 것 같다. 이 전시는 나에게 다양한 조합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무라카미 다카시, 2021년 제프 쿤스 전시를 카타르에서 개최했기 때문에 또 한 번의 특별한 모험이 될 것이라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카타르 도하는 자원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문화와 전시, 더 넓게는 예술가의 비전에 함께하려는 열의가 매우 뜨거운 도시다. 이곳에서 이탈리아의 전설 발렌티노의 창립자 발렌티노 가라바니(Valentino Garavani)와 현재 발렌티노의 역사를 써나가는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와 함께하는 의미 있는 여정에 참여할 수 있어서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9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메종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큐레이션했다. 당신의 기획과 큐레이션 기준은 무엇인가?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와 알렉산더 퓨리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패션에 정통한 그들이 오브제 선정과 방향성을 제시했다면 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서사, 공간 구획, 전시 연출, 넓고 탁 트인 공간에서 출발해 좀 더 내밀하고 비밀스럽게 전시실로 관람객을 안내하고, 발렌티노에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방안 등을 모색했다. 우리가 발렌티노 아카이브를 보면서 느낀 설렘과 모험심을 대중에게도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었다. 이 전시는 황홀한 아카이브와 다채로운 역사는 물론, 작품의 전후 맥락과 창작 과정을 살펴볼 기회가 많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포에버 발렌티노>의 특별한 점에 대해 더 소개해주기 바란다. 이 전시에서는 수십 년 동안 메종의 정체성을 형성해온 아름답고 놀라운 의상들을 통해 메종의 역사를 이 야기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딱딱하거나 짐짓 젠 체하는 전시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피치올리가 말했듯 회고하기보다 관점을 제시하고 싶었다. 현재, 과거, 미래를 연결하는 대각선 방향의 시선이다. 그리고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감정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로마 중심부에 있는 발렌티노 본사 팔라초 미냐넬리(Palazzo Mignanelli) 안팎으로 관람객을 안내하는 것처럼 연출했다. 무엇보다 관람객이 옷을 구상하고 만들 어내는 중정, 아틀리에, 피팅 룸을 완벽하게 재현한 전시실로 입장해 창작 과정과 실제 옷을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다음으로는 아름다운 정사각 형태의 바로크풍 광장과 계단이 있는 로마의 건축 요소를 재현한 전시실에서 공간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연출했다. 로마와 발렌티노 메종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 전시실에는 다양한 풍경이 상상 속에서처럼 콜라주 기법으로 중첩되어 있다. 1650년대 로마에서는 이렇게 파편들로 이루어진 풍경을 ‘카프리초(Capriccio)’라고 불렀다.
이번 전시는 여러 형태의 룸을 통해 메종 발렌티노를 조명한다.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카프리초 로마노’ 룸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 카프리초라는 개념은 일종의 환상적인 비행 또는 상상 내지는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풍경화 장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시회의 전반적인 컨셉트를 이끌면서도 결합적 논리를 제시하는 공간인 ‘카프리초 로마노’ 룸에 들어가면 로마의 다양한 장소, 추상적인 콜로세움과 단순화한 가스 저장소가 합성 혹은 콜라주로 표현되어 있다. 가스 저장소는 일종의 산업적 건축물로 고대 로마의 신화와 상반된, 아름답지 못한 풍경의 상징이다. 이 전시실에는 1950년대 영화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다채로운 흑백 의상을 전시해 눈길을 끈다.
2010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다. 오래전 인연이긴 하지만 한국 아트 신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광주 비엔날레 프로젝트는 내가 지금까지 기획한 전시 가운데 손에 꼽는 전시 중 하나다. 멋진 사람들, 훌륭한 기관과 일하는 특권을 누렸고, 한국과 예술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배우는 시간이었기에 광주는 내 마음속에 여전히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국은 팬데믹이 시작된 2019년 이후로는 가보지 못했다. 2022년 9월에 열린 프리즈 서울 아트 페어를 볼 기회를 놓쳐 아쉬운데, 서울 아트 신에 참여하고 열정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을 다양한 경로로 접하며 마음이 설레었다. 그래서 빨리 한국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지난 10여 년간 현대미술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확실히 커졌고, 세계적인 무대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점점 더 부각되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영화계와 음악계는 말할 것도 없다. 최근 1960년대 한국 미술사의 국제적 가치가 점점 높아지는 것도 설레는 일이다. 한국 미술이 세계적으로 미술 담론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하는 것 같다.
알렉산더 퓨리
Alexander Fury
당신은 패션 에디터로 시작해 저술가 및 비평가 그리고 현재 전시 큐레이터로 활동 분야를 넓히고 있다. 평소 메종 발렌티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어떻게 이번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메종 발렌티노는 항상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어릴 때부터 패션에 푹 빠져 있었고, 발렌티노는 럭셔리 그 자체이자 오트 쿠튀르와 동의어라 할 만한 메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메종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과 피치올리가 확립하고 있는 대담한 여정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탐험하는 흥미로운 이벤트다.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내가 경험한 마법 같은 순간을 빠짐없이 전달하고 싶었다.
이번 전시에서 꼭 경험하고 공감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포에버 발렌티노>는 독특한 경험 그 자체다. 2백50여 점의 의상과 오브제가 장관을 이루는, 발렌티노의 전시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전시에는 로마에서 기원한 메종의 정체성과 놀라운 여정이 담겨 있으며, 전시 내내 로마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포에버 발렌티노>는 패션에 관한 것이지만, 일련의 감정적 변화 또한 경험할 수 있다. 전시 공간은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축하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깔려 있고, 공간이 선사하는 경이로움, 그 안에서 우리가 머물며 느끼는 감정들… 이건 그야말로 환상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전시는 여러 형태의 룸을 통해 메종 발렌티노를 조명한다. <마리끌레르> 코리아 독자에게 제일 먼저 비기닝 룸에 대해 소개해주기 바란다. ‘비기닝’ 전시실은 1968년부터 발렌티노의 보금자리인 팔라초 미냐넬리에 있는 실제 공간을 정밀하게 재현한 곳으로, 매우 중요하고 그만큼 마음에 울림을 준다. 이 전시실은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가 모델에게 의상을 입혀보고 컬렉션을 다듬는 공간이다. 주로 평면 스케치를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그야말로 각 컬렉션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 방은 현실에 존재하는 정교한 장식과 책, 스케치를 포함해 온통 옥양목으로 꾸며져 있다. 이 전시실에서는 총 네 벌의 의상을 만날 수 있는데 세 벌은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초기 컬렉션, 나머지 한 벌은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의 작품이다. 1959 S/S 컬렉션이자 발렌티노의 첫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1번 레드 드레스인 ‘피에스타’ 그리고 그 옆에는 피치올리가 2022년 7월 오트 쿠튀르 쇼에서 재해석한 뉴 ‘피에스타’를 배치했다.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1967 F/W 컬렉션과 1968 S/S 컬렉션의 의상 또한 함께 전시하고 있다.
메종 발렌티노의 아카이브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입장에서 브랜드의 미래와 비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발렌티노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강한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확실히 대담하게 발렌티노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지만, 그 힘은 그가 브랜드에서 보낸 오랜 경험과 노하우에서 나온다는 것. 그가 브랜드를 아주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발렌티노가 만들어낸 수많은 것이 시대를 초월한다는 점 또한 놀라웠다. 우리는 이 전시를 큐레이팅하면서 시대순으로 나열하는 방식을 피했고, 이 드레스가 1960년대 것인지, 오늘날의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어떤 형태로 붕괴되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드레스는 만들어진 시대를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잘 보존되었으며 무엇보다 잘 만들어진 것들이다. 대부분의 패션 하우스는 아카이브로 특정 시기를 짐작할 수 있지만, 발렌티노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발렌티노의 여정이 시작된 영원한 도시, 로마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전시명을 <포에버 발렌티노>라고 지었지만, 사실 메종 안에서 영원한 감각을 발견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 점이야말로 브랜드의 가치와 미래를 보장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포에버 발렌티노 Forever Valentino>
기간 2023년 4월 1일(토)까지
장소 카타르 도하 M7 갤러리 전시관 1, 2
티켓 구매처 카타르 크리에이츠 웹사이트(www.qacreat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