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LVMH PRIZE 수상자인 구와타 사토시.

 

“가구, 양초, 향수 등
일상에서 만나고 보는 것들
그리고 누군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싶다”

 

수상을 축하한다. 그것도 만장일치로 선택되었다.(웃음) LVMH PRIZE가 삶에 꽤 큰 변화를 가져왔을 것 같다. 이 에피소드가 인터뷰 기사에 실릴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상을 받은 날 밤 호텔에서 티셔츠와 속옷을 전부 도둑맞았다. 그 일을 겪은 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걱정된다.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훨씬 많다. 전보다 많은 사람이 나와 일하고 싶어 한다. 나는 밀라노에서 가장 운이 따르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하고, 요즘 무척 행복하다.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엄청난 양의 메시지를 받았다.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다가 DM이 너무 많이 와서 휴대폰이 뜨거워진 건 처음이었다.(웃음)

LVMH PRIZE를 준비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동양인은 지독히도 연설에 서툰 사람이 많은 것 같다.(웃음)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지만, LVMH PRIZE 기간 동안에는 스스로를 어필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프라이즈 주최 측에 무척 친절한 여성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모든 디자이너에게 어떻게 연설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과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역시 많은 도움을 줬다. 하지만 그들이 제안한 방법을 따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제가 정말 저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일본인이고 눈을 부릅뜨고 미소를 짓는 건 제가 아니에요”라고 호소도 했다.(웃음) 하지만 유럽식 매너와 문화를 받아들이는 건 중요하다. 연설을 준비하면서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고, 셋추에 대해서도 더 깊이 탐구하게 됐다.

스물한 살 때 꿈을 이루기 위해 런던으로 이주해 수트의 성지라 불리는 새빌 로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경력을 쌓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버지의 형제들이 전부 패션계에 종사했다. 고모가 피에르 가르뎅의 테일러링 부문에서 근무했는데, 그 덕분에 집에 테일러드 재킷이 많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 부모님이 장난감을 거의 사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은 종이, 볼펜, 그리고 옷감뿐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옷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재킷을 손수 만들어보며 기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테일러링에 빠졌다. 성인이 되어 일본의 옷 가게에서 판매직으로 근무할 때 모든 직원이 나에게 “사토시, 네가 재킷을 좋아한다면 새빌 로에 가야 해. 거긴 1백 년 전에 수트 문화를 창조한 곳이야”라고 말했다. 어느 순간 나는 운명에 이끌리듯 새빌 로에 들어가게 됐다.

 

LVMH PRIZE 심사 당시 선보인 셋추의 2023 F/W 컬렉션. 시그니처인 오리가미 재킷이 돋보인다.

 

그 후 파리와 뉴욕을 거쳐 2020년에 밀라노에서 자신의 브랜드 셋추를 시작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밀라노의 매력은 무엇인가? 항상 살아보고 싶어 한 도시다. 밀라노는 런던, 파리, 뉴욕에 비해 작은 도시다. 나는 오사카나 교토같이 작고 자연이 풍부한 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에 밀라노가 다른 도시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또, 당시 패브릭 디자인을 하던 내게 질 좋은 원단과 원단 공장이 즐비한 이 도시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친절하고 음식이 아주 맛있다는 사실이다.(웃음)

내부에 팀을 두지 않고 혼자서 브랜드를 운영해왔다고 들었다. 따로 팀을 꾸리지 않은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돈 때문이다.(웃음) 나는 매우 가난했고, 특히 지난 3년간은 수입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믿음직한 어시스턴트가 있어 굉장히 큰 힘이 된다. 절대적인 수가 적어도 나와 맞는 사람과 일하면 소수의 인원으로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 세분화된 조직은 없지만 큰 팀과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 일을 하는 데 돈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결과물을 내면 돈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패션은 팀워크다. 나를 서포트하는 모든 사람, 그리고 현재 인터뷰를 하고 있는 당신도 나의 팀이다. 기모노와 블레이저를 결합한 ‘오리가미 재킷’은 당신의 패션 철학을 집약한 결실처럼 보인다.

컬렉션 중 가장 애정이 가는 피스를 한 점 고른다면 뭔가? 셋추의 특징을 먼저 말하자면, 매 시즌 새롭게 디자인하지 않고 기존 피스를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오리가미 재킷은 내가 가장 처음 디자인한 재킷이고, 그런 만큼 매우 특별하다. 새빌 로에서 쌓은 경험, 밀라노의 아름다운 원단, 프렌치 시크, 뉴요커의 모던함, 그리고 동양의 미니멀리즘이 담긴 동시에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피스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오리가미 재킷 이외에도 모든 컬렉션이 나의 머릿속에서, 손끝에서 만들어진 자식 같은 존재이기에 하나만 고르긴 어렵다.

브랜드를 운영하며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기 위해 일본어로 ‘아깝다’라는 의미의 ‘못타이나이(もったいない )’라는 개념을 키워드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 못타이나이는 나 자신에게 ‘사토시, 낭비하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단순한 이미지나 키워드가 아니라 삶의 철학이자 나의 일부다. 과거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물건을 수작업으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그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 나는 이 전통을 지키고 싶을뿐더러 원단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컬렉션을 수작업으로 만든다. 제작 과정에서 사용하는 소재의 양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나아가 옷을 포장하는 작은 것 하나까지 전부 재활용 소재만 활용한다.

 

간결하면서도 구조적인 미를 담은 셋추의 2024 S/S 컬렉션.

 

지방시, 가레스 퓨, 카니예 웨스트 등 많은 브랜드에서 다양한 디자이너들과 일했다. 그중 당신에게 유독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 있나? 브랜드에서 일하며 디자인 면에서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비즈니스 측면으로 시야를 넓혔다. 가레스 퓨에서는 작은 회사가 어떤 체계로 움직이는지를, 5천 명이 넘는 직원이 움직이는 지방시에서는 대기업의 프로세스를 배울 수 있었다. 내 브랜드를 개척하기 전에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고 그들의 방법을 습득하고 싶었다. 마치 스케치하듯 360도 전방위에서 비즈니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림을 그려보고자 했다.

그렇다면 패션계를 떠나서 당신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은 누구인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는 물건을 사기보다는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능숙하셨다. 그런 점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셋추의 컬렉션을 보면 섬세한 테일러링은 물론, 건축물 같은 기하학적 구조가 느껴진다. ‘일본과 서양의 타협’이라는 의미의 와요셋추(和洋折衷)라는 단어에서 차용해 브랜드명을 지었고, 이는 건축학에서 유래한 단어라고 들었다. 일본에 1층은 일본식, 2층은 서양식으로 지은 유명한 와요셋추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을 보며 내가 도달하고 싶은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와요셋추의 ‘와’는 일본, ‘요’는 일본 밖을 뜻한다. ‘요’는 미국이나 한국, 또는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될 수 있다. 서양식이냐, 일본식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어우러지고 융합해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셋추라는 이름은 내가 어디서 왔고, 어떤 문화에서 자랐으며 그 사실에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다른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럽에는 뛰어난 기술력과 장인정신으로 인정받는 저명한 일본 디자이너가 많다. 이 명성을 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 자체가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내 관심사는 오로지 브랜드와 나를 지지해 준 사람들, 그리고 나의 팀이 가지는 궁극적인 잠재력이다. 내 목표는 셋추를 거대한 회사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셋추는 브랜드의 이념과 색이 매우 견고하다. 내가 은퇴한 뒤에도 그 명확성은 지속될 거라 믿는다.

얼마 전 2024 S/S 컬렉션 프레젠테이션을 마쳤다. 낚시를 즐긴다고 들었는데, 휴가는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솔직히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워낙 많아 휴가를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혹여 갈 수 있다면 모로코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아니면 그와 함께 이집트 혹은 아프리카 여행을 가고 싶다. 유럽에선 여행 가기 편해서 참 좋다.(웃음)

셋추는 궁극적으로 무엇이 될까? 현재는 패션에 국한되어 있지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영역을 넓히려 한다. 가구, 양초, 향수 등 일상에서 만나고 보는 것들 그리고 누군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싶다.

 

간결하면서도 구조적인 미를 담은 셋추의 2024 S/S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