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르메스의 시계엔 다른 브랜드와 확실히 구별되는 감성과 취향이 스며 있다. 정통 워치메이킹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특유의 유희성과 미감을 더해 고유한 시계 언어를 정립해왔기 때문이다. 2026 워치스 앤 원더스(Watchesand Wonders Geneva 2026)에서 공개한 신제품 역시 이러한 흐름 위에 놓여 있다. 특히 이번에는 스켈레톤이라는 전통적 장르를 에르메스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며 브랜드의 세계관을 한층 넓혔다. 단순히 무브먼트의 구조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적 리듬과 그래픽적 조형미를 결합해 하나의 시각적 풍경으로 완성한 것이다. 기계적 복잡성을 과시하기보다 스켈레톤을 어떤 감각과 방식으로 경험하게 할지에 집중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에르메스 H08 스켈레톤(Hermès H08 Squelette)’은 이러한 방향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모델이다. 2021년 첫선을 보인 H08 컬렉션은 원형과 사각형을 절묘하게 결합한 쿠션형 케이스, 독창적인 아라비아숫자 인덱스, 도회적인 분위기를 통해 에르메스 워치메이킹의 현대성을 상징하는 라인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티타늄 모델과 크로노그래프 등 다양한 변주를 이어왔는데, 이번 스켈레톤 버전은 그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형태에 가깝다. 새로운 H08 스켈레톤은 다이얼을 과감히 덜어내고 오픈워크 무브먼트를 전면에 드러낸다. 블랙 PVD 가공한 티타늄 플레이트와 일부 브리지만 남긴 매뉴팩처 칼리버 H1978S는 복잡한 기계 구조를 드러내면서도 시각적 균형을 유지한다. 특히 여러 겹으로 쌓인 브리지와 기어,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직선적 프레임은 현대건축의 골조를 연상시키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일반적인 스켈레톤 워치가 복잡한 구조 자체를 강조한다면, 에르메스는 이를 보다 절제된 조형 감각으로 재해석한 셈이다. 새틴 브러싱 마감한 39mm 티타늄 케이스는 가볍고 견고한 존재감을 유지하며 오픈워크 무브먼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슈퍼 루미노바 가공한 아플리케 인덱스와 핸즈는 안정적인 가독성을 제공하고, 특히 블루 슈퍼 루미노바 버전은 시계의 그래픽적 개성을 더욱 강조한다. 블루 잔지바르, 블루 어비스, 블랙, 듄, 베르 무아양 등 다양한 컬러의 러버 스트랩 역시 H08 특유의 현대적 분위기를 완성하는 요소다.

스켈레톤에 대한 에르메스의 해석은 ‘아쏘 사마르칸드(Arceau Samarcande)’에서 보다 시적이고 극적인 방향으로 확장된다. 1978년 앙리 도리니(Henri d’Origny)가 디자인한 아쏘 컬렉션은 원형 케이스와 승마용 등자에서 영감 받은 비대칭 러그를 특징으로 하는 라인. 아쏘 사마르칸드는 여기에 메종의 근원적 상징인 말 모티프를 환상적인 방식으로 녹여낸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생루이 공방 장인들이 제작한 크리스털 다이얼이다. 말 머리 형상의 정교한 오픈워크 구조 사이로 무브먼트가 은은하게 드러나며, 장식과 메커니즘이 하나의 장면처럼 겹쳐진다. 여기에 새로운 오토매틱 스켈레톤 칼리버 H1927과 미니트 리피터 컴플리케이션을 결합해 시각적 경험을 청각적 차원으로까지 확장했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백케이스 너머로 보이는 브리지와 미니트 리피터 해머, 그리고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뒥 아뜰레(DucAttelé) 모티프의 마이크로 로터 역시 눈여겨볼 부분이다. 블루 크리스털 다이얼 버전은 38mm 화이트 골드 케이스와 조화를 이루며 깊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빚어내고, 화이트 크리스털 다이얼 버전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화이트 골드 또는 로즈 골드 케이스와 만나 보다 화려하고 우아한 인상을 완성한다.

‘슬림 데르메스 스켈레톤 룬(Slim d’Hermès Squelette Lune)’ 역시 또 다른 방식으로 스켈레톤을 해석한다. 아쏘 사마르칸드가 환상적 서사와 장인 공예의 극적 아름다움을 조명했다면, 이 모델은 보다 절제되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그려낸다. 여기에 탑재한 초박형 매뉴팩처 칼리버 H1953은 마이크로 로터 구조를 통해 얇은 두께와 입체적 구조를 동시에 구현한다. 6시 방향의 더블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는 이 시계의 핵심 디테일이다.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바라본 달의 움직임을 동시에 보여주며, 단순한 기능을 넘어 시간의 흐름에 서정적 분위기를 더한다. 오픈워크 구조와 깊이감 있는 문 페이즈 디스크가 겹쳐지면서 다이얼 위에 작은 우주가 연상되는 풍경이 펼쳐진다. 베르 도(Vert d’Eau) 버전은 투명한 공기와 빛을 떠올리게 하는 색감으로 특유의 가벼운 인상을 강조하고, 블루 버전은 보다 깊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결국 이번 컬렉션을 관통하는 핵심은 스켈레톤을 활용하는 에르메스의 해석에 있다. H08 스켈레톤이 건축적 구조와 그래픽적 긴장감으로 현대성을 드러낸다면 아쏘 사마르칸드는 장인 공예와 시적 상상력을 통해 서정적 세계를 펼치고, 슬림 데르메스 스켈레톤 룬은 빛과 여백, 달의 움직임을 통해 보다 절제되고 고요한 방식으로 시간을 표현한다. 결국 이번 신제품들은 에르메스가 워치메이킹에서도 자신들만의 미학과 태도를 얼마나 일관되게 구축해왔는지를 다시 한번 선명하게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