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ple Toasting in Landfill

도저히 끌리지 않는 어깨

3주 전, 친구에게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다정한 말투, 성실함이 느껴지는 일상 이야기, 건축가라는 직업까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도 내가 괜찮았는지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애프터 신청을 했다. 이후 열흘에 걸쳐 네 번을 만나 산책도 하고, 삼겹살도 먹었다. 밤늦도록 맥주를 마신 날에는 그린라이트가 짠하고 켜졌다. 그런데 다섯 번째로 만난 주말, 반짝이던 그린라이트가 단숨에 꺼졌다. 유난히 춥던 그날 저녁,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패딩 재킷을 벗어 젖힌 그를 마주한 순간부터 살금살금 돋아나던 ‘케미’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눈대중으로 재봐도 한쪽 어깨가 내 한 뼘을 넘지 않는 사이즈. 갑자기 따뜻한 실내에 들어가 뿌옇게 김이 서린 안경을 코에 걸친 모습까지 보고야 말았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거 나도 안다. 그래, 내가 나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좁디좁은 너비에 축 처져 울상 짓는 그의 어깨를 본 이상 더 이상 ‘케미’가 돋지 않는다. K, 회사원·30세·여

캐스팅당한 소개팅

모 홈쇼핑 회사에서 MD로 근무하는 남자였다. 어색한 공기만 흐르던 파스타 집에서의 식사까지는 꽤 괜찮았다. 저녁을 다 먹은 우리는 편한 분위기로 옮기기로 하고 작은 이자카야를 찾아갔다. 한 잔 두 잔 술을 들이켜던 그 남자는 그새 긴장이 풀렸는지 분위기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놨다. 친구가 겪은 웃긴 일화부터 우리 회사의 밉상 상사에 대한 얘기까지. 소주 한 병을 비웠을 때쯤 그가 말했다. “듣다 보니, 목소리도 좋으시고 말씀도 조리 있게 잘하시네요. 혹시 저희 방송 식품 프로그램에서 쇼핑 호스트 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두 번째 소주병을 반쯤 비우고 가게를 나설 때까지 그는 내가 쇼핑 호스트 기질을 타고났다는 말을 열 번 넘게 반복했다. 취해서 저러나 싶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 날 아침 도착한 문자의 내용이라니. ‘저희 프로그램 영상 링크 걸어드릴게요. 정말 쇼핑 호스트 한번 도전해보지 않으시겠어요?’ 소개팅 한 번 하고 TV에 출연할 뻔한 나는 적당히 둘러댄 후 그를 차단했다. Y, 디자이너·29세·여

주민센터에서 나오셨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개팅을 했다. 이 한 번의 소개팅을 경험하고 다시는 소개팅 시장에 나 자신을 매물로 내놓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몇 모금 홀짝이더니, 도착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나에 대한 꼼꼼한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댁이 신사동이라고요? 정확히 어느 단지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부모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나중에 결혼하게 된다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세요?” 이런 맥락의 질문을 한참 동안 던지던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다. “전 너무 낡은 아파트는 싫더라고요. 아이를 몇 명 낳고 싶은데, 역시 애들 살기에는 대치동이 좋은 것 같아요.” “해외 경험이 많은 사람이랑 더 잘 통하는 것 같아요. 제가 대학생 때 해외연수를 다녀왔거든요.” 그렇게 생애 첫 소개팅을 경험하고 낯선 만남에 대한 나의 로망은 산산조각 났다. 샅샅이 신상 조사를 당하느니 길에서 운명의 여자를 마주칠 희박한 확률에 기대보련다. B, 자동차 회사 연구원·31세·남

SNS와 사랑에 빠진 남자

주선자에게 연락처를 넘겨받고 자연스레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서로 사진을 확인하자며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나눴다. 수많은 셀카와 음식 사진, 가지런히 놓은 명품 쇼핑백 사진으로 도배된 그의 인스타그램을 찬찬히 살펴봤다. SNS 활동 열심히 하는 남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왔지만, 이 남자의 화려한 해시태그 목록을 보곤 적잖이 당황했다. ‘#선팔 #맞팔 #소통 #셀스타그램’으로 시작해 ‘#청담동 #핫플레이스 #일상 #쇼핑 #ootd #selfie’까지. 한글과 영어로 된 해시태그를 모두 섭렵해 한 사진당 스무 개가 넘게 나열해낸 그의 노력이 가상했다. 며칠 뒤, 한 카페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확 끌리는 느낌도, 싫은 느낌도 없이 그냥 그랬다. 그와 헤어져 집에 가는 길에 혹시나 싶어 그의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와 먹은 케이크 사진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케이크 #디저트 #일상 #데이트 #먹스타그램 #달콤한시간’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저기요, 우리 데이트한 거 아니거든요? 다음 소개팅할 땐 상대방 SNS부터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M, 학원 강사·27세·여

수십 번의 소개팅 이후 남겨진 것

솔로로 지낸 지 어언 4년째다.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소개팅을 했다. 몇 달간은 주말마다 소개팅에 나간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젠 나의 화려한 소개팅 라이프를 청산하려 한다. 허무한 전적이 쌓여가고, 답 없는 카톡창을 마주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난생처음 보는 여자에게 간이며 쓸개며 빼줄 것처럼 굴고, 밥값 내고, 공허한 마음만 얻은채 집으로 향하는 내 발길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언제부턴가는 처음 만난 이성에게 확 끌리는 일도 줄었다. 매번 똑같은 질문, 별다를 것 없는 대답, 어색한 웃음, 그 와중에 진행되는 은근한 신상 조사, 이 모든게 지겹다. 남자가 되어 자존감만 낮아졌다. 하늘이 예쁜 인연 점지해줄 때까지 그냥 외롭게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S, 변호사·33세·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