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화가 좋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답이 곧바로 나오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취향, 그게 뭐지? 타인과 다른 나의 취향은 뭐가 있을까? 현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 목록을 참고해 책을 사고, 블록버스터 흥행 순위를 참고해 영화를 보는 정도다. ‘작은 영화’에 대한 애호를 고백하는, 영화와 인문을 다룬 책 <작은 영화가 좋다>는 그런 면에서 취향의 나침반과도 같다. 이 안에서 길을 잃는다 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책 속 어딘가에서 당신의 영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그 취향의 인장은 이른바 ‘천만 영화’가 하지 못한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 줄 것이다.

일단 ‘작은 영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엄밀히 말해 영화에 크고 작음은 없다. 영화의 상영 시간에 따른 단편과 장편이 있긴 하지만. ‘작다’라는 개념은 그야말로 영화가 유통되는, 즉 상영관에서 관객을 만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상업적인 개념이다. ‘다양성 영화’라고도 불리는 이 ‘작은 영화’의 범주에는 대체로 저예산으로 제작된 독립영화나 큰 배급망을 통해 많은 상영관에 걸리지 못하는 영화가 들어간다.

여기서 가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작은 영화가 좋다>에 등장하는 영화 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논란이 됐다. 해외의 영화 정보 포털사이트 imdb.com에 따르면 이 영화의 예산은 한화 3백87억원 정도다. 한국에서는 다양성 영화로 개봉해 77만 명의 관객이 들었는데, 웨스 앤더슨 감독 연출에 레이프 파인스, 빌 머레이 등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이 영화가 과연 ‘다양성 영화’로 분류되는 것이 맞느냐가 논란의 주제였다. 한편 이 책에서는 정우성 주연의 <마담 뺑덕>도 언급하는데, <마담 뺑덕>은 상영 당시 다양성 영화로 홍보한 작품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책에서 언급된 벤 애플렉 주연의 <나를 찾아줘>는 미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영화다.

결론적으로 이 책 <작은 영화가 좋다>가 다루는 영화들은, 저자인 영화평론가 오동진이라는 필터를 통해 걸러진,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흥행 순위 1위에 오르고 1천만 명이 본 영화는 아니지만 알고 보면 재미있고 생각할 거리가 많으며, 어쩌면 당신의 ‘인생 영화’로 남을지 모르는 영화들이 이 책의 컬렉션이다.

 

제로 다크 서티
<제로 다크 서티>

<작은 영화가 좋다>는 크게 일곱 대목으로 영화를 분류했다. ‘권력과 언론, 그 광기의 폭력’ ‘자본주의 해설서’ ‘사랑의 사회적 실천’ ‘인간의 존엄성’ ‘당신의 본능’ ‘젊어서도 사랑’ ‘늙어서도 사랑’이 그것이다. 사회와 시스템이라는 커다란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개인의 나이 듦과 사랑이라는 이슈로 옮겨가는 구성인 셈이다.

미국의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을 다룬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제로 다크 서티>에 대해서 저자는 영화가 은근하게 묻고 있는 질문들을 꼬집는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은둔하고 있었던 곳은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였다. 이곳에 미국 해병이 침투했으니 엄연한 국가 침략이다. (중략) <제로 다크 서티>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척하면서 동시에 그렇다면 이의를 제기해야 옳은 것이 아니냐는 듯, 슬쩍 농을 치듯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는 (중략) 엄격하고 철저한,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9·11 테러 이후 알 카에다와 이슬람권 국가를 공격했던 미국 사회의 광기를 증명하고 있다. 흔히 괴물을 없애다 보면 자신도 괴물이 된다고 하지만, <제로 다크 서티>를 보면 과연 괴물이 있기나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고, 괴물은 오히려 미국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무엇보다 이렇다 할 평가나 해석 없이 사실 나열만 하고도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캐서린 비글로우야말로 진정한 괴물임을 증명한 영화가 됐다.’

오동진의 통찰력과 유머 감각이 살아 있는 장은 뭐니 뭐니 해도 맨 마지막 ‘늙어서도 사랑’에 실린 글들이다. 40대 다큐멘터리 감독인 주인공 조쉬가 젊고 재능 있는 제이미라는 남자와 친해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위아영>을 소개하며, 저자는 진실을 알고 삶의 진리를 알면 이상하게도 자꾸 말이 꼬이게 된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노아 바움백(감독) 이 친구도 나만큼이나 인생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것은 엄청난 친밀감으로 다가온다. 그런 것이다. 알고 있는 인생을 나누며 사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고 당신도 모르는, 모두 모르는 인생을 나누며 사는게 바로 더불어 사는 삶인 것이다. 그 가운데 깨달음이 있다.’

 

유스
<유스>

이 책이 지닌 미덕 중 하나는 최근에 개봉한 작품까지 다룬다는 점인데, <유스>가 그중 하나다. 나이 든 작곡가가 고급 휴양지에서 겪는 일을 그린 이 영화에 대해 오동진은 이렇게 썼다.

‘<유스>는 젊은 시절을 이미 한참이나 지난 80대 노년부터 이제 막 젊음을 시작하는 20대 청춘까지 모든 세대가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곰곰이 되새기도록 하는 작품이다. 그러면 되지않겠는가. 영화가 대체 그 이상 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마지막으로, 이 책을 좋아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대목을 하나 귀띔하겠다. 바로 ‘머리말’이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로맨틱한 장면처럼 첫 키스를 한 뒤 여자의 머리를 마구 만졌지만 결국 더 이상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기억이라거나 부산국제영화제 초창기 어느 술자리에서 ‘쟤 젊었을 때 정영일이야’라는 말을 들으며 지금은 고인이 된 영화평론가 정영일에 비교되었다는 사실에 못내 좋아했던 추억담에서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엿볼 수 있다. 이 머리말이 마음에 들었다면 당신은 이 책을 가까운 친구처럼 믿고 의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