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에 진심인 노장
폴 스미스
그런가 하면 아트에 진심인 노장의 새로운 분야 개척기도 흥미롭다.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인 폴 스미스는 올해 3월부터 파리 국립 피카소 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피카소 컬렉션 전시 <피카소 셀러브레이션>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참여했다. 오랜 시간, 특유의 재치와 따스함으로 패션과 사물의 본질을 바라본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 기존의 정형화된 전시와는 사뭇 다른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에디터 역시 그가 세심하게 선별하고 기획한 전시를 관람한 후, ‘그림 도둑’이라고 여겨졌던 피카소를 재평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는 전시에 참여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젊은 관객을 위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이 위대한 거장 파블로 피카소를 잘 모르는 관객도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자연스럽고 직관적으로 말이죠.” 한편 예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낸 미우치아 프라다도 빼놓을 수 없다. 패션계에서 이룩한 그의 업적은 밤하늘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그가 “우리 시대 가장 심오하고 시사하는 바가 많은 아트 프로젝트”임을 선언하며 건립한 복합 문화 예술 공간, 폰다치오네 프라다는 여전히 그만이 할 수 있는 대담한 시도로 평가된다. 오로지 예술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사랑만으로 약 8백 제곱미터의 공간을 짓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술, 사진, 영화, 건축 등 폭넓은 현대 예술 분야에 조예가 깊은 그는 파트리치오 베르텔리, 미술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제르마노 첼란트와 함께 이곳의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 및 큐레이션했다. 폰다치오네 프라다는 실제 윌터 드 마리아(1999) 같은 작가를 발굴해 전시를 개최하고, 아니시 카푸어(1995)의 개인전을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여는 등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본래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 전시되는 작품을 기획하고 설명해주는 큐레이터에서 보편화된 단어 큐레이션. 패션 하우스에서 이 용어의 쓰임새는 본질과 헤리티지를 꿰뚫고 더 나아가 브랜드의 가치와 비전까지도 아우르는 대체 불가능한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큐레이션은 선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의 패션 및 텍스타일 자문 큐레이터로 활동한 오리올 쿨렌(Oriole Cullen)의 말처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선택은 창조성을 넘어 브랜드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도 하고, 혹은 패션을 넘어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만들기도 한다. 그들의 선택이 늘 도덕적이거나 시대적인 관념에서 옳은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판가름하기 어렵지만, 다양성을 존중하는 패션 월드의 풍부한 자산과 이것이 긍정적인 새로운 파동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