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대의 예술은 공통된 방향을 가리킨다. 구조와 재료의 순수한 미감을 조명하고, 장식을 걷어 본질을 드러내는 것. 건축 세계에서는 ‘브루털리즘’으로 명명되고, 미술사에서는 ‘미니멀리즘’이라 불리는 이 미학은 본질에 목마른 시대적 상황에서 일종의 돌파구로 작용한다. 우리를 둘러싼 부가적인 것들을 등지고, 무엇이 중요한지 질문을 던지면서.

이 흐름은 인류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은 예술 분야인 패션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지난 2월 밀라노에서 열린 보테가 베네타의 2026 겨울 컬렉션은 바로 그 서사의 출발점과 같다. 건축적인 블랙 코트의 오프닝 룩부터 거대한 볼륨을 이룬 클로징 룩에 이르기까지. 실크와 필 쿠페(fil coupé, 장식용으로 사용할 실을 표면에 남겨두고 직조를 마무리한 원단. 마치 퍼처럼 보이는 쇼 말미 룩의 소재가 여기에 해당한다), 니트, 테크니컬 섬유 등 섬세한 소재와 건축적 조형미, 독특한 질감, 그리고 옷의 근간인 기능만을 골조로 삼은 총 81벌의 관능적인 컬렉션 피스는 의복이 복잡한 장식 없이도 그 자체로 충분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그리고 동시에 ‘브루털리즘과 관능성의 대화’라는 주제를 완벽하게 뒷받침한다.

온갖 자극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오늘날, 이토록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집중도를 최고조로 유지하고, 나아가 기립박수까지 이끌어낸 건 루이스 트로터가 갈고닦은 저력이 바탕이 된 덕분이다. 지난해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그는 구조 중심의 테일러링과 실용주의에 기반한 럭셔리라는 독보적 디자인 정체성으로 이미 정평이 난 인물. 패턴부터 곳곳에 숨은 디테일까지, 트로터의 쇼를 볼 때면 부분부터 전체까지 눈으로 좇느라 시간이 배로 빠르게 흐른다. 성공적인 데뷔 쇼 이후 쏟아진 기대 속에서 막을 올린 두 번째 쇼를 통해 그는 독보적 디자인 철학을 유감없이 펼쳤고,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쇼 노트에 따르면 이번 컬렉션은 오페라와 극장, 광장 같은 공적 무대에서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배려심과 자신감을 갖추고 옷을 차려 입는 밀라노 특유의 애티튜드에서 출발하며, 데이웨어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를 함축한다. 쇼 직후 팔라초 산 페델레(Palazzo San Fedele, 오랫동안 극장으로 쓰였으며 얼마 전부터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밀라노 본사로 사용되고 있다)를 나서자 개성 강한 스타일로 드레스업한 이탈리아인들이 마치 이 문장을 재현하기라도 하듯 페델레 광장에 모여 전광판에 재생되는 컬렉션 하이라이트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장면 앞에서 루이스 트로터가 소재와 형태, 질감, 기능과 더불어 주목한 패션의 또 다른 정수가 떠올랐다. 사람의 가까이에서, 사람의 이야기를 할 것. 그리고 일부가 소유할지라도,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술 작품으로서 존재할 것.

브루털리즘 패션의 정의가 새로 쓰이는 순간. 근본으로 돌아가는 디자인의 힘을 누구보다 강조한 선구적 브루털리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명언이 머리를 스친다. “건축이란 빛 속에 배열된 형태들이 만드는 정교하고도 장엄한 유희다.” 이날 팔라초 산 페델레에서 목격한 보테가 베네타의 쇼는 ‘장엄한 유희’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무엇을 말하는지 오감으로 깨닫게 했다. 그리고 패션의 근본을 되짚는 일이 그동안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했는지, 끝나지 않는 여운으로 다시금 느끼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