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 텅 비어 있던 구찌(Gucci)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이 순식간에 새로운 이미지들로 채워졌습니다. 브랜드의 역사마저 지워낸 듯하던 무채색의 피드에 갑작스레 생기를 불어넣은 건 뎀나(Demna)의 첫 번째 구찌 컬렉션 룩북. 그 이름하여 ‘라 파밀리아(La Famiglia)‘, 이탈리아어로 가족을 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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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컬렉션은 ‘구찌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브랜드가 품어온 상징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풀어냅니다. 사진작가 캐서린 오피(Catherine Opie)의 렌즈를 통해 포착된 이들은 각기 다른 얼굴과 태도로 화면을 채우며 구찌가 지닌 수많은 페르소나를 표현하죠. 룩북은 모노그램 여행 트렁크 ‘L’Archetipo‘로 시작되는데요. 이는 구찌가 원래 여행 가방 브랜드였음을 환기하며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조용히 상기시키죠. 이어지는 ‘Incazzata‘는 1960년대식 작은 빨간 코트를 통해 구찌의 불같은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La Bomba‘는 강렬한 줄무늬로 고양이 같은 변덕과 긴장을, ‘La Cattiva‘는 절제된 실루엣 속에 팜므 파탈의 차갑고도 우아한 면모를 담아냈죠.

L’Influencer‘는 디지털 시대의 스타일 아이콘인 SNS 속 패션 애호가를 상징하는데요. ‘Principino‘와 ‘La Principessa‘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시선의 중심에 서 있는 존재들이죠.

일각에서는 뎀나에게 키가 넘어가며 브랜드가 전면 리뉴얼될 것이란 기대와 동시에 구찌가 쌓아온 깊고 오래된 헤리티지가 희미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뎀나는 그 우려에 정면으로 답하듯 이번 컬렉션의 한가운데에 ‘헤리티지의 재해석’을 놓았습니다.

1947년 탄생한 ‘뱀부 1947 백’은 78년 만에 비율이 새롭게 조율된 모습으로 1953년부터 이어진 또 하나의 아이콘, ‘홀스빗 로퍼’와 나란히 등장합니다. 구찌의 시그니처였던 ‘GG 모노그램’은 카메라 렌즈부터 로퍼까지 전신에 두루 활용되며 “All or Nothing”을 확실히 외쳤죠. 피스의 실루엣 또한 극단을 넘나드는데요. 화려한 깃털 오페라 코트와 하이 주얼리의 극대화된 장엄함부터 매끈한 스타킹 의상이 전하는 네오 미니멀한 관능미까지. 이번 컬렉션에서는 즐거움을 위한 드레싱이 유독 강조됐죠.

거침없고 대담하며 관능적인 새로운 구찌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이번 컬렉션은 ‘구찌스러움(Gucciness)’에 대한 뎀나의 해석이자 스토리텔링으로의 귀환으로도 보이는데요. 이 서사는 내년 2월 예정된 그의 첫 공식 쇼에서 더욱 명확해질 전망이죠. 뎀나의 첫 구찌 컬렉션은 오는 25일부터 10월 12일까지, 서울 구찌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를 포함한 전 세계 단 10개 도시에서만 선공개 및 한정 판매되니 이 특별한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