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스타일리시한 영화 속 인물을 묻는다면, 단연 <캐리비안의 해적> 잭 스패로우다. 무법자 같지만 기묘하게 우아한 그의 스타일은 어린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언젠가 카리브해에 가보겠다는 꿈을 품었고, 최근 멕시코 칸쿤에서 해적선 파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자 다시 마음이 설렜다. 그런데 때마침 SNS를 중심으로 ‘해적 코어’가 트렌드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적 스타일은 사실 오래전부터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981년 ‘해적(Pirate)’ 컬렉션으로 브랜드의 시 작을 알린 비비안 웨스트우드, 유령선의 선원이 연상되는 룩을 선보인 2008년 장 폴 고티에···. 그리고 2025년에 이르러 해적의 미학은 런웨이 곳곳에서 되살아났다. 루이 비통은 카프리 팬츠 위에 찰랑이는 골드 체인을 더했고, 로에베는 로맨틱한 윙 칼라 셔츠에 슬롭스(slops)가 연상되는 드레이프 팬츠로 스타일을 완성했다. 이 흐름은 다가오는 2025 F/W 시즌 캣워크까지 이어진다. 나풀대는 프릴 블라우스와 두건을 조합한 앤 드뮐미스터, 그리고 빈티지한 베스트와 부츠로 해적 무드를 이어간 이자벨 마랑의 룩이 이를 뒷받침한다. 해적 코어의 시작은 풍성한 소매의 흰 블라우스 한 장이면 충분하다. 여기에 낡은 가죽 코르셋과 부츠, 골드 액세서리를 취향껏 가미하면 된다. 중요한 건 과거의 아이템을 ‘발견한 것처럼’ 연 출해야 한다는 점. 마치 오래된 보물 상자에서 막 꺼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