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소희 2026 S/S 컬렉션의 인스피레이션 보드.자연의 이미지와 동양의 장 모티프가 드레이프 실루엣으로 이어진다.
디자이너 박소희.

지난 1월 파리에서 선보인 2026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주제는 ‘숨 쉬는 형태(Breathing Forms)’였다. 옷이 숨을 쉰다는 표현이 흥미롭다. 이번 시즌 컬렉션은 공작새, 대나무 숲, 벚꽃처럼 살아 있는 자연에서 출발했다. 움직일 때 형태가 살아나도록 실크 태피터, 시폰, 글라스 오간자 같은 가벼운 소재를 사용했고, 몸을 하나의 조각처럼 바라보며 걸음에 따라 옷이 리듬을 만들도록 구성했다. 나에게 패션은 의복 이상의 존재다. 옷이 마치 조형처럼 존재하다가 움직임 속에서 생명력을 얻는 순간 비로소 패션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자개로 장식한 인비테이션에서부터 컬렉션을 관통하는 서사가 느껴졌다. 초대장의 영감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그것이 쇼의 흐름에 어떻게 이어졌는지도 궁금하다. 내 여름 별장의 침실에 있는 장롱에서 출발했다. 검은 옻칠 위에 새긴 자개 장식이 이번 컬렉션의 실마리가 됐다. 빛을 반사하며 은은하게 빛나는 자개가 마치 흩어진 기억의 조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한국의 전통 공예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자개는 한국적 미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자개, 산수화, 백자, 한국의 구름 문양 등 이번 쇼에는 동양의 전통적 미감이 더욱 풍부하게 등장했다. 특히 김홍도의 산수화를 실크 드레스 위에 옮긴 작품이 인상적이다. 회화를 옷이라는 입체적 형태로 구현한 과정이 궁금하다. 먹을 다루는 김홍도의 강렬한 필치를 보며 그 회화를 어떻게 입체적인 형태로 옮길 수 있을지 고민했다. 런던에 있는 팀과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며 산수화를 자수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았고, 스팽글과 크리스털로 먹의 번짐과 질감을 구현했다. 이번 시즌에는 핸드 페인팅을 중요하게 다뤘는데, 손으로 직접 그리는 과정 자체가 기억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을 입을 수 있는 옷의 형태로 남기고 싶었다. 나에게 몸은 그림을 그리고 자수를 놓는 캔버스와 같다. 모티프를 어디에, 어떤 비율로 배치해야 가장 아름다운 균형이 나올지 숙고하며 여성의 실루엣이 더욱 돋보이도록 구성했다. 시어한 소재를 여러 겹 겹쳐 깊이를 만들고, 먹으로 그린 산이 안개 속으로 스며드는 풍경을 떠올리며 직접 페인팅했다.

당신의 컬렉션에서는 판타지적인 무드가 느껴진다. 이러한 상상력은 어디서 비롯되었나? 어린 시절, 일러스트레이터인 어머니의 스튜디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곳엔 어머니가 세계 곳곳에서 모아온 동화책이 가득했는데, 그 책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 세계로 빠져들곤 했다. 그곳은 나에게 작은 도피처 같았다. 마음껏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곳. 그런 경험이 지금 내가 작업하고 꿈꾸는 방식에도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미스 소희의 세계’를 짓고 싶다. 우리가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세계. 그 안에서 우리는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해외에서 활동하지만 점점 더 섬세하게 한국적 헤리티지를 다루고 있다. 오트 쿠튀르라는 형식 안에서 한국을 이야기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오트 쿠튀르는 유럽 패션의 오랜 전통 위에서 발전했다. 나 역시 코르셋 제작이나 드레이핑, 패브릭 조형 같은 프랑스 쿠튀르의 클래식한 기법을 기반으로 작업한다. 그래서 그 안에서 한국적 요소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동서양의 복식을 살펴보면 서로 맞닿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한국 디자이너로서 그 교차점을 탐구해보고 싶었다. 특히 한국 전통 자수에 관심이 많다. 앞으로도 컬렉션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계속 탐구하고 싶다.

케이스티파이와 협업한 부채 모양 휴대폰 케이스. 이번 시즌 런웨이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전통의 미감을 다룰 때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남길지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나? 아름다움이 지나치면 오히려 그 안의 의미가 흐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로는 실루엣을 단순하게 정리하거나, 대칭을 의도적으로 깨거나, 일부 공간을 비워두는 방식으로 디테일을 덜어낸다. 절제 속에도 분명한 아름다움이 있다. 절제는 형태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솔직함을 드러낸다. 어떤 경우에는 장식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한다. 그 대신 비율이나 움직임, 혹은 소재의 투명함 같은 요소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도록 둔다. 데뷔 컬렉션과 비교하면 디자인과 제작 방식도 크게 변화했다. 여성으로서 다른 여성들을 위해 옷을 만들다 보니 입는 사람의 관점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2021년 졸업 쇼로 패션계에 데뷔할 당시, 미스 소희의 한국적 미감은 글로벌 무대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더욱 친숙해진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한국의 헤리티지를 작업에 풀어내고 있나? 당시에는 한국적 정체성이 작업에 비교적 직관적으로 드러났다. 지금은 그것을 굳이 설명하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살아 온 시간 속에서 떠오르는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옷의 형태로 이어지는 것 같다.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에게 배우며 내 안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 결국 가장 독창적인 결과는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할 때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미스 소희라는 이름 안에서 계속 이어가고 싶은 헤리티지가 있다면. 우리만의 전통 기술이다. 꽃병처럼 곡선을 이루는 드레스 실루엣, 한복에서 영감을 받은 오간자 드레이프, 그리고 호랑이와 까치, 모란, 나비 같은 동양적 모티프들. 이런 요소가 미스 소희라는 이름 아래 조금씩 쌓이며 우리의 헤리티지가 된다. 앞으로 선보일 컬렉션에도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을 계속 담아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