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창작 세계로 시대의 규범과 규칙을 전복해온 디자이너 릭 오웬스(Rick Owens). 그는 6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동시대 패션계에 없어선 안 될 존재로 남아 있다. 지금 팔레 갈리에라에서는 이 상징적인 디자이너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한창이다. 패션계의 어둠의 군주, 릭 오웬스의 등장 덕분에(아이러니하게도) 항상 어둠에 싸여 있던 팔레 갈리에라 전시 공간에 처음으로 자연광이 들게 되었다. 디자이너의 파리 회고전 <템플 오브 러브(Temple of Love)>를 위해 도시의 상징적 공간마저도 바꿔버린 것이다. 하지만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건 전시장에 들어온 빛만은 아니다. 이 전시는 다른 행성에서 온 듯한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단색의 기념비적 실루엣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글램록과 보디 아트, 상징주의와 미래주의를 넘나드는 영감의 원천들, 그의 가구 작업을 떠올리게 하는 정원의 브루탈리스트 조각으로 이어지며 릭 오웬스라는 인물을 하나의 총체적 예술로 경험하게 한다. 릭 오웬스는 “파리 패션계에서 내가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해요. 이곳에 내가 설 자리가 있다는 것, 그 사실은 나로서는 존재를 확인받는 느낌이에요”라고 말한다. 2003년, 아즈텍 왕족을 떠올리게 하는 외모와 긴 머리카락으로 파리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릭 오웬스는 도시의 부르주아적 분위기와 달리 어딘가 이질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파리 7구에서 완전하게 자리 잡았다. 괴이함과 숭고함 사이를 오가는 미학, 그리고 도발을 주저하지 않는 연출은 릭 오웬스가 패션계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흔들어온 방식이다. 2015 F/W 시즌, 남성 모델의 성기를 그대로 노출시킨 런웨이 룩은 그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장면으로 회자된다. 방식은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를 동료 디자이너들과 전 세계 팬들 사이에서 컬트적 존재로 만들었다. “릭 오웬스는 ‘다름’을 이용해 성공을 이끈 몇 안 되는 디자이너 중 하나예요. 그의 옷은 분명 호불호가 갈리지만, 패션이 점점 대형 럭셔리 그룹 중심의 산업으로 수렴되는 지금 그는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알렉상드르 상송(Alexandre Samson)의 말이다. 그의 정적 자율성은 차세대 디자이너들에게도 영감을 준다. 장 폴 고티에의 새로운 아트 디렉터로 발탁된 듀란 란팅크(Duran Lantink)와 터키계 영국 디자이너 딜라라 핀디코글루(Dilara Findikoglu) 역시 그가 오랜 시간 지켜온 일관된 태도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의 옷을 입는 이들도 다채롭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 채플 론(Chappell Roan), 에이셉 라키(A$AP Rocky) 등 독보적 개성을 지닌 아티스트들이 그의 고객이며, 스트리트 감성을 반영한 세컨드 라인은 보다 넓은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어냈다. 뉴욕의 컬렉터 커플 피오나 루오(Fiona Luo)와 마이클 스미스(Michael Smith)는 릭 오웬스의 옷 2백 벌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피오나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릭이 좋은 이유요? 성별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열어주는 접근이요. 선언적이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요.”

릭 오웬스는 1962년 캘리포니아 포터빌에서 태어났다. 그는 멕시코계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 아래에서 엄격하고 종교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사제들이 입던 검은 로브는 그의 금욕적이고 성서적인 디자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남겼다. 사회복지사였던 아버지에게서는 오페라와 일본 목판화, 위스망스의 소설 등 예술적 취향을 물려받았다. “책임감은 부모님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였어요. 처음에는 저항하고 거부했지만 결국 받아들이게 됐죠. 자신의 가능성을 최선을 다해 실현하는 것. 저는 그게 삶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릭 오웬스는 이렇게 회상한다. 1980년대, 그는 오티스 미술 대학에서 패턴을 공부하며, 할리우드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아트 신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인물 미셸 라미(Michele Lamy)와 만나게 된다. 아티스트이자 모델이던 라미가 그를 자신의 브랜드 디자이너로 고용하며 두 사람은 강렬한 창조적 케미스트리를 일으켰다. 릭 오웬스가 브랜드를 론칭할 무렵 미셸 라미는 그의 곁에서 연인이자 파트너로, 때로는 뮤즈이자 멘토로 함께했다. 이후 둘은 모피 브랜드 레빌롱(Revillon)에서 함께 일하며 파리의 팔레 부르봉에 위치한 현대적인 벙커 스타일 아파트로 이주했고, 그곳은 지금도 두 사람의 집이자 스튜디오로 쓰이고 있다.

파리는 어느새 릭 오웬스의 미학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군용 텐트와 헌 옷에서 건져낸 재료를 새로운 실루엣으로 재해석하고, ‘더스트(Dust)’라 불리는 그만의 회색 팔레트 안에 절제된 로맨티시즘과 파괴적인 글래머를 함께 담아낸 그의 작업은 기존의 패션 문법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1930년대 실루엣에서 영향을 받은 좁은 상체, 극단적으로 긴 소매, 인어 꼬리를 닮은 스커트는 릭 오웬스를 대표하는 형태 중 하나다. 그는 드라큘라를 떠올리게 하는 칼라, 뾰족한 파고다 숄더, 도넛처럼 부풀린 볼륨 등으로 옷의 구조와 신체의 비율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다시 조립했다. 알렉상드르 상송은 릭 오웬스를 ‘극단적인 신체 변형과 조각적인 구조에 매혹된 디자이너’라고 설명한다. “찰스 제임스(Charles James)의 영향을 받은 그는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창작자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옷을 스스로 완성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죠.” 최근 몇 년간 컬렉션의 실루엣은 점점 더 커졌다. 여성에게 더 큰 존재감을 부여하고 싶다는 그의 의도가 반영된 변화다. 하지만 때로는 그 실루엣이 너무나 장엄한 나머지, 거리감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릭 오웬스는 웃으며 이야기한다. “어느 날 아내가 그러더군요. ‘당신이 만든 여성들은 너무 장엄해서 섹시함을 잃었어.’ 그 말을 들은 이후로는 늘 신경 쓰고 있어요.” 릭에게 미셸 라미는 절대적 존재다. 헤나로 칠한 얼굴, 다이아몬드가 박힌 치아, 릭 오웬스 혹은 꼼데가르송의 옷을 입은 그는 언제나 릭의 창조 세계에서 가장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기준점이 된다.

금욕적 삶을 지향하는 릭 오웬스는 파리와 로스앤젤레스, 베네치아를 오가며 살고 있지만 여전히 세상의 소음에 귀를 기울인다. 그의 쇼는 언제나 극적이고 거대하며, 때로는 정치적이고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담는다. 예를 들어, 2014 S/S 쇼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대학생들이 만든 스테핑(stepping) 댄스를 선보였고, 2016 S/S 컬렉션에는 한 모델이 다른 모델을 마치 가방처럼 짊어진 채 등장하며 난민 문제를 은유했다. 그는 모델 캐스팅에서도 늘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의 스타 알라나 스타(Allanah Starr), 얼굴을 하얗게 칠한 DJ 해나 로즈 돌턴(Hannah Rose Dalton) 같은 인물이 그의 런웨이를 채운다. 보수주의가 다시 고개를 드는 트럼프 시대에 릭 오웬스는 더욱 분명한 목표를 품게 되었다. “오늘날의 협소한 미적 기준에 자신을 투영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고 싶어요. 그 기준을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을 뿐이죠. 제 역할은 경직된 미학에 즐거운 일탈을 던져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 <템플 오브 러브>는 바로 그 증거다. 릭 오웬스라는 절대자가 설계한 하나의 유토피아, 질서와 일탈이 공존하는 그 세계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