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HĒKIM 구조를 그리는 몽상가


김해김 디자이너 김인태는 2016년 8월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김해김’의 시작을 알렸다. 옷을 하나의 오브제로 완성하는 태도와 유머러스한 해석이 그의 시그니처다.

시어서커 셔츠 KIMHĒKIM.

만나서 반갑다. <마리끌레르 코리아>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김해김을 이끌고 있는 김인태다. 브랜드명은 내 이름의 본관과 성을 딴 것으로, 과거 가야의 번성했던 장식 예술과 장인정신의 현대적 계승을 상징한다. 다가오는 10월, 컨셉코리아를 통해 다시 한번 파리 무대에 오른다.

외부에서 바라본 김해김의 강점은 어떤 부분이라 생각하나?
대조적 요소를 조화롭게 풀어내는 브랜드 전개 방식을 흥미롭게 봐주는 것 같다. 나는 미니멀한 절제미와 시적 감수성, 그리고 부드러움과 과감함 등 서로 다른 성격의 미학이 어우러지는 순간을 즐긴다. 상반되는 미감이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돋보이게 만드는 지점을 찾는 것이다.

이번 2026 S/S 컬렉션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 혹은 이미지가 있었나?
김해김의 하이라이트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눈물을 표현한 진주, 머리를 땋아 만든 드레스, 한국적이면서도 프렌치 쿠튀르적인 패턴···. 각 시즌을 상징하는 장면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 순간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의미를 다시 새기고 디테일을 다듬어, 보다 깊이 있고 완성도 높은 확장판(extended version)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이 있나?
2019 S/S 시즌이다. “이번 컬렉션은 사적인 공간에서 다양한 연극적 역할을 즐기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마릴린 먼로처럼 화려한 여배우가 되기도, 때로는 아버지의 재킷을 걸치고 소년처럼 춤을 추기도 하죠. 우리는 실험적인 요소를 통해 여성의 실루엣을 탐구하고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깊이 공감하는 여성들을 위한 의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당시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놀라울 만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시간은 흘렀지만 우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음을 새삼 느꼈다.

발레를 배우고 있다고 들었다.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은 디자인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나?
거울 앞에서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관절이 꺾이고 이어지는 흐름, 근육이 긴장하고 풀리는 순간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 리듬과 형태를 따라가다 보면 옷이 몸 위에서 어떻게 흐르고 멈추는지가 구체적으로 상상되고, 비율과 움직임을 고려한 옷의 패턴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파리에서 여는 쇼는 새로운 관객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시즌 관객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다면?
이번 시즌에는 프런트로 좌석을 대폭 늘려 관객이 컬렉션을 최대한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런웨이 위에서 의상이 변화하거나 완성되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게 하는, 김해김 특유의 실험적인 퍼포먼스도 준비하고 있다. 이를 현장에서 직접 마주할 관객의 반응이 무척 기대된다.(웃음)

스스로 정의하는 ‘김해김’이란?
김해김이 지향하는 모습은 자기애를 바탕으로 내면과 외면이 고요하게 조화를 이루는 상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들에게 장식 예술이라는 김해김만의 언어로 작은 위안과 영감을 건네는 존재이고 싶다.

2016년부터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브랜드를 오래 지속하는 것’에 대해 최근 들어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
지속을 위해서는 꾸준히 시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다만 그 시도는 나와 팀이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설레는 순간만 있을 수 없다. 고되고 버거운 과정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그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때 비로소 브랜드를 오래 끌고 갈 지속 가능성이 생긴다고 믿는다.

최근 창작 협업자로 참여한 정유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안경>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공식 초청되며 화제가 됐다. 김해김의 미학을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에 입히는 과정은 어땠나?
매우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영화 속 세계관에 패션 개념을 억지로 주입하기보다는 감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어 먼저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와 시각적 영감을 공유했다. 나는 김해김의 시그니처인 안경, 진주, 하트, 머리카락 등을 제안했고, 정유미 감독은 자신의 언어로 그것들을 재해석했다. 그 결과 두 세계가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는 협업이 완성됐다. 앤티크하면서도 현대적인 영화 속 배경은 시간과 국적의 경계를 허물고, 한국적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김해김의 세계관과 맞물린다.

이번 컬렉션을 영화라고 상상한다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
주인공이 재미있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깨어나 아쉬워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꿈이 계속되길 바라며 다시 잠을 청하지만 끝내 잠들지 못하고 포기한 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준비한다.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꿈속에서 들리던 신나는 음악이 들려온다. 끝난 줄 알았던 꿈이 실제로 시작되는 거다.

최근 몰두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부동산을 자주 들여다본다. 언젠가 ‘김해김 랜드’를 세우고 싶어 어디가 좋을지 살펴보고 있다.(웃음)

‘K-디자이너’라는 말이 점점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지점이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요소가 있다면?
1970년대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며 탄생한 해방감 넘치는 디스코 클럽 문화는 음악뿐만 아니라 스팽글 드레스, 점프 수트, 플랫폼 슈즈 같은 대담하고 화려한 패션을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켰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20년대에는 K-팝이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가 함께 즐길 수 있는 K-문화의 변주를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내고 싶고, 그 흐름을 가장 즐기는 김해김이고 싶다.

‘K-패션’이라는 책이 나온다면 디자이너 김인태는 어떻게 묘사되고 싶나?
나를 어떻게 묘사할지는 독자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내 작업과 브랜드를 통해 전하고자 한 감정과 이야기가 각자의 시선 속에서 자유롭게 해석되길 바란다. 그런 해석들이 쌓이고 쌓이면 나와 김해김의 진짜 초상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