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라요.
당장 바꿀 순 없지만 내일, 한 달 뒤, 1년 뒤, 그리고 10년 뒤에
내가 보기에도 남들이 보기에도 좀 더 편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모습은 오랜만이네요. 그렇죠? 특별히 기르려 의도한건 아니고, 쉬는 사이에 조금 기르다 보니 이 정도 길이가 됐어요.
오늘, 티파니의 다양한 주얼리를 착용해봤는데 유독 눈에 들어온 게 있나요? 티파니 노트 컬렉션은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라인이에요. 실제로 착용해보니 볼드하면서도 섬세한 면이 깃든 디자인 같아 좀 더 매료돼 촬영한 것 같아요.
평소에도 주얼리 스타일링을 즐기는 편인가요? 굉장히 좋아해요. 그런데 드라마를 촬영할 때는 장면에 맞게 뺐다 꼈다 하기가 번거로워 개인적인 주얼리를 착용하는 건 피하게 되더라고요. 평소에는 이어링을 자주 끼는 편이고, 좀 더 포인트를 주고 싶은 날에는 브레이슬릿을 차요.
드라마 <셀러브리티>는 우연히 틀었다가 한달음에 정주행하게 됐다는 후기가 많더라고요. 배우도 OTT 작품은 모니터링 역시 몰아서 하게 되나요? 이 질문만큼은 단호하게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웃음) 저는 제 작품을 절대로 못 봐요. 자신에게 가혹한 스타일이라 제가 출연한 작품을 보면 제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이 보이거든요. 물론 감사하게도 그 부분은 감독님을 포함한 많은 스태프가 채워주셨죠.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한동안 나는 왜 이럴까 하며 자책을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일을 잘해내고 싶은 완벽주의자라고 스스로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일할 때 영순위는 협업하는 스태프들의 노고에 누가 되지 않는 거예요. 다음으로 생각하는 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자. 왜냐하면 저는 제가 부족한 인간이라는것을 아주 잘 알거든요.
그렇지만 일하다 보면 스스로를 위해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워야 하는 순간이 오지 않나요. 물론 그 두 가지는 어떤 순간에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은 결국 남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오늘 화보 촬영이나 인터뷰 역시 나를 믿지 못하면 완성될 수 없으니까요. ‘그래, 나도 꽤 괜찮은 구석이 있긴 하지.’ 이렇게 자기최면을 걸기도 하고요.지난 <스위트홈> 오디션장에서는 여성 스태프와 팔씨름을 해 이기면 ‘지수’ 역할을 맡기겠다는 디렉션을 받았죠.
이번<셀러브리티> 오디션장에서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셀러브리티>는 오디션을 보지 않았어요. 그 대신 어떻게 이 작품을 하게 되었는지 말씀드릴게요.(웃음) 저는 SNS와 밀접한 세대고,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직업군에 속해 있어요. 물론 SNS는 불편한 구석도 존재하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이를 주제로 하는 이야기라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안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감사한 제안이었죠.
어떤 역할을 제안받으면 왜 나를 선택했는지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하나요? 그렇진 않아요. 감독님은 저를 믿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손을 내밀어주신 거고, 그 믿음에 저도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니까요. 이 역할이 내게 온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임하되, 촬영하면서 서로 생각을 조율하는 소통에 열중하는 편이에요.
보통 캐릭터를 만나면 어떤 생각을 먼저 하는지 궁금해요. 우선 어떤 이야기인가, 그중에 나는 어떠한 공간을 맡고 있나, 그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숨 쉬는 사람인가 하는 부분을 중요하게 봐요. 캐릭터에 관한 생각을 되짚어보기도 하는데, 나와 캐릭터가 언제나 같은 행동과 생각을 가질 순 없으니 그 사이에서 생각을 조율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공간이라 하면 인물이 속한 배경을 말하는 건가요? 포괄적인 부분인데요. 인물이 살아가는 시간, 그리고 물리적으로 살아가는 시대 혹은 어떤 도시나 국가일 수도 있고요. 물리적 일상의 공간이나 정서적 공간이 해당할 수도 있죠.
어떤 인물에게 한동안 정서적 유대감을 갖다 보면 닮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온.오프가 빠르게 전환되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서 맡은 캐릭터의 정서가 일상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죠. 얼마 전까지 촬영한 <오늘도 사랑스럽개>는 무척 밝고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였어요. 그 작품을 촬영할 때는 일상에서도 현장에서도 제가 평소보다 좀 더 밝았던 것 같아요. 아, 물론 일상에서도 강아지처럼 살았던 건 아니고요.(웃음)
모두 끝나고 나면 허탈감이 찾아올 것 같기도 해요. 작품을 촬영하면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부분이 촬영장이거든요. 더군다나 제가 그간 무조건적 사랑과 응원을 엄청나게 받는 캐릭터를 여럿 연기했는데, 작중에서도 사랑받았지만 스태프들에게도 말도 안 되는 커다란 응원을 받았어요.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런 황홀한 순간이 한순간에 증발하고 없는 느낌이 들죠. 가슴이 뻥 뚫려버린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한동안 <셀러브리티>의 ‘아리’로 살았던 배우로서 유독 떠오르는 장면이 있나요? 제게는 모든 장면이 소중해서 장면이나 대사 하나를 꼽기는 정말 어려워요. 그럼에도 굳이 하나를 꼽자면 엔딩 장면이 떠올라요. 마지막에 아리가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주변 상황도 정리되면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그린 신이죠.
일전에 한 인터뷰에서 배우는 배움을 얻는 직업이라고 한 적 있죠. 배우로 일하면서 연기적으로도 많이 배우지만, 인간 박규영으로서도 엄청난 배움을 얻고 있어요. 한 작품에 출연하면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호흡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고, 카메라 앞에 어떻게 서야 하는지 기술적으로도 배우는데요. 인간적으로도 그 이상의 배움이 있어요. 나를 지키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타인에게 좀 더 관대해지는 성숙한 태도를 배우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이 배움을 멈출 수가 없어요.
<셀러브리티> 현장에서는 어떤 배움을 얻었나요?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배우는 절대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또 한 번 느꼈죠.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모두가 사력을 다해 힘을 실어줘야만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한 현장이었어요.
모두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봐요. 극을 앞장서서 이끌며 연기한 건 처음이라 좀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현장에 임했어요. 제가 무너지면 절대 안 되니까요. 다만 제 책임감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모든 스태프가 온 힘을 다해 만들어주셨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평소 좋은 배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요? 반성을 많이 해요. 그날그날 있었던 일에 관해 무엇이라도 떠올려보는 편인데요. 오늘처럼 인터뷰를 해도 내가 허투루 지나간 질문은 없었나 반성하죠.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돌아보고, 다음에는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런 의미 있는 생각을 기록하기도 하고요? 휴대폰에 ‘버릴 순간이 하나도 없다’ 라고 적어둔 메모가 있어요. 살다 보면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간도 있고, 너무나 행복한 순간도 있잖아요. 그런데 뭐 하나 버릴 건 없는 것 같아요. 모든 게 쌓이고 깊숙하게 박혀 좀 더 괜찮은 인간이 되어 나타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요.
오늘도 집으로 돌아가면 반성의 시간이 올까요? 아마 화보 촬영에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룩은 없었나 돌아볼 것 같아요.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모여 작업하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하는 영역에서 오차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거든요.
그 시간들이 모여 수행처럼 스스로를 단련할 것 같아요. 저는 배우로서 색깔이 강한 사람 같지는 않아요. 단지 지금은 내 색깔이 무언지 계속 탐구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래서 스펙트럼이 있다면 그것을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임하는 거고요. 다만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라요. 당장 바꿀 순 없지만 내일, 한 달 뒤, 1년 뒤, 그리고 10년 뒤에 내가 보기에도 남들이 보기에도 좀 더 편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