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를 즐기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매다. 그 첫 주자는 개막작 <본 투 비 블루>. 재즈 뮤지션이자 트럼펫 연주자인 쳇 베이커를 다룬 영화는 그의 일생 중 약물과 술에 찌들어 보냈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뮤지션이라기보다 방탕한 약쟁이였던 1960년대의 그는 의문의 사람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이가 망가져 트럼펫을 제대로 연주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 고통스러운 나날의 한가운데에서 한 흑인 여성을 만나 사랑을 하고 다시 무대에 올라 인생을 읊조리듯 고개 숙여 트럼펫을 연주하는 그의 무대는 쳇 베이커 인생의 전부이기도 하다. 배경에 깔리는 쳇 베이커의 음악과 함께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힘은 쳇 베이커를 연기한 에단 호크다.

폐막작도 챙겨 보고 싶다. 올해 전주 국제영화제의 폐막작은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이다.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류승완 감독이 ‘가난하던’ 시절, 다른 감독이 찍고 남은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다. 자본은 충분하지 않아도 영화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던 류승완 감독의 어쩌면 가장 순수한 작품 중 한 편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는 이 개막작과 폐막작을 포함해 총 2백11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그중 특히 궁금한 영화를 한 편 꼽으라면 <우아한 나체들>이다. 아르헨티나의 폐쇄적인 부촌에서 일하는 한 가정부가 우연히 발견한 비밀스러운 나체주의자 클럽에 대한 이야기. 나체촌의 기이한 풍경이 영화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 <줌>은 기발해 보인다. 만화가는 액션영화계를 떠나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감독을, 감독은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소설가를, 소설가는 섹스 인형 공장에서 자신의 판타지를 실험하는 만화가를 주인공으로 삼아 각자의 작품을 만드는데, 이 세 개의 작품이 하나의 영화로 이어진다. 하나의 영화에 필름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섞여 있는 독특한 방식이다. 밤새 영화를 볼 수 있는 ‘미드나잇 인 시네마’에도 도전할 참이다. ‘미드나잇 인 시네마’에서 상영되는 독일 영화 <와일드>는 우연히 공원에서 마주친 늑대에 매료된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늑대에 집착한 나머지 여자는 늑대를 생포해 자신의 아파트에 가두고 늑대와 교감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동물과 인간의 우정을 다룬 동화 같은 스토리는 아니다. 위선과 오만으로 가득한 사회 대신 본능으로 살아가는 야생에 끌리는 인간에 대한 영화다. <식스티 식스>도 궁금한 작품이다. 루이스 클라 감독의 <식스티 식스>는 1960~70년대의 팝 음악과 빈티지 코믹 북의 이미지로 완성한 애니메이션. 콜라주 작업을 통해 독특한 영화를 선보여온 루이스 클라 감독이 12년간 작업해온 콜라주를 집대성한 영화이기도 하다. 에티오피아 영화 <사랑의 가치>도 있다. 한 젊은 택시 기사가 매춘부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에게 그 사랑의 대가가 너무나 크다. 에티오피아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제목이 ‘웃긴’ <스타박’스 다방>도 보고 싶다. 내용은 이렇다. 커피에 마음을 빼앗긴 사법고시생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엄마의 감시를 피해 도망치듯 삼척 ‘별다방’을 찾아간다. <엄마는 창녀다><나는 쓰레기다> 등을 연출한 이상우 감독의 작품답지 않게 말랑하고 따뜻한 영화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지난해보다 상영작도 11편이 늘었고 상영관도 많아졌다. 다양한 독립영화를 위한 영화제로 시작된 전주국제영화제 측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폐막작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류승완 감독이 17년 동안 독립영화 감독에서 한국 대표 감독으로 성장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금의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도시는 사람을 만드는 그릇입니다. 도시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성향도 달라집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도시란 그릇을 만들기 위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영화제로 만들겠습니다.”

봄날의 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를 기다리는 지금처럼 가을의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좋은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