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제 CEO 벤자민 코마.
1960년대의 미학을 품은 메종의 새로운 아이콘 식스티.
식스티의 제작 과정. 아이코닉한 트라페즈 형태 베젤과 다이얼이 돋보인다.
식스티의 제작 과정. 아이코닉한 트라페즈 형태 베젤과 다이얼이 돋보인다.

식스티 워치 출시 이벤트를 위해 특별히 한국을 찾았다. 워치스 앤 원더스(Watches & Wonders) 이후 시장에 공식적으로 식스티를 공개하는 첫 번째 자리라고 들었다. 1960년대에서 영감 받은 식스티는 현대적 감각과 함께 피아제의 창의성, 유산, 브랜드의 뿌리를 모두 녹여낸 디자인으로 완성했다. 한국이라는 장소 또한 이 메시지와 깊이 맞닿아 있다. 한국은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나라다. 우리가 인터뷰를 진행 중인 호텔 신라만 봐도, 현대건축과 전통적 지붕이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나. 한국에서 이 제품을 처음 소개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1960년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나? 사람들이 식스티 워치를 통해 어떤 감성을 느끼길 원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1969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신생아 시절 이외에는 그 시대를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웃음), 럭셔리 산업 전반에서 매우 창의적인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피아제에도 1960년대는 매우 중요한 때였다. 초박형 무브먼트, 스톤 다이얼, 시계가 내장된 목걸이, 큼직한 커프 워치 등 브랜드의 독창성을 응축한 컬렉션이 탄생했으니까. 식스티라는 이름은 단순히 특정 연대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람의 이름처럼 개성을 지닌 단어다. 어감, 발음, 울림 모두 현대적이다. 이 컬렉션은 단순히 과거를 오마주하는 것을 넘어, 미래를 향한 방향성까지 담아낸 결과물이다. 이 시계를 찬 사람들이 편안함과 자신감을 동시에 느끼길 바란다. 마치 아주 잘 맞는 재킷을 입었을 때처럼, 착용하는 순간 자연스러운 안정감이 느껴지는, 그런 시계가 되었으면 한다.

2021년에 부임해 4년 동안 피아제를 이끌어오며 경험한 수많은 순간 중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나? 개인적으로 피아제를 좋아했고, 그 일원이 되어보니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브랜드였다. “I can’t, but we can” 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도, 함께라면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피아제 팀의 협업 정신은 놀라울 정도다. 특히 지난해 150주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우리 팀이 얼마나 단단하게 뭉칠 수 있는지 실감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각자의 영역에서 역량을 발휘하며 브랜드의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벤트를 꼽자면 첫째는 150주년을 기념한 전시 프로젝트, 둘째는 피아제 폴로 79 워치의 론칭, 그리고 셋째가 이번 식스티 컬렉션의 론칭이다. 오랜 시간 준비한 프로젝트가 드디어 세상에 나와 사람들이 이를 착용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의 감정은 CEO로서만이 아니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한국 배우 전지현을 글로벌 앰배서더로 발탁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와 피아제의 공통점이 있나? 그는 매우 독립적이고 영민하며, 동시에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여성이다. 이런 캐릭터는 피아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고 흥미로운 순간이 있었는데, 계약을 체결하고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톤은 오팔이에요.” 놀랍게도 오팔은 우리 브랜드의 창립자 조르주 에두아르 피아제(Georges Édouard Piaget)가 가장 애정했던 스톤이다.(웃음)

지난해 워치스 앤 원더스 기간에 브랜드 앰배서더 이준호와 제네바의 플랑레우아트(Plan-les-Ouates) 매뉴팩처를 방문했다. 라임라이트 갈라의 다양한 컬러 스톤을 직접 배치해보는 진귀한 경험을 했는데, 실제로 체험하니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성이 더욱 와닿았다. 피아제만의 ‘보이지 않는 디테일’ 중 가장 자랑하고 싶은 부분을 꼽는다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은 골드의 활용이다. 나는 매뉴팩처의 장인들을 ‘골드의 연금술사’라 부르곤 한다. 예를 들어, 피아제의 데코 팰리스(Decor Palace) 인그레이빙을 보면 단단한 금속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럽고 유기적인 곡선을 그린다. 금속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듯한 이 정교한 세공 기술은 피아제만의 고유한 미학이자 가장 자랑스러운 디테일이다. 눈으로 보았을 때는 알 수 없지만 착용하는 순간 ‘이건 뭔가 다르다’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안기는 것이야말로 진짜 럭셔리가 아닐까.

라임라이트 갈라에서 보듯 피아제는 다양한 젬스톤을 활용해 주얼리 워치를 만드는 일에 능한 브랜드다. 우리는 어떤 스톤을 선택하느냐보다 스톤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색의 대화에 더 중점을 둔다. 예를 들면, 레드 루비에서 화이트 다이아몬드로 이어지는 그러데이션, 혹은 서로 다른 색상의 스톤을 정교하게 배치한 레인보 세팅처럼 말이다. 강하고 약한 색감
이 서로 부딪치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미묘한 전개가 중요하다. 단순히 예쁜 색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색과 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야말로 피아제만의 컬러 미학이라고 생각한다.

살바도르 달리, 앤디 워홀 등 저명한 아티스트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브랜드이니만큼 하이엔드 워치 중 유독 피아제의 시계를 예술품으로 수집하는 고객이 많다. 나는 피아제의 작품에서 일종의 ‘조형미(sculptural quality)’를 느낀다. 특히 비대칭 곡선을 지닌 라임라이트 갈라 워치는 단순히 시간을 표시하는 도구를 넘어 하나의 조형물처럼 다가온다. 앤디 워홀과의 협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시계를 예술의 한 형태로 바라보았고, 피아제는 그 시선을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브랜드였다. 우리는 형태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나는 피아제의 시계를 ‘형태의 예술’이라 표현하고 싶다. 바로 그 점이 수많은 수집가들이 피아제의 워치를 예술품처럼 아끼고 수집하는 이유다.

피아제 모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자주 착용하는 모델은 무엇인가? 그 이유도 궁금하다. 요즘 자주 착용하는 제품은 앤디 워홀 워치다. 사실 이 워치는 브랜드 아카이브에 잠들어 있던 모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고객이 이 워치를 대량으로 구입하며 “아주 특별한 시계예요”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 팀에서도 이 모델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앤디 워홀 워치는 케이스, 스트랩, 젬스톤 구성까지 직접 선택할 수 있어 마치 나만의 아트 피스를 완성하는 듯한 즐거움이 있다. 특히 내가 선택한 말라카이트 다이얼은 큰 스톤을 얇게 가공해 색감을 살리면서도 깨지지 않게 만드는 고도의 세공 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실용적이면서도 존재감이 확실해 정말 좋아하는 시계다.

브랜드를 운영하며 포기하지 않는 철학이 있나? 첫째는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피아제는 나보다 먼저 존재했고, 이후에도 계속 존재할 브랜드다. 내 역할은 이 브랜드가 일시적 유행이나 기회주의적 전략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본질을 지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진정성 없는 접근은 금세 간파당한다. 우리는 정직하고 일관된 철학에 발 딛고 서 있어야 한다. 둘째는 팀워크다. 뛰어난 제품은 디자이너, 장인, 스톤 셀렉터, 세일즈 스태프 등 모든 구성원이 같은 가치를 좇으며 협업할 때 탄생한다. 누구 하나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역량을 존중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가 필요하다.

피아제가 궁극적으로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우리가 믿는 아름다움은 시간이 흘러도 흔들리지 않는 진정성이다. 피아제의 워치와 주얼리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착용하는 이의 태도를 드러내는 도구로서 빛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