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창업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artier Women’s Initiative, CWI)가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여성이 이끌고 혁신하며 창조할 때 미래는 새롭게 정의된다.’ 오로지 이 믿음 하나로 CWI가 묵묵히 보내온 빛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길을 밤낮으로 밝히는 중이다.

흔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배인 20년의 긴 시간 동안에는 어떤 변화를 목도하게 될까. 창립 20주년을 맞은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는 이 질문에 조용히 답한다. 우리가 사는 땅이 조금 더딘 속도로 망가지고, 지구 반대편 아이들의 기본권이 더 지켜지고, 여러 폭력과 불평등으로부터 서로를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고. 여성 창업가의 잠재력과 기업의 선한 영향력이 만난다면 말이다.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트로피.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는 지속 가능하고 의미 있는 사회적·환경적 영향력을 만들어내며 전 세계의 시급한 문제들에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는 모든 여성 소유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2006년에 시작돼 진화를 거듭한 후 2020년에는 지금과 같은 1년 과정의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해마다 엄격한 심사 기준을 통과해 펠로우로 선발된 여성 창업가들은 프랑스 경영 전문 대학원 인시아드(INSEAD)와 함께하는 임팩트 창업가 교육, 맞춤형 비즈니스 전문 코칭 등을 제공받을 뿐 아니라 연대를 통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평생에 걸친 커뮤니티를 형성할 기회를 갖는다. 총 10개(9개의 지역 어워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북미, 유럽, 사하라 이남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영어권 및 포르투갈어권 아프리카, 중동과 북아프리카, 동아시아,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오세아니아와 1개의 주제 어워드: 독창적이고 개발이 어려운 핵심 과학 및 기술로 혁신적 솔루션을 개발한 창업가를 기리는 과학 및 기술 선구자 어워드)로 나뉘는 어워드에 참가하는 각 펠로우는 1월부터 5월까지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 트레이닝을 받은 후 6월 워크숍 주간을 거쳐 7월부터 12월까지는 일대일 비즈니스 트레이닝과 임원급 리더십 코칭, 개인별 지원 세션을 수료하게 된다.

까르띠에가 주얼리나 워치 산업과 다소 멀어 보이는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이유는 언제나 여성이 메종의 원동력이며 영감의 원천으로서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는 오랜 신념 때문이다. 그 결과 66개국 출신, 330여 명에 달하는 여성 창업가가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사업을 확장하며 성장해왔다.

20주년인 2026년,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는 30명의 펠로우를 발표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예방 가능한 실명을 막고, 매년 수백만 명이 시력을 잃는 라틴아메리카의 안과 진료 공백을 좁히는 기업 프로스페리아(PROSPERiA)의 크리스티나 캄페로 페레도(Cristina Campero Peredo), 기업이 장애인 전문가를 채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인재 채용 및 러닝 플랫폼 메이킹 스페이스(Making Space)의 킬리 캣-웰스(Keely Cat-Wells), 훼손된 해양 생태계를 복원함으로써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데 공헌하는 네이처 테크 기업 아키리프(Archireef)의 브리코 유(Vriko Yu), 여성의 성 건강에 관한 의료 지식을 제공하는 AI 기반 디지털 클리닉 핑키 프로미스(Pinky Promise)의 디비야 카메르카르(Divya Kamerkar)를 포함한 30인의 여성 창업가 중 마리끌레르 코리아는 한국에 기반을 둔 두 인물, 잼잼테라퓨틱스(GemGem Therapeutics)의 김정은 대표와 노매드헐(NomadHer)의 김효정 대표를 만났다. ‘길을 밝히는 여성들(Women lighting the path)’.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가 공개한 20주년의 테마처럼 저마다의 방식과 속도로 살아가는 여성들은 까르띠에가 오랜 시간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비춰온 빛 아래서 더 먼 길로 용감히 나아가고, 다다른 지점에서 세상을 비추는 또 하나의 빛으로 형형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INTERVIEW
잼잼테라퓨틱스 창립자 김정은 Jeklin Kim
FOUNDER OF GEMGEM THERAPEUTICS

잼잼테라퓨틱스는 어떤 회사인가요? 장애 아동을 위한 재활 치료용 게임을 만들고 있어요. 몸에 관한 재활 치료는 작업 치료와 물리치료로 나뉘거든요. 저희는 작업 치료에 집중하고 있죠.

잼잼400이 첫 프로그램이죠? 맞습니다. ‘잼잼400’은 하루에 4백 번 스스로 움직이도록 해 소근육 발달을 돕는 게임이에요. 다음 프로그램인 ‘야후 놀이터’는 지금 프로토타입 단계인데, 재활 치료 센터나 특수학교, 특수 장애 어린이집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과 교사가 좋아하는지 살피며 개선해가고 있죠. 장비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은 게 특징이고, 심지어 야후 놀이터는 설치 과정 없이 웹사이트에서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심플하고 쉬운 방식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오랫동안 게임 회사에서 일하다가 아이의 재활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고 들었어요. 처음엔 창업할 생각은 아니었고, 아이의 재활을 위해 기획했어요. 그러다 투자를 받아 회사를 차리게 됐습니다. 이전에는 게임 기획을 12년 정도 했어요. 게임 회사에서 기획자는 감독 같은 역할이라 아이디어부터 마무리 CS(Customer Service, 고객 서비스)까지 모든 걸 도맡거든요. 그래서 이 과정이 낯설지는 않았어요.

이미 해당 분야의 전문가였는데도 어려움이 많았다고요. 제가 이전 회사에서 만들던 게임은 이미 십수 년간 사랑받은 게임이기 때문에 성공 방정식이 있거든요. 그런데 잼잼400은 타깃을 어떻게 정할지, 몇 살 아동에게 권해야 할지, 치료에 도움이 되려면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할지 모두 미지수였죠. 게임의 재미도 있어야 하고, 고객의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도 충족해야 하고요. 치료 센터 경험이 많고, 재활 치료 센터도 직접 운영하다 보니 아이들이 뭘 원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지만요. 게임 이외에 투자자들을 대하는 부분도 참 어려워요. 저는 오후 6시 무렵에는 무조건 퇴근해서 아이들과 저녁 시간을 보내
거든요. 이런 성향도 투자자가 보기에는 낯설겠죠. 네트워킹도 전부 밤에 이루어지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해줄 게 워낙 많아요. 감사하게도 친정어머니가 도와주고 계시죠.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이하 CWI) 이전 펠로우들을 만나봐도 육아 때문에 제약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어요. 대표님처럼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여성 창업가를 키우는 사람은 결국 엄마, 선배 여성인 것 같아요. 나라나 사회가 아니고요. 방금 하신 얘기를 오늘 집에 가서 엄마한테 꼭 전해드려야겠어요. 저희 엄마는 어린이집을 30년간 운영하셨어요. 규모가 컸던 터라 정작 저를 잘 돌보지 못하셨죠. 하지만 항상 엄마를 선배 창업가라고 생각해요.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게 밤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부모도 많잖아요. 그런 분들을 위해 밤에 여는 어린이집을 운영했죠.

‘임팩트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자란 셈이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지금도 모르는 게 있으면 엄마한테 물어봐요.(웃음)

CWI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언더독스(창업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 모집 글을 보고 지원했어요. 사실 이런 기회를 접할 플랫폼이 많지 않거든요. 프로그램 자체도 드물고요. 미국이나 유럽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게 저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어요. 안 해본 거니까. 그리고 CWI는 임팩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장애 아동을 위한 회사니까 가능성이 보였고요.

저 또한 CWI를 3년간 취재하면서 다양한 임팩트 비즈니스를 접했어요.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한다는 게 참 대단한 일이더라고요. 실행하기 어렵죠. 2017년 펠로우로 선정되신 스파우츠 오브 워터(Spouts of Water)의 캐시 쿠(Kathy Ku) 대표님을 조금 아는데, 이분도 대학생 때 우간다에 갔다가 식수 문제를 알게 되어 사업을 시작한 경우예요.

그래도 대표님은 어머님의 선례를 보고 자라 창업이라는 용기를 내기가 조금은 쉬웠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엄마도 했으니까 나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겠지’ 생각하고요.

세상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도 크겠어요. 사실 제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다들 “너무 좋은 일 한다”고 해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고결한 철학보다는 제 아이의 치료를 돕고 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필요에서 출발한 거거든요. 그렇지만 점차 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해졌어요.

실제 사용자의 반응은 어떤가요? 엄청 고마워해요. 그 말들이 아주 큰 힘이 되고요.

CWI와 함께 보낸 넉 달의 시간은 어땠나요? 링크드인에 저를 어떻게 등록할지 같은 기본적인 조언부터 스피치 코칭, 심지어 심리 상담도 받았어요. 특히 스피치 관련 프로그램은 큰 도움이 됐죠. 아무래도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다 보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느낌이 다르거든요. 또 외국 사람과 한국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식 자체에도 차이가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배웠고요. CWI와 관련한 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예정된 피칭에 대해서도 코멘트를 받고 있어요. 저희 사업이 잘되게 하는 게 CWI의 목표니까요.

이전 인터뷰에서 “모든 아이가 평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어요. 사실 한국 사회는 장애를 비롯한 여러 차이를 개인의 문제, 특히 엄마의 책임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음, 장애 아동을 둔 엄마, 그중에서도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를 둔 엄마를 흔히 ‘재활 맘’이라고 불러요. 재활 맘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갖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엄마가 전문직이어도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 재활 시스템이 참 열악해요. 아이가 장애인으로 태어나면 가장 먼저 대학 병원에 대기 등록을 하는데, 의사 진료를 받으려면 3년이 걸려요. 그럼 포기하고 작은 병원을 알아볼 수밖에 없어요. 또 재활 치료사를 만나는 데도 6개월에서 1년이 소요되는데, 그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면 골든 타임이 지나 있죠. 운 좋게 등록이 된다고 해도 일주일에 딱 한 번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그 30분을 위해 부모가 4~5시간을 운전해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고요. 사설 센터는 그나마 등록이 쉽지만 한 달에 1백만원 이상 들어요.

그럴 때 잼잼400의 역할이 크겠네요. 사실 저희 프로그램 구독료가 저렴한 편은 아니에요. 보통 월 5만원 선이고, 교사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은 15만원 이상이거든요. 이런 재활 시스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싸다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겪어본 어머니들은 너무 고맙다고 우시는 일도 잦아요. 지금은 유타대학교와 임상실험도 하고, 유타대학교 클리닉이나 특수학교와 연결해 테스트도 하고 있어요.

프로그램에 접속해보니 모두에게 획일화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가장 먼저 영유아 검진처럼 어머니들이 자가 진단을 하고 설문에 답하면 저희 회사의 재활 치료 교사들이 무료 체험 사용자를 포함해 한 명도 빠짐없이 전화 상담을 진행해요. 아이들마다 가동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죠. 또 게임 자체도 사용자마다 다르게 제공해요. 예를 들어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모든 캐릭터가 공룡으로 등장하는 식이에요. 자폐 아동은 특정한 색에 꽂히는 경우가 많거든요. 파란색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모든 게임을 파란색으로 만들어주는 식의 초개인화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겠네요. 사실 제가 아이와 실랑이하는 데 지쳐 스트레스를 덜 받아보려고 만든 거예요.(웃음) 아이들이 재미있게 하면 그 시간 동안 엄마가 조금은 쉴 수 있거든요. 실제로 저희 아이는 잼잼400을 하려고 일어나는데, 아이들이 크면 결국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해야 하니 그에 대비해 루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선 정도는 어떻게 측정하나요? 중간중간 아이들이 사용하는 영상을 전달받아요. 그 이후 한 달 전과 비교해 어떻게 다른지 스크립트나 전화로 설명하죠. 한 가지 어려운 점은 아이의 활동 기능이 확연히 좋아져도 아이 엄마의 일상을 편리하게 할 정도가 아니면 만족을 이끌어내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최근에는 ‘탈효율’을 선언했다고요. 돌아보니 지나치게 효율성만을 추구해왔더라고요.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요. 그러지 말고 즐겁게 해보자고 마음을 바꿨죠. 사실 효율 위주의 사회에서는 장애 아동들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저희 팀원이 중심을 지키며, 꾸준히 가기만 하면 아이들이 미래에 살게 될 사회를 더 낫게 만들 거라고 말하는 데 공감되더라고요.

주변에서도 도움을 많이 주나요? 그럼요. 이전 사무실은 스마일 게이트 사회 공헌 팀의 배려로 무료로 사용했고, 지금 사무실 역시 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창업 허브에 속해 있어요. 현대자동차 정몽구재단의 CMK 프로그램이나 온누리교회의 어!벤처스(A!ventures)에도 감사하고요. 모두 저희를 진정성 있게 응원하고 지원해줬어요.

곧 방콕에서 열리는 2026 CWI 어워드에도 참석할 텐데, 어떤 기대를 갖고 있나요? 저보다 딱 한두 걸음 앞서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펠로우분들과 소통할 일이 가장 기다려져요.

그렇다면 딱 한두 걸음 뒤로 대표님을 따라오는 창업가들에게 한마디한다면요? 저는 사실 못난 사람이었어요. 회사에서도 그렇고, 중고등학교 때 전교 꼴등을 한 적도 있죠. 그런데 저도 해냈잖아요. 애가 셋이어도, 어떤 제약과 어려움이 있어도 창업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도전만 하면 해낼 수 있다고요.

잼잼테라퓨틱스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재활을 둘러싼 생태계가 변했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엄마들은 또 생길 거잖아요. 장애 아동은 계속 태어나니까요. 그때는 다른 세상이었으면 해요. 지금과 다른 치료 시스템 속에서 서포트를 받고, 커뮤니티를 통해 위로도 얻고요. 지금의 재활 치료 방법이 1920년대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어요. 개혁이 없었던 거죠. 이제는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INTERVIEW
노매드헐 창립자 겸 CEO 김효정 HyoJeong Kim
FOUNDER AND CEO OF NOMADHER

많은 여성이 안전 때문에 여행을 망설이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글로벌 여성 여행자 앱인 노매드헐을 론칭했다고 들었어요. 이런 생각을 갖게 한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터라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녔어요. 그러던 중 이탈리아의 한 숙소에서 호스트 가족에게 불쾌한 일을 당하게 됐고, 이후로 1년 정도 여행을 중단했죠. 당시에는 ‘이게 내 잘못이었나?’ 하는 의문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리 돌이켜봐도 개인의 잘못이 아니더라고요. 이 일 때문에 여성이 혼자 하는 여행을 결정할 때 여전히 안전 문제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체감했죠.

대부분의 여성 여행자가 이 문제에 공감할 것 같아요. 해외에 갈 때 여행용 문 잠금장치를 구매하는 경우도 더러 봤거든요. 비단 여행자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지난해에는 오사카에 갔는데, 같은 시기에 오사카로 출장 온 여성의 호텔 침대 밑에서 괴한이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죠. 여행 시기와 목적, 나이와 국적은 저마다 달라도 안전 문제만큼은 모두가 고민하는 듯해요.
그럼에도 혼자 하는 여행을 추천하는 이유는 무언가요? 낯선 곳에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성취감으로 이어진다고 봐요. 그런 측면에서 혼자 하는 여행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서 자기 계발에 가까운 경험이라고 할 수 있죠. 안전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노매드헐은 여행이라는 매개를 통해 모든 여성이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그리고 스스로를 알아가도록 돕고 싶어요.

이런 문제의식이 실제 산업구조에도 영향을 미칠까요? 여행은 전 세계 GDP의 12%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큰 산업 분야예요. ‘여성이 혼자 여행해도 안전한 나라’라는 인식은 곧 경제적 효과로 이어지기도 하죠. 이미 여성 여행자 시장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오가고 있어요.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이하 CWI)의 펠로우로 선정되셨어요. 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현재 한국과 파리를 오가며 살고 있어요. 파리에서 프로그램을 처음 알게 됐고,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소캡 콘퍼런스에서 CWI 팀을 만나 지원을 권유받게 됐죠. 또 스위스에서 CWI의 이전 기수 펠로우인 세이프 유(Safe YOU)의 마리암 토로시안(Mariam Torosyan)을 알게 되기도 하면서 모든 상황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어요.

기존의 CWI 펠로우에 대해서도 찾아보셨을 텐데, 인상 깊은 인물이 있었나요? 2024년 펠로우인 세이브앤코(SAIB & Co)의 박지원 대표를 전부터 좋아했어요. 여성들에게 주어진 편견이나 사회구조의 불합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노매드헐과 닮았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앞서 언급한 세이프 유는 아르메니아의 회사인데, 성폭력 위기에 처한 여성들이 주변 여성들에게 구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돕는 앱을 만들죠. 노매드헐의 타깃이 여성이다 보니 이 두 회사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콘퍼런스나 페스티벌 같은 오프라인 행사도 개최한다고요. 올해는 서울, 파리, 델리에서 콘퍼런스를 열어요. 많게는 1천 명 가까운 세계 여성들이 모여 왜 ‘혼자 여행’을 선택하는지, 우리가 이러한 행동을 통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또 어떻게 더 나아갈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결국 여성이라는 소재를 통해 여성의 삶 전반을 다루는 거네요. 그렇죠. 여행을 가면 어차피 어디에선가 밥을 사 먹고 잠을 자야 하잖아요. 이 소비 금액이 현지 여성들에게로 갈 수 있기를 바라요. 호텔 산업을 예로 들면 여성 지배인 비율이 고작 10% 남짓이거든요. 그렇지만 여성이 안심할 수 있는 호텔에 대한 논의가 계속된다면 많은 호텔이 이런 부분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여성 리더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곧 채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죠. 또 해녀촌과 연계해 해녀 부부가 운영하는 숙소에서 다이빙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해요. 해녀라는 존재 자체가 여성의 강인함을 상징하잖아요.

여성 친화 숙소 혹은 여행지와 여행자를 연결하는 것 역시 노매드헐의 핵심 기능인데, 그 대상은 어떻게 선정하나요? 우선 설립 멤버의 50% 이상이 여성으로 구성돼 있어야 해요. 일례로 발리의 서핑 숍은 대부분 남성 서퍼들이 운영하는데, 현지 여성 서퍼가 이끄는 서핑 숍이 있다면 당연히 여성 여행자에게도 편하고, 이윤 역시 여성에게로 돌아가겠죠. 이런 수익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노매드헐의 책임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사회 공헌에도 관심이 많은가 봐요. 사실 노매드헐 펀드를 만드는 게 창립 초기부터 품은 꿈이에요. 예전에는 큰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가능한 선에서 시작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구글이 노매드헐의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요. 한국 기업 중에는 최초라고 하더라고요. 1~2년 전 런던에 있는 구글 팀에서 제안을 받았어요. 테크놀로지를 통해 소셜 임팩트를 이뤄내는 앱을 조명하는 내용인데, 저희를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죠.

우먼 임파워먼트를 주창하는 기업이 많은데, 그 가운데 노매드헐이 주목받은 이유는 뭘까요? 꾸준함을 알아봐준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20년째 이어온 CWI도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또 저를 보면 이 일을 너무 좋아서 하는 사람인 게 느껴지지 않아요?(웃음) 진심이 드러나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요. 엑시트(Exit) 계획을 물어보는 사람도 많은데, 저는 노매드헐을 여든 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잘 가꿔가는 게 꿈이에요.

진정성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럼요. 제가 정의하는 진정성이란 꾸준함과 같은 뜻이에요. 보통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계속하다 보면 뭐라도 된다고 믿어요. 사실 노매드헐을 론칭하자마자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거든요. 2년 반 동안 암흑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래도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이 업계에 ‘진심’인 사람들만 남을 거라는 희망으로 버텼어요.

CWI 펠로우로서 보낸 4개월 동안에는 무엇을 배웠나요? 메시지를 어떻게 더 진정성 있게 전달할 수 있는지, 또 각자의 스토리를 어떻게 더 널리 알릴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멋진 여성은 더 멋진 여성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는데,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게 믿기지 않아요. 멘토링에도 만족하지만, 이토록 인상적인 여성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요.

여성을 다루고, 여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마리끌레르와도 닮은 부분이 있어요. 정말 그렇네요. 노매드헐의 소셜미디어를 잡지처럼 만들고 싶어요. 여행을 통한 개개인의 성장을 다루는 인터뷰 기사도 쓰고, 어쩌면 알로 같은 패션 브랜드로 확장할 수도 있는 거고요. 올해는 서울에서 팝업스토어도 열 예정이에요.

자신의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여성으로서 분야를 막론하고 다음 세대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혼자 여행을 가보기를 권해요. 지쳐서 쉬러 가도 괜찮고, 형태나 방식은 중요하지 않죠. 홀로 여행하며 몰랐던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은 분명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장시켜주거든요.

노매드헐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언가요? 앞서 말했듯 노매드헐 펀드를 만드는 거예요. 또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노매드헐의 항공사나 호텔도 만들어보고 싶고요. 이런 꿈을 꾸는 지금이 무척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