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연구소가 2027년 봄, 생존 디자이너로는 세 번째로 존 갈리아노의 대규모 단독 회고전을 개최합니다.
- 이번 전시는 그의 40년 창작 세계와 메종 마르지엘라 시절의 성취뿐만 아니라, 과거 그의 경력을 뒤흔들었던 인종차별적 논쟁과 도덕적 책임까지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 최근 자라와의 파트너십 체결로 복귀를 알린 갈리아노의 행보와 맞물려, 미술관은 관람객에게 미적 성취와 윤리적 책임의 경계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연구소가 2027년 봄, ‘존 갈리아노: 호라이즌스(John Galliano: Horizons)’ 전시를 개최하며 존 갈리아노의 40년 작업과 그의 경력을 뒤흔든 논쟁까지 한 공간 안에 펼쳐 보입니다.

메트가 선택한 세 번째 생존 디자이너
패션을 하나의 거대한 연극으로 바꿔온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가 마침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주인공이 됩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의상연구소의 2027년 봄 전시로 ‘존 갈리아노: 호라이즌스(John Galliano: Horizons)’를 개최한다고 발표한 것이죠. 전시는 2027년 5월 9일부터 2028년 1월 9일까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5번가 본관에서 진행되는데요. 갈리아노의 창작 세계 전반을 살피는 첫 대규모 미술관 전시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죠. 존 갈리아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연구소에서 대규모 단독전을 여는 세 번째 생존 패션 디자이너로 이름을 올리게 됐습니다. 앞선 두 사람은 1983년의 이브 생 로랑과 2017년의 레이 가와쿠보입니다. 수많은 디자이너가 메트 전시의 일부로 소개돼 왔지만, 한 명의 생존 디자이너에게 전시장 전체를 내어주는 사례는 손에 꼽히죠. 갈리아노의 이름이 패션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번 결정을 둘러싼 질문까지 예고하는 대목입니다.


40년의 패션을 세 개의 장면으로
전시는 ‘베어링스(Bearings)’, ‘호라이즌스(Horizons)’, ‘아틀라스 오브 트랜스포메이션(Atlas of Transformation)’이라는 세 개의 ‘무브먼트’로 구성됩니다. 갈리아노가 시대와 장소, 역사와 예술, 기억과 소재 사이를 이동하며 하나의 컬렉션을 완성해 온 방식을 전시의 구조로 옮겨온 셈이죠. 첫 번째 장인 ‘베어링스’는 갈리아노의 경력과 당대의 역사·문화적 사건을 연결합니다. 두 번째 ‘호라이즌스’에서는 역사, 지리, 미술, 문학, 퍼포먼스처럼 그의 컬렉션에 반복해서 등장해온 영감의 좌표를 따라가죠. 마지막 ‘아틀라스 오브 트랜스포메이션’은 이미지가 아이디어가 되고, 아이디어가 실제 옷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리서치 북과 스케치, 피팅 자료, 완성된 의상을 한 흐름 안에서 살펴볼 수 있어 갈리아노 특유의 과장된 실루엣이 어떤 조사와 기술을 거쳐 탄생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연구소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갈리아노 작품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전시에는 의상과 액세서리를 비롯해 드로잉, 토일, 리서치 북과 여러 아카이브 자료가 등장할 예정인데요. 출발점은 그를 패션계에 각인시킨 1984년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컬렉션입니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초기 컬렉션과 지방시, 크리스찬 디올,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남긴 작업을 지나 2024년 봄·여름 아티저널 컬렉션까지 이어집니다. 40여 년의 커리어가 한 전시장 안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죠.


갈리아노가 만든 옷, 그리고 그가 만든 세계
갈리아노의 컬렉션은 옷이 등장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시대와 장소를 설정하고, 인물의 삶을 상상한 뒤, 걸음걸이와 표정까지 부여합니다. 모델은 배우에 가깝고 런웨이는 통로보다 무대에 가깝죠. 역사적 복식과 런웨이의 분위기, 영화와 회화, 허구의 캐릭터가 한 장면에 부딪히면서 갈리아노만의 세계가 완성됩니다. 그중에서도 메종 마르지엘라 2024 봄·여름 아티저널은 그만의 세계관과 미학을 표현한 컬렉션으로 회자되죠. 파리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아래에서 열린 쇼는 밤의 파리를 떠도는 인물들을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냈습니다. 코르셋으로 강조한 허리, 비치는 튤과 레이스, 몸의 비율을 낯설게 바꾼 패딩, 재단과 가봉의 흔적을 남긴 테일러링이 등장했죠. 갈리아노가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보낸 10년은 그의 복귀 과정이자 또 하나의 창작기였습니다. 2014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한 그는 마틴 마르지엘라가 남긴 해체와 변형, 익명성의 문법에 자신이 지닌 쿠튀르 기술과 연극적인 스토리텔링을 결합했죠. 2024년 12월 하우스를 떠났으며, 같은 해 1월 공개한 아티저널 컬렉션은 그의 마지막 메종 마르지엘라 런웨이로 남았습니다.

외면하지 않는 갈리아노의 과거
이번 회고전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화려한 드레스와 극적인 런웨이가 아닌 그 바깥에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갈리아노의 창작적 성취와 함께 2010년과 2011년에 벌어진 반유대주의적·인종차별적·반아시아적 언행을 직접 다루겠다고 밝혔는데요. 해당 사건으로 그는 크리스찬 디올과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에서 해임됐으며, 파리 법원에서 인종과 종교, 민족, 출신에 근거한 공개 모욕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전시는 이후 그가 약물 의존 치료를 받은 과정과 자신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사실도 함께 다룰 예정이죠. 메트는 이를 추락과 구원으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서사로 포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기억과 경험, 문화적 가치와 역사적 상황이 한 디자이너의 작업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 살펴보고, 미적 성취와 윤리적 책임, 제도적 인정이 교차하는 지점을 관람객에게 질문할 예정이죠.

회고전과 자라, 다시 움직이는 갈리아노
회고전 발표는 갈리아노가 다시 패션계 전면으로 향하는 시점과 맞물렸습니다. 그는 최근 자라와 2년간의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십을 체결했죠. 기존 자라 아카이브의 옷을 해체하고 변형해 새로운 시즌 컬렉션으로 ‘재저작하는(re-authoring)’ 프로젝트로, 첫 컬렉션은 2026년 9월 공개될 예정입니다. 한 차례의 캡슐 컬렉션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시즌에 걸쳐 전개된다는 점도 이례적인데요. 그의 옷을 다시 본다는 일은 이제 아름다움만 감상하는 경험으로 마무리되기 어렵습니다. 갈리아노가 패션에 남긴 강렬한 이미지와 기술적 혁신, 그가 저지른 행위와 이후의 책임을 같은 시선 안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죠. ‘존 갈리아노: 호라이즌스’는 한 천재 디자이너를 위한 화려한 헌사보다 복잡한 질문에 가까운 전시가 될 전망입니다. 패션사는 무엇을 기억하고, 미술관은 누구를 인정하며, 우리는 창작자와 작품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2027년 봄, 메트가 펼칠 갈리아노의 지평선 너머에는 꽤 불편하고도 중요한 대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