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 탐험가인 어니스트 섀클턴 경은 20세기 초 세 차례의 남극 탐험에서 버버리의 개버딘 아우터를 착용했다.
공모전을 통해 탄생한 버버리의 기사 문양 엠블럼. ‘PRORSUM’은 하우스의 탐험심과 진취적인 정신을 의미한다.



INTERVIEW WITH
Carly Eck
버버리 아카이브·헤리티지 큐레이터

만나서 반갑다. 버버리의 아카이브·헤리티지 큐레이터는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나? 버버리는 약 1백70년의 역사를 지닌 하우스다. 그 역사를 보호하고 보존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책임을 맡고 있으며, 브랜드의 역사, 헤리티지, 아카이브를 아울러 다룬다. 아카이브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를 조형하는 데 쓰이기 때문에 브랜드의 무척 중요한 자산이다. 우리 팀은 이러한 자료를 현대적으로 번역해 전 세계 고객에게 전달한다. 그들이 아카이브를 동시대적이고 자신과 연결돼 있다고 느끼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버버리처럼 아카이브를 중시하는 브랜드는 현존하는 많은 것이 과거에서 비롯되지 않나? 일례로 작년에 개발한 피츠로비아 트렌치코트는 과장된 소매 볼륨, 어깨 견장, 잘록한 허리 라인이 특징으로 아카이브 속 1992년 트렌치코트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옷이다. 비록 오늘은 캐슬포드 트렌치코트를 입었지만.(웃음)

브랜드 철학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의 뜻을 계승한 기능주의가 아주 오랫동안 지켜지고 있으니까. 그렇다. 버버리는 기능성과 탁월함을 결합한 헤리티지에 기반을 둔다. 우리는 브랜드 설립 이래 줄곧 날씨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아우터웨어를 만들어왔다. 무수한 선택지가 산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추가적이고 확고한 가치를 부여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물건을 선택한다. ‘탁월한 기능성’,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지속된다’는 특성이 그러한 기준과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기능주의와 더불어 탐험 정신 역시 하우스의 중요한 뿌리 중 하나가 아닌가. 탐험 영웅인 어니스트 섀클턴 경과 맺어온 오랜 관계를 비롯해 창립 170주년을 기념하는 캠페인 광고에 탐험가 코너 칸, 제시 그릴스, 말런 퍼트리스를 등장시킨 점, 그리고 당신이 영국 왕립지리학회의 펠로라는 사실만 보아도 그 진정성의 깊이를 알 수 있다. 탐험이라는 헤리티지는 아주 드문것이고, 이런 헤리티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버버리는 오래 전부터 불굴의 개척 정신을 보여준 탐험가들에게 옷을 제공했다. 미지의 땅을 밟고 경계를 넓히며 역사를 써나가는 인물들 말이다. 이러한 점은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혁신, 지속 가능성, 창의적 사고를 추구하는 우리의 디자인 철학과 닮아 있다. 일례로 토마스 버버리는 비에 강한 개버딘 원단을 개발하여 섬유 산업에 혁신을 일으켰고, 우리는 스파이버(Spiber)와 협력해 ‘브루드 단백질 섬유(Brewed Protein™ fiber)’로 만든 스카프를 선보이며 이러한 정신을 이어간다. 또 폐쇄형 ‘섬유-대-섬유(Textile to Textile)’와 같은 공정을 통해 잉여 소재를 전혀 다른 원단으로 전환하여 활용하기도 한다. 모두 패션의 또 다른 영역을 탐구하기 위한 탐험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헤리티지나 아카이브를 읽고 재해석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른가? 버버리 하우스에서 14년간 일하며 3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만났다. 그들은 각자 자기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브랜드를 해석했고, 그 서로 다른 시선이 브랜드를 신선하게 유지하는 데 큰 동력이 됐다. 그러나 우리의 트렌치코트만큼은 내외부의 변화를 떠나 헤리티지로서 언제나 본연의 모습을 유지한다. 이런 요소들이 하우스의 중심을 지킨다.

현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다니엘 리는 어떤가? 우선 그와 일하는 것이 아주 좋다. 다니엘은 영국적 감각과 글로벌한 사고방식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즌이 바뀔 때마다 대규모 아카이브 큐레이션 세션을 연다. 내가 아카이브에서 여러 아이템을 꺼내면 거기에서부터 이런저런 대화가 시작되는 식이다. 그는 언제나 아카이브에서 많은 영감을 찾아낸다. 어떤 것은 미묘하고, 어떤 것은 매우 명확하지만 분명한 건 그가 버버리의 헤리티지를 깊이 존중한다는 점이다. 어제 열린 버버리 윈터 2026 쇼에서도 이런 그의 진면모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카이브에 방대한 자료를 보관한다고 들었는데,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가장 아름다운 보물은 무언가? 2만5천여 개의 아이템과 2만 편 이상의 광고 비주얼, 패브릭 북 등 무수한 것이 있다. 그중에서도 토마스 버버리가 남긴 유산, 그리고 1917년에 만들어졌으며 세계에 단 한 벌만 남아 있다고 알려진 오리지널 버버리 트렌치코트는 무척 귀중하다.

브랜드의 1백70년 역사를 탐험에 비유한다면 버버리는 지금 어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나? 앞서 언급했듯 버버리는 날씨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탄생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이어질 또 다른 1백70년 동안에도 우리는 변화하는 기후와 환경, 날씨 패턴으로부터 입는 이를 지키는 데 전념하지 않을까? 물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롭고 다양한 방향성이 열릴 테고.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다.

삶을 토대로 하며, 삶을 위해 기능하는 옷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버버리는 때로 패션 이상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 같다. 이런 브랜드와 동행하는 일에는 어떤 책임감이 동반되나? 버버리는 영국 문화와 영국 사회, 영국인의 삶 속에 짙게 스며 있다. 마치 하나의 기관 같은 상징적 존재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우리 브랜드의 역사는 곧 수천 개의 개인적 역사다. 아카이브에는 다양한 사람이 실제로 입었던 코트가 보관 돼 있고, 이는 일종의 살아 있는 기억이다. 그 이야기를 잘 보존하고 진정성있게 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실감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그렇다면 버버리의 헤리티지는 완성형일까? 우리의 헤리티지는 이미 상당 부분 확립돼 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혁신해나갈 것이다. 불굴의 개척자였던 토마스 버버리처럼.

1965년 밀라노에서 개최한 ‘브리티시 위크’ 기간 중 버버리가 펼친 패션쇼.
토마스 버버리가 개발한 개버딘 소재부터 상징적인 ‘버버리 체크’ 패턴, 우산 등 지금까지도 하우스의 시그니처로 해석되는 요소들이 돋보인다.
버버리 트렌치코트의 전신인 ‘타이로켄’.
여행을 테마로 한 광고 캠페인. 2000년대 못지 않은 현대적 미감을 엿볼 수 있다.

“브랜드의 역사는 곧 수천 개의 개인적 역사다.
아카이브에는 다양한 사람이 실제로 입었던 코트가 보관돼 있고,
이는 일종의 살아 있는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