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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런던 유학 시절, 한국인 유학생들이 모이는 일요 축구회에 나가곤했다. 중고 전기밥솥과 낙지 젓갈이 목적이었다. 한국인 룸메이트를 따라 나온 아르헨티나 사내 Y도 경기 후 불고기와 김밥을 먹기위해 시합에서 활약했다. 매력적인 외모는 아니었다. 짧고 굵직한 허벅지가 작은 키의 그를 더 납작하게 보이게 했고, 유난히 땀을 많이 흘렸다. 하지만 남미 특유의 열정은 그를 언제나 돋보이게 만들었다. 사람을 모으는 재주가 남달랐고, 누구와도 금세 친구가 되었으며, 늘 주변에는 여자들이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내게 공들였다. 마침내 내가 그의 집에 진입했을 때 그는 장미꽃 한 다발과 아르헨티나 고향집에서 직접 만든 로컬 와인을 건넸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는 말이 많았다. “너의 귀를 핥고 싶어.” “너의 젖꼭지가 너무 탐스러워.” “엉덩이가 너무 섹시해서 뒤에서 하고 싶어.” 모든 움직임을 입으로 설명해야 하는 사람처럼 귓가에 끊임없이 수다를 이어갔다. 그는 오랫동안 다양한 체위를 시도했는데 내 몸이 그의 축구공 같은 열정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가 혓바닥을 내 엉덩이에 들이대다가 뒷구멍(!)에 삽입을 시작하려는 순간, “그만! 이제 그만!”이라외치고 몸을 휙 돌렸다. 그날 밤 나는 그의 축구공이었다. 아르헨티나가 왜 축구를 잘하는지 그때 알았다.

스위스

사진작가 로버트 매플소프의 사진집에서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남자 성기를 처음 봤을 때 받은 느낌과는 또 달랐다. 스위스에는 포경수술 문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 눈앞에 그 거대한 물건이 주머니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덜렁거리고 있을 때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운동을 하다 만난 H의 물건은 발기하기 전에도 꽤 길었는데 오히려 굵기는 평범했다. 거대한 뱀이 내 넓적다리를 훑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스위스인치고는 체격이 작은 편이었지만 스태미나는 남달랐다. 그는 그의 길고 단단한 성기로 강약을 주어 피스톤 운동을 했는데 흥분한 내 눈빛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혼자 서두르지 않았다. 내 몸이 좋아하는 순간을 감지해 그 부분에 몰입했고,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줄 알았다. “좋아?” “괜찮아?” 하고 반복적으로 묻는 과도한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그의 긴 성기가 내 질 벽 끝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절정에 이르러 사지를 나뭇가지처럼 쭉 뻗자 그는 강하게 돌진해 나와 리듬을 맞췄다. 그리고 끝까지 내 눈을 바라보며 야생마에 올라탄 듯 질주하다가 내 이름을 수차례 외쳤다. 나도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화답했다. 주고받으며 함께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완벽한 화합의 섹스. 그럴 수 있었던 건 우리 사이에 긴밀한 사랑이 존재했기 때문이리라. 완벽한 체위, 생애 최고의 섹스, 황홀한 오르가슴을 향한 질문의 대답은 국적이 아닌 서로를 향한 간절한 마음에 있음을 그제야 알았다. 언제나 마무리는 지긋한 포옹과 달콤한 사랑 고백이고.

일본

일본 브랜드 M사의 영국 지사에 근무하는 K는 눈썹은 지나치게 가늘고 입술은 볼록했으며, 가운데 가르마는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우린 모두 웨일스의 단기 어학연수생이자 백수였는데, 오로지 그만 어엿한 직장이 있었다. 소속이 주는 안정감 때문일까, 그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다. 그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은 날, 우린 간단히 식사를 마친 후 2인용 소파에 함께 기대었다. 나름 로맨틱한 밤이라고 여겼다. 그의 몸이 점점 소파 깊숙이 파고들기 전까지는. 그는 소파에 스멀스멀 드러누우며 내가 자신의 몸 위로 포개지길 유도했다. 키스만 주야장천 했을 때도 그는 바늘 같은 손으로 소파의 터진 옆구리만 잡았다. 그는 내 가슴도 빨지 않았다. 오로지 희고얇은 제 허벅지에 나를 억지로 앉힐 때 유일하게 안간힘을 썼다. 나는 그가 내 안으로 제대로 들어왔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흔들리는 내 가슴을 바라보던 처진 눈매와 기운 없는 동공만 생각난다. 이후 난 M사와 관련한 제품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Q항공사에서 기장으로 근무하는 S를 튜빙 체험을 하러 가는 라오스 방비엥 트럭에서 처음 만났다. 막 파일럿이 된 그는 젊고, 손과 발이 무척 거대했으며 유머 감각도 뛰어났다. 트럭에 오른 여자들 대부분이 그에게 사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지만 승리자는 나였다. 람보르기니와 다양한 나라에서 찍은 셀피를 자랑하는 허세가 있긴 했지만 웃을 때 생기는 눈가 주름이 귀엽고 손이 따뜻했다. 우리는 펍에서 가볍게 맥주를 마시고 자연스럽게 그의 호텔로 이동했다. 성적 취향에는 국적도 성별도 없다지만 그는 정말 독특했다. ‘이미지 게임’을 좋아했다. “자, 상상해봐. 지금 주변엔 건장한 사내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우리는 그들 앞에서 섹스를 해야 해.” “그들이 너의 아름다운 모습에 사로잡혀 서서히 다가와. 그리고 나무 뒤에서 훔쳐보고 있어.” “너는 움직일 수가 없어.”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섹스해야해.” 이게 뭔말인가 싶다가도 그가 너무 열중해 연기하는 탓에 그 무대를 망치고 싶진 않았다. 그는 나를 그의 머릿 속 환상의 세계로 끌어들여 희로애락이 녹은 포르노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더니 혼자 그렇게 절정과 만났다. 아, 그리고 그는 손과 발만 큰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