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21-이남자의심스럽다
여자들의 육감은 네티즌 수사대의 정보력보다도 정확하고, 점성술사의 예지력보다도 본능적으로 숨겨진 사실을 정확하게 포착할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내 남자의 외도와 관련한 것이라면, 그 레이더는 훨씬 철저하게 작동한다. 문득 남자친구의 행동이 눈에 보일 듯 말 듯 일어난 손거스러미처럼 가슬가슬하게 마음에 걸릴 때가 있다. 그냥 두자니 따끔따끔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콕 집어내자니 형체가 없는 무언가가 그의 말이나 행동에서 느껴지는 거다.

2년 전 L의 경우가 그랬다. 어느 날 만난 남자친구는 여느 때와 똑같았다. 못 보던 넥타이를 매고 있는 것을 빼고는 말이다.그다지 눈썰미가 없는 L이 보기에도 그 타이는 꽤 고급스러워 보였다. 물론 본인이 샀을 수도 있지만 L이 아는 남자친구는 패션은 쥐뿔도 모르는, 아침에 일어나 손에 제일 먼저 집히는 옷을 입고 출근하는 남자였다.

L은 급하게 결혼식에 가느라 근처 백화점에서 아무거나 샀다는 그의 말을 믿었다. 며칠 후 친구와 백화점에 갔다가 남성복 코너에서 49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이 붙은, 그것과 똑같은 명품 브랜드의 타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역시 다른 여자에게 선물을 받은 것이었다. 내 남자가 못 보던 걸 하고 나타났다면 그에게 새로운 스타일리스트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열변을 토하고 다녔다.

‘바람 든 상대방’의 돌출 행동은 특히 휴대폰 사용법에서 두드러진다. 가장 많이 레이더망에 걸리는 이상 징후는 언제는 귀찮아서 싫다더니 어느 날부턴가 휴대폰에 잠금 패턴이 걸려 있는 걸 발견할 때다. 그렇다고 패턴을 가르쳐달라고 요구하기도 뭣한데, 슬쩍 물어봤더니 우린 사랑하는 사이지만 각자의 영역은 터치하지 말고 남겨두자고 정색을 하고 나서면 사실 여부를 떠나서 갈 곳 없는 마음은 상상의 세계로 승천하는 거다.

친구 K는 2년간 만나던 남자친구가 어느 순간부터 화면이 안 보이게 휴대폰을 엎어두고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걸 깨달았다. 주말 데이트가 있던 어느 날, 그가 식당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 슬쩍 휴대폰을 들여다본 K는 웬 외간 여자에게 하트를 붙여 날린 남자친구의 메시지에 경악했다.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진 J는 블루투스 때문에 이별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차에 탔는데 평소처럼 시동을 걸면 자동으로 휴대폰에 연결되어야 할 블루투스가 웬일인지 작동하지 않았고, 그의 것도 J의 것도 아닌 제3자의 정체 모를 휴대폰 일련번호가 연결 리스트 맨 위에 떴다. J의 남자친구는 결국 드라이브할 때 꼭 음악을 트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 완전범죄에 실패했다.

진짜 본능적인 직감을 발휘한 건 1년 동안 알콩달콩 연애를 하던 H였다. 그녀는 어느 날 남자친구의 휴대폰 통화 목록에 누군가 ‘웬수’라고 된 것을 발견했다. 정말로 막역한 불알친구거나 친형제, 친남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H는 다른 비슷한 험한 단어도 많건만 웬수라는 단어의 어감이 주는 아주 미묘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후에 그 웬수는 그 남자의 부인으로 밝혀졌다.

문득 친구 M이 새로 사귄 남자친구가 떠오른다. 그가 주말에 유난히 연락이 뜸하다는 것이다. M과 남자친구는 각각 경기도 양 끝에 살고 있어 거의 주중에만 데이트를 했다. 하지만 M은 매번 주말이면 낮 3시에 문자를 보내도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답을 하는 이 남자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정말 유부남일까? 아니면 괜히 항간에 도는 잡설에 휘둘려 애먼 사람을 나쁜 놈으로 몰아가는 걸까. 실체를 알 길이 없어 M은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