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와 영화 같은 사랑을 나누었던, 그리고 파란만장한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던 프리실라 볼리외의 이야기를 그린 소피아 코폴라의 <프리실라(Priscilla)> 그리고 샤넬.
about Priscilla
로큰롤의 황제’이자 레전더리 아이콘으로 역사에 남은 엘비스 프 레슬리. 독보적 업적과 비밀스러운 사생활, 아이코닉한 스타일까 지 그를 중심으로 현란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는 각종 매체를 타고 수없이 많이 전해졌다. 최근에는 배즈 루어먼이 디렉팅하고 오스 틴 버틀러가 열연한 영화 <엘비스>가 칸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으 며 미국 전역 흥행에 성공했을 정도. 하지만 로큰롤의 황제라 불 리며 화려한 일상을 이어간 그의 곁을 지킨 주변인들의 내밀한 심 리와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할 기회는 쉽게 마주할 수 없었다. 열 네 살 어린 나이에 당시 스물네 살이던 엘비스 프레슬리와 사랑 에 빠졌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프리실라 볼 리외(Priscilla Beaulieu)가 1985년에 발표한 자서전 <엘비스와 나(Elvis and Me)>가 영화감독 소피아 코폴라에게 빛나는 영감 을 선사하기 전까지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로 오랜 세월 샤 넬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하우스의 친구이자 협력자, 탁월한 미 감과 취향을 지닌 주목받는 영화감독인 소피아 코폴라에게 역사 로 남은 로큰롤 황제의 조력자 역할을 한 ‘여성’의 이야기는 매력 적일 수밖에 없었다. 데뷔작 <처녀 자살 소동>부터 <사랑도 통역 이 되나요?> <썸웨어> <마리 앙투아네트> 등 복잡하고 미묘한 내면을 간직한 여성 주인공의 심리를 아름다운 장면과 함께 세밀 히 그려낸 전작에서 짐작할 수 있듯, 2023년 9월 베니스 국제영화 제에서 공개된 <프리실라> 역시 어린 나이에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나 겪은 프리실라 볼리외의 사적인 이야기와 성장 과정을 비범 하고 사려 깊게 풀어낸다. 이번 영화에서는 신예 케일리 스페이니 (Cailee Spaeny)가 프리실라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고, 제이콥 엘 로디(Jacob Elordi)가 놀라울 정도로 엘비스와 유사한 연기로 화제 를 모았으며, 모든 가족과 부부가 그렇듯 시종 태연자약하지만 대 체로 흔들리고 부서지는 프리실라의 내면에 집중해 세계적으로 유 명한 아이콘의 부인이자 한 여성으로서 살아낸 프리실라의 시간 을 찬연하게 아름답고 섬세한 언어로 서술해간다.
제게 샤넬은 강인한 여성을 바탕으로 한 하우스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이 창립한 하우스이며, 샤넬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여성은 전 세계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위해 일하죠.
“<프리실라>는 프리실라 프레슬리의 삶에 기반한 것으로, 프리실라의 시점에서 전하는 그의 이야기, 즉 매우 이례적인 상황에서 그레이스랜드에 서 살았던 젊은 여성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소녀와 젊은 여성이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수많은 일을 프리실라가 겪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에 공감했죠.” 이처럼 소피아 코폴라는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프리실라를 선택했고 이를 통해 획일적으로 그려진 유명인의 가족, 더 나아가 남성 아이콘의 권위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에 반기를 든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탁월한 취향과 미감 덕분에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에서는 늘 ‘스타일’과 ‘패션’이 뚜렷하게 돋보이는데, <프리실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프리실라 프레슬리의 유니크 한 스타일에 영감을 받은 소피아 코폴라는 캐츠아이 아이라인, 머릿결 반대 방향으로 세워 과장되게 부풀린 부팡(bouffant) 헤어스 타일, 시프트 드레스 등 프리실라의 감각적이고 로큰롤 무드가 흠뻑 밴 우아함을 영화에서 그대로 오마주했다. 특히 결혼식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이자 관전 포인트. 소피아 코폴라는 의상 디자이너 스테이시 배탯(Stacey Battat)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이 앰배서더를 맡은 샤넬을 통해 프리실라가 실제로 결혼식 때 입었던 의상을 재해석한 웨딩드레스를 선보였다. 사랑과 환희로 가득해 ‘영 앤 뷰티풀(young and beautiful)’이라는 문구가 저절로 떠오르는 이들의 결혼식 자료를 수없이 찾아봤다는 소피아 코폴라는 로맨틱한 판타지와 건조하고 냉혹한 현실을 오가는, 프리실라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부인이 되며 본격적인 현실 세계로 내던져지는 스토리 전환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완벽한 드레스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렇게 탄생한 프리실라의 그림 같은 웨딩드레스는 샤넬 2020 봄-여름 오뜨 꾸뛰르 컬렉션의 정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버지니 비아르가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구상했으며, 오뜨 꾸뛰르와 공방 아틀리에의 소중한 노하우가 함께한 끝에 영화의 주요 장면을 빛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프리실라가 그레이스랜드로 이사 할 때 등장하는 샤넬 N°5 향수병은 그가 새롭게 발견하고 구축해 낼 자신만의 여성성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샤넬은 과거 1930년 가브리엘 샤넬이 영화 제작자 새뮤얼 골드윈(Samuel Goldwyn)의 영화 의상을 제작하기 위해 할리우드로 건너간 인연을 시작으로 영화계의 감독, 배우들과 지금까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오랜 시간 샤넬과 창조적 우정을 이어온 소피아 코폴라는 <프리 실라>의 이야기를 구상하며 당연히 샤넬을 떠올렸다. “제게 샤넬은 강인한 여성을 바탕으로 한 하우스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이 창 립한 하우스이며, 샤넬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여성은 전 세계 여성 들의 아름다움을 위해 일하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부인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세상을 등지고 자신 만의 길을 새롭게 개척하기 위해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프리실라의 모습은 여러 부분에서 샤넬의 방향성과 닮아 있다. 그리고 가까스로 얻은 그 담대한 용기와 변화를 모색하는 한 인간의 뜻깊은 성장을 영화 <프리실라>를 통해 면밀히 마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