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ier.

많이 버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만큼 버는 사람들 중에서는 주얼리와 워치 구매 경험이 많은 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7년간 까르띠에 PR팀에서 근무하며 직접 구매했던 다양한 제품들 중, 제 기준의 잘산템 2가지와 후회템 2가지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사실 이야기하고 싶은 제품들이 더 많지만, 이미 이 글이 꽤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우선은 가장 인상 깊었던 제품들 위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언젠가 더 많은 제품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볼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네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비교적 디테일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PR팀은 정말 다양한 제품을 가까이서 다루는 부서이기 때문입니다. 모니터 앞에 앉아 전략을 수립하거나 매출을 관리하는 오피스 내 타부서들이나, 고객의 요청에 따라 베스트 셀러 위주로 응대할 수밖에 없는 부티크와는 달리, PR팀은 현장을 뛰며 베스트 셀러는 물론 슬로우 무버,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와 하이 주얼리까지 훨씬 넓은 스펙트럼의 제품을 접하고 직접 다뤄보게 됩니다. 특히 촬영 현장에서 셀럽과 모델의 스타일링을 돕다 보면, 어떤 얼굴형에 어떤 이어링이 어울리는지, 손목의 형태와 팔 길이에 따라 어떤 워치가 더 예쁜지, 또 어떤 제품을 어떻게 레이어드 해야 세련돼 보이는지 까지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히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주변 구매 상담은 거의 전담 수준으로 맡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이 모든 후기는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성향, 그리고 제 체형과 분위기에 맞춘 아주 개인적인 피드백이라는 점입니다. 참고로 저는 160cm 초반의 보통 체형으로, 손목은 가늘거나 보통 정도지만 팔이 짧은 편입니다. 손가락 역시 짧고 두꺼운 편이라 개인적으로 손이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고요. 얼굴형은 폭이 좁은 긴 얼굴에 가깝고, 목 역시 아주 가늘게 빠진 타입은 아니라 주얼리나 워치 디자인에 따라 전체적인 비율 차이가 꽤 크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혹시라도 저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면, 이 뒤늦은 후회와 만족감의 리포트가 구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잘산템 1. 트리니티 링,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욕망의 상징

트리니티 링은 1924년,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장 콕토(Jean Cocteau)의 의뢰로 시작된 컬렉션입니다. 핑크 골드는 사랑, 화이트 골드는 우정, 옐로우 골드는 신뢰를 각각 의미하는 세 개의 링이 서로 얽혀 하나의 트리니티 링을 완성합니다. 여러 자료 사진에서 본, 장 콕토가 새끼손가락에 트리니티 링 두 점을 레이어드해 착용한 모습은 지금까지도 굉장히 상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장 콕토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어서였는지 저는 늘 이 컬렉션에서 묘하게 지적인 아우라를 느꼈고, 지적 허영심이 강한 인간인 저는 그 분위기를 어떻게든 제 것으로 가져오고 싶어 오래도록 동경해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실제 트리니티 링 구매의 계기는 배우 윤여정 선생님이었습니다. 한 10년 쯤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청룡영화제 협찬 건으로 선생님을 응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보통은 PR팀에서 주요 제품을 피팅 현장으로 전달 드리고, 셀럽이 현장에서 착용 후 결정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런데 윤여정 선생님은 직접 부티크까지 오셔서, “브랜드가 추천하는 대표 제품보다는 정말 나에게 어울리는 제품을 직접 보고 고르겠다.”고 하신 겁니다. 그 모습이 당시의 제게는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이 하나하나 주얼리를 착용해보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던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선생님이 끼고 오신 세 개의 밴드 전체에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트리니티 링이었습니다. 제가 계속 반지를 쳐다보고 있었더니, 선생님은 그 반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2010년, 환갑도 넘은 연세의 선생님이 칸 영화제에 처음 초청 받으셨을 당시,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한국에서 활동하는 배우로서 이런 큰 해외 영화제에 다시 설 기회가 또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드셨다고요. 그래서 그 순간의 멋진 자신을 기념하고 싶어 칸 현지 까르띠에 부티크에서 직접 구매한 반지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저는 윤여정 선생님이 너무 멋져 보였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죠. 결국 그로부터 11년 후, 아카데미 시상식과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BAFTA)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수상하시는 모습을 보며, 제게 트리니티 링은 단순한 주얼리가 아니라 ‘멋지게 나이 드는 사람’의 상징처럼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인생의 눈부신 순간들을 스스로 기념하고 아낌없이 칭찬해줄 줄 아는 사람. 결국 그 해의 저는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선생님과 같은 트리니티 링을 구매했습니다.

처음에는 성공과 책임감의 의미를 담아 왼손 중지에 착용할 생각으로 다이아몬드 세팅 모델을 구매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트리니티는 역시 새끼손가락이지……” 하는 생각에 클래식 3골드 모델까지 하나 더 구매해 지금은 중지에는 다이아몬드 세팅 모델을, 새끼손가락에는 클래식 3골드 모델을 함께 착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30대 중반이었던 제게는 꽤 무리한 구매였지만, 40대가 된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구매했던, 윤여정 선생님과 같은 모델은 현재 단종되어 더 이상 구매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손가락이 짧고 두꺼운 제 손에는 반지 표면을 둥글게 마감한 현행 모델보다 오히려 각을 살려 마감한 이 디자인이 더 잘 어울렸던지라 더 이상 추가 구매가 어렵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세 개의 링이 겹쳐졌을 때 각이 살아 있는 디자인 덕분에 자연스럽게 링의 볼륨감이 더해지면서 손가락을 더 가늘어 보이게 해주었고, 실제로 착용했을 때도 훨씬 더 제 손에 잘 어울렸거든요.

가끔은 반지를 보며, 나도 지금 윤여정 선생님처럼 멋지게 나이 들고 있는 중이 맞나 돌아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반지 하나가 사람을 바꿔주진 않겠지만, 적어도 나태해진 저 자신을 다시 한번 다잡게 만드는 역할 정도는 충분히 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이후 윤여정 선생님이 티파니앤코의 앰버서더로 임명되시며, 한 유튜브 채널에서 “이제 까르띠에 하던 건 다 못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신 걸 봤거든요. 더 이상 저 혼자 마음속으로 간직하던 ‘윤여정 선생님과의 커플링’은 아니게 된 셈이라 살짝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생님의 주얼리에 대한 애정과 안목을 또 다른 메종이 알아보고,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열어드렸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트리니티 링 역시 다양한 버전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한 가지 골드 만으로 세 개의 링을 모두 제작한 버전도 있었고, 블랙 세라믹이 들어간 모델도 있었고, 최근엔 야생 동물의 무늬가 더해진 모델까지 출시되었죠. 물론 이것 역시 어디까지나 저만의 취향일 수 있겠지만, 제게 트리니티는 역시 핑크 골드, 화이트 골드, 옐로우 골드 세 가지 컬러의 골드가 함께할 때 가장 아름다운 컬렉션처럼 느껴집니다. 그게 제가 처음 동경했던 트리니티 링의 모습이었고, 장 콕토가 사랑했던 가장 클래식한 형태이기도 하니까요.

잘산템 2. 탱크 아메리칸 미니 주얼리 워치, 불가리를 흠모한 까르띠에 직원이 결국 못 참고 산 시계

저는 개인적으로 영원한 클래식에 가까운 까르띠에의 디자인만큼이나, 불가리 특유의 화려하고 관능적인 스타일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제가 구매한 탱크 아메리칸 미니 주얼리 워치를 처음 봤을 때, ‘불가리 옷을 잠시 빌려 입은 까르띠에 시계’처럼 느껴졌습니다. 클래식한 탱크 아메리칸 케이스에 뱀피 텍스처의 골드 브레이슬릿이 장착되어 있었거든요. 당시에 브레이슬릿이 굉장히 불가리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한참 후 불가리 세르펜티 세두토리 워치가 론칭 되었을 때 비슷한 느낌의 브레이슬릿이 적용된 걸 보고 속으로 역시 내가 맞았구나 싶었습니다. 현재 출시되는 버전은 클래식으로 회귀하여 링크 형 브레이슬릿으로 변경되었지만, 당시 제가 구매한 모델은 비교적 짧은 기간만 존재했던 독특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골드 브레이슬릿 주얼리 워치는 적어도 50대 이후에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입사 초기와 비교해 가격 상승폭이 꽤 드라마틱했던 데다, 단종 이야기가 슬슬 들려오기 시작하니 점점 마음이 급해지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이 시계를 구매한 시점이 이미 퇴사 이후였다는 점입니다. 보통은 퇴사하고 나면 너무 오래 까르띠에만 보고 살아서 한동안 까르띠에 제품은 쳐다보기도 싫어진다고들 하던데, 저는 퇴사한 뒤 제가 가진 까르띠에 제품 중 가장 고가의 시계를 구매한 것 입니다. 퇴직금을 털어버린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제 애사심도 참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브레이슬릿 디자인 외에도 탱크 아메리칸 미니 주얼리 워치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제 손목과 팔의 비율을 정말 예쁘게 보이도록 도와주는 시계였기 때문입니다. 원래 세로 비율이 긴 워치는 손목이 두꺼운 사람들에게 자주 추천되곤 하는데, 긴 형태의 케이스가 러그 위아래 여백을 줄여주어 손목 두께가 덜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탱크 아메리칸 워치 역시 미니 사이즈이긴 하지만 세로 비율이 더 긴 형태라 제 손목도 훨씬 더 가늘고 여리여리해 보였고, 여기에 좁은 가로폭에 맞는 여성스러운 비율의 브레이슬릿까지 더해지니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지는 여백이 훨씬 길어지면서 짧은 제 팔도 조금 더 길고 우아해 보이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떤 시계나 브레이슬릿도 이 정도로 제 손목과 팔의 비율을 예쁘게 보여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모델은 브레이슬릿 워치 특성상 티셔츠와 와이드 팬츠 같은 캐주얼 한 룩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리지만, 반대로 수트나 칵테일 드레스, 블랙 타이 드레스 코드 위에서도 전혀 무리 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이 시계만큼은 50대는 물론, 60대와 70대가 되어서도 꾸준히 잘 착용하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 만족도는 점점 높아질 듯 합니다. 물론 언젠가는 노안 때문에 작은 다이얼 위 시간을 읽는 일이 조금 힘들어질 수는 있겠지만요…

후회템 1. 저스트 앵 끌루 후프 이어링, 화보와 현실의 차이, 지수와 나의 차이

저는 예나 지금이나 클래쉬 드 까르띠에 후프 이어링 스몰 모델을 자주 착용하고 있습니다. 폭이 좁고 긴 제 얼굴형에는 어느 정도 존재감이 있는 직경 23mm의 후프 이어링이 하관의 빈 공간을 채워주면서 훨씬 균형있어 보인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는 후프 이어링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나 봅니다.

처음 저스트 앵 끌루 후프 이어링이 출시되었을 때만 해도 사실 크게 관심이 있었던 제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블랙핑크 지수 화보 촬영 현장에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수의 오른쪽 귀에 옐로우 골드와 화이트 골드 버전을 연달아 피어싱처럼 연출해보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너무 예뻤거든요. 심지어 지수 본인도 그 컷이 마음에 들었는지 꽤 오랜 시간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했을 정도로 여러모로 완벽한 스타일링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건 꼭 사야겠다 싶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현실 속 저는 지수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귀를 양쪽에 하나씩만 뚫은 상태라 화보처럼 한 귀에 두 개를 연달아 스타일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는데, 설령 용기를 내 한군데 더 뚫는다 해도 이 이어링은 좌우 방향이 정해진 디자인이라 같은 귀에 나란히 착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였습니다. 결국 현실에서는 하나만 단독으로 착용하게 되었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카리스마가 없이 느껴지더라고요.

무엇보다 저처럼 긴 얼굴형에는 볼륨감 없이 가는 튜브 형태로 제작된 작은 후프 이어링이 얼굴에서 가장 짧아 보여야 할 위치인 중안부에 딱 걸리듯 머물다 보니, 오히려 얼굴이 더 길어 보이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는 이어링을 두세 개씩 함께 레이어드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부분을 미처 체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사실 돌이켜보면, 저는 그 이어링 자체가 갖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날 지수의 완벽한 스타일링을 갖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촬영 현장에서는 헤어, 메이크업, 조명, 의상, 피어싱 위치, 다른 주얼리와의 레이어링, 거기에 지수의 용안까지 모든 요소가 완벽히 갖춰진 상태로 한 컷이 완성되니까요. 결국 화보와 현실 사이에는 생각보다 훨씬 큰 간극이 있다는 걸 이 이어링을 통해 아주 현실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결국 귀걸이는 아무 잘못이 없었고, 잘못은 제 얼굴이 한 거죠.

결정적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디자인의 다이아몬드 파베 버전이 새롭게 출시되었는데, 친언니가 그 모델을 구매해 착용한 모습을 보니 제 이어링이 더더욱 심심하고 밋밋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지금은 보석함 안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언젠가 울쎄라를 정말 열심히 받아 얼굴형이 조금 짧아진다면(?) 다시 한번 도전해볼 의향은 있습니다만,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후회템 2. 방돔 루이 까르띠에 웨딩 링 & 에땅셀 드 까르띠에 웨딩 링, 결국은 비워둔 약지

현재는 ‘방돔 루이 까르띠에 웨딩 링’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지만, 제가 구매할 당시 이 반지의 이름은 트리니티 컬렉션에 속한 ‘트리니티 웨딩 밴드’였습니다. 지금이야 이 디자인 역시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웨딩 밴드로는 러브 링이나 로고가 들어간 C 드 까르띠에 링을 훨씬 더 많이 선택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덜 뻔한 선택이 하고싶은 예비 신부 였던 저는 이 반지로 마음이 기울게 됐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후 저처럼 ‘조금 덜 뻔한 웨딩 밴드’를 찾는 고객들이 많아졌는지 이 반지는 트리니티 컬렉션에서 독립해 지금의 ‘방돔 루이 까르띠에 웨딩 링’으로 따로 운영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저는 아직도 왜 굳이 이름을 바꿨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랑, 우정, 신뢰라는 의미까지 담고 있던 트리니티라는 이름이 웨딩 밴드에는 훨씬 잘 어울렸다고 생각하거든요.

결혼을 준비하며, 이런 트리니티의 의미를 남편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제가 먼저 이 반지를 제안했고, 남편 역시 이 디자인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거기에 저는 “영원한 사랑의 의미까지 더하면 완벽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으로 까르띠에 대표 다이아몬드 웨딩 밴드인 에땅셀 드 까르띠에 링까지 추가하게 됐고요. 그땐 정말 완벽한 조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제 손이었습니다. 원래 손가락이 짧고 두꺼운 편이라 중간 두께의 링이 가장 안 어울리는 손인데, 트리니티 웨딩 밴드에 얇은 다이아몬드 밴드까지 더해 두께감이 더해지니 가뜩이나 안 예쁜 손이 더 둔하고 답답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손이 예뻐 보이고 싶어 네일도 열심히 받고 손톱도 길러봤지만, 결국 손가락 두께와 길이는 시술이나 성형수술로도 해결되지 않는 굉장히 근본적인 문제라는 사실만 깨닫게 되었네요.

게다가 결혼 이후, 중지에는 윤여정 선생님께 영감을 받아 구매한 다이아몬드 세팅 트리니티 링을, 새끼손가락에는 장 콕토의 지적인 아우라에 매료되어 구매한 클래식 클래식 트리니티 링을 차례로 들이게 되면서, 굳이 제 손에 썩 잘 어울리지도 않는 반지를 약지에 고집할 이유도 사라져갔습니다. 그렇게 두 점의 반지는 제 보석함 속에서 잠들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됩니다. ‘홍석천의 보석함’만큼은 아니어도, 제 보석함 안 경쟁도 생각보다 치열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에땅셀 드 까르띠에 링 역시 제 애사심에서 비롯된 구매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브랜드의 상징성과 의미까지 생각하면 충분히 아름다운 선택이었지만, 아주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같은 금액으로 로컬 보석상이나 종로, 혹은 랩 다이아몬드와 같은 선택지를 택했더라면 훨씬 더 존재감 있는 다이아몬드 링을 구매할 수 있었을 겁니다. 결국 제 손에서는 점점 손이 가지 않는 반지가 되었지만요. 그래도 남편은 여전히 제 중지와 새끼손가락 위 반지와 같은 소재의 밴드를 꾸준히 착용하고 있으니, 저는 그냥 “뭐 이 정도면 커플링이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제 경험에 빗대어, 커플 링을 동일한 디자인으로 구매해 두 사람 간의 유대감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내가 오래도록 잘 착용할 반지를 고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어요.

이렇게 저마다의 이유와 서사를 품은 제 까르띠에 컬렉션들을 다시 꺼내보니, 결국 저는 단순히 ‘예쁜 주얼리’를 산 게 아니라 그 시절의 취향과 욕망, 동경과 시행착오까지 함께 사 모으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퇴사 이후에는 다른 메종의 주얼리들도 (아직 시계는 안 샀거든요.) 꽤 다양하게 경험해봤지만, 아직까지는 까르띠에 만큼 피니싱이 정교하고 착용감까지 세심하게 설계된 주얼리는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사랑했던 브랜드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고, 또 그만큼 열심히 소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이미 오랫동안 1등이었던 브랜드에서의 경험은 결국 제 취향과 기준 자체를 굉장히 높게 만들어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게 까르띠에는 단순히 ‘다녔던 회사’라기보다는, 제 취향과 미감을 완성해준 한 시절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저 또한 퇴사한 직원이기 보다는, 아직도 까르띠에를 오래도록 사랑하고 있는 고객에 더 가까운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