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런웨이를 누비는 톱 모델 수주. 그리고 자신의 음악 속으로 고요히 침잠하는 뮤지션 수주라는 새로운 장르

한국에서 보니 더 반갑다.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뭔가? 짜장면과 짬뽕을 시켜 먹었다.(웃음)

수주가 짜장면을 먹는 이미지는 잘 상상되지 않는다.(웃음) 한국에 오면 꼭 한국에만 있는 중식이 먹고 싶더라.(웃음)

곧 두번째 싱글 앨범를 공개 예정이다. 영감의 원천이 된 것 이 있다면? 직업상 출장을 자주 다니다 보니 타지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그때마다 곡과 글을 썼다. 작업은 주로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 시간에 하는데, 그 시간대에 느끼는 고독이 가장 큰 원천이 된 것 같다. ‘Kiss me’, ‘Hold me’라는 가사는 그 감정을 보듬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그리고 아티스트 필립 파레노와 피에르 위그의 작품 속 ‘안리’라는 인물. 그들은 만화 캐릭터를 개발하는 일본 에이전시에서 안리라는 인물의 이미지에 대한 권리를 구입했다. 그리고 빈껍데기 같은 인물을 애니메이션, 그림, 조각 등 다양한 매체로 생산하고, 안리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계약서를 작성해 안리를 자신에게만 속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이 작품을 보고 문득 매 순간 포토그래퍼나 클라이언트들이 만드는 이미 지로 탈바꿈하는 모델이라는 직업을 가진 나와 이 인물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앨범 비주얼에도 안리의 이미지를 넣었다.

오늘은 모델 수주가 아닌 뮤지션 수주를 화보에 담고 싶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모델 수주와 뮤지션 수주는 어떻게 다른가? 처음엔 모델 활동과 뮤지션 활동에 차이를 두고 싶어 ‘에테르’라는 예명을 썼다. 그런데 막상 뮤지션으로 활동하다 보니 결국 음악도 나 자신의 연장선이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델 수주도, 뮤지션 수주도 모두 내 일부다.

놀랍게도 뮤지션으로서 데뷔 무대가 샤넬 쇼장이었다. 소위 ‘국뽕’이 차오르는 순간이었는데, 무대에 선 당사자의 마음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샤넬과 오랜 인연을 이어오기도 했고, 내가 먼저 공연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오래 준비할 시간은 없었지만 약 2주 동안 매일 연습했다. 막상 무대에 오르니 침착해지더라. 공방 쇼는 두 번 치르기 때문에 ‘두 번째 쇼에서는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음악은 김정미의 ‘Haenim(해님)’을 리메이크한 곡이었다. 뮤직비디오에서 색다른 모습으로 열연을 펼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연기 분야에도 관심을 두고 있을까? 모델도 연기가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고. 영화 쪽에 관심은 있지만 연기를 잘할 자신은 없다. 지금은 음악에 더 집중하고 싶다. 원래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잘 못 한다.(웃음)

UC 버클리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모델, 뮤지션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전공이 지금의 수주를 있게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 건축 자체만 보고 전공을 선택한 건 아니다. 무언가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는데, 어릴 때는 그저 좋은 학교에서 과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분야를 전공하면 부모님이 뿌듯해하실 것 같아 건축학을 골랐다. 돌아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되게 중요한 시기였던 것 같다. 건축 특성상 광범위한 이론을 배우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그 후부터나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고자 했다.

모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길거리에서 캐스팅됐다. 만약 캐스팅당하지 않았다면 지금 건축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을까?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사진과 그래픽디자인에 관심이 생겼으니 만약 모델이 되지 않았다면 그쪽으로 직업을 갖지 않았을까?

처음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때는 언제인가? 어릴 때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대학 시절에는 라디오 스테이션에서 일하면서 그곳에 있는 음악을 가리지 않고 전부 들었다. 클래식부터 슈게이즈, 포스트 펑크 등등….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 사람처럼.(웃음) 그런 배경이 이번 앨범에 영향을 많이 미친 것 같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최근 새롭게 빠진 것이 있다면? 모듈러 신스라는 악기를 배우고 있다. 친분이 있는 프로듀서가 건축을 전공했으니 모듈러 신스도 잘 맞을 것 같다고 추천해줘 접하게 됐다. 원래 컴퓨터로 작업했던 <KISS ME>도 80% 정도 모듈러 신스로 재작업해 탄생했다. 음악에서는 아직 아마추어다 보니, 이 악기를 배우면서 LFO나 프리퀀시 같은 음악 개념도 익힐 수 있어 유익하다.

수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패션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유수 브랜드의 모델로 등장했는데, 가장 인상적인 쇼가 있는지 궁금하다. 서울에서 열린 2015/16 샤넬 크루즈 쇼. 지금은 여러 브랜드가 쇼를 위해 한국을 찾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하우스 브랜드가 서울에서 쇼를 한다는 것은 전례 없이 특이한 경우였다. 서울에도, 나에게도 여러모로 특별한 순간이었다.

당신의 커리어를 보면 경이롭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 수주에게도 모델로서 더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까? 솔직히 지금의 나에 만족한다.(웃음) 물론, 해보지 못한 것을 할 기회가 온다면 좋겠지만. 지난 10여 년의 시간 동안 내 모든 걸 다 바쳤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했기에 아쉬움은 없다.(웃음)

그렇다면 뮤지션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너무 많은데… 전부 나열하긴 부끄럽다.(웃음) 원래 이루기 전 목표는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