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의 바구니

고요나, 박소연, 안선근, 전진우

차분하고 고요하게 대화를 이어가다가도 명랑한 기운이 툭툭 고개를 드는 4명의 친구를 만났다. 에디터였던 목수 전진우와 스튜디오 ‘소언’을 운영하는 디자이너 박소연, 사진가 안선근, 요리사 고요나는 한 잡지사에서 만나 함께 일하다 친구가 됐다. “지금은 독립해 각자의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든 함께 뭐라도 하겠지 싶었죠. 요즘 라탄이 유행이고, 워크숍이 인기라는 걸 계산하기보다 그저 넷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중 떠오른 공통분모가 바구니와 요리였어요.”(고요나) 수업은 간단하다. 3시간 동안 라탄 바구니 하나를 완성하고, 채소 요리를 나눠 먹는다. 7, 8월에 진행한 클래스에서는 가지, 애호박, 토마토 같은 여름 채소로 식탁을 꾸렸다.

시작은 전진우와 안선근이 이수역 근처의 한 공방에 찾아가 바구니 짜는 법을 배우고 돌아온 일이었다. “취미로 배우러 갔다가 바구니에 미쳐서(웃음) 밖에도 안 나가고 하루 종일 바구니만 짰어요. 그 모습을 요나가 사진 찍어 SNS에 올렸는데 바구니 제작 의뢰와 클래스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우리가 배운 걸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바구니 만들기만으로는 클래스를 열기에 부족하다 싶어 요리를 더했죠.”(안선근) “우리 수업으로 라탄의 장인이 된다면 좋겠지만(웃음) 그보다는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한여름 열기 속에서 바구니를 짜고 그 연장선으로 여름 채소들로 요리한 음식을 나눠 먹으면 기분 좋잖아요. 바구니 하나 뚝딱 만들고 헤어지면 왠지 아쉬우니까.”(고요나) 바구니도 바구니지만 클래스를 마치고 돌아가는 이들이 한목소리로 남기는 소감은 ‘맛있다’다. “바구니가 엉성하게 만들어져서 울상이던 분도 요나의 요리를 먹고 나서는 웃으면서 돌아가더라고요.”(박소연) “‘떠날 때는 기분 좋게’ 그게 바로 우리가 설계한 큰 그림이죠.(웃음)”(전진우)

낯선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 홈 클래스 운영의 가장 큰 어려움이 아닐까 싶었지만 정작 이들의 답은 반대다. “수업을 위해 스튜디오를 빌리는 건 좀 호들갑스럽달까요. 이 집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고, 우리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모여 시간을 편하게 나누는 것이 이 수업의 목적이니만큼 수업 공간은 집이 좋은 것 같아요.” 사진가 안선근이 말하는 사이에 그들의 편안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다시 둘러봤다. 클래스로 수익이 생기면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사자고 했지만 막상 시간이 맞지 않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네 친구가 오는 가을에는 제주도에 갔으면 좋겠다.

 

 

마크라메 매듭의 세계

유정은

“제가 뜨개질도 잘 못하거든요.(웃음) 근데 마크라메는 참 쉬워요. 실과 손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패션 소품도 가능하지만 쿠션 커버, 러너, 화분 걸이 등 리빙 소품을 만들 수도 있고, 파티나 웨딩의 배경 소품으로 만들어 디스플레이하는 등 활용할 수 있는 폭이 굉장히 넓어요.” 실을 여러 방식으로 서로 묶어 완성하는 수공예 마크라메가 최근 1년 사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타고 인기다. 패션 브랜드에서 VMD로 일하던 유정은이 마크라메를 처음 만난 건 4년 전이다. “2012년 파리 메종 오브제에서 처음 마크라메를 알게 됐어요.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이 막 시작되던 때라 당시만 해도 뭔지도 모르고 그저 예뻐서 유심히 봤죠.” 비교적 창의적인 직업이 었지만 모든 직장생활자가 그러하듯 그녀 역시 ‘나만의 것’에 갈증을 느꼈다. 용기를 낸 건 패션업계에서 느끼는 감정적인 피로 때문이었다. “옷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매 시즌 신상품에 치이고, 한 시즌이 끝나면 산더미같이 남은 옷을 정리하고, 다시 신상품으로 교체하는 패션계의 빠른 속도에 어느 순간 지치더라고요. 그러던 중 마크라메를 시작했어요. 마음이 복잡할 때 마크라메만 한 치료법이 없더라고요. 병원에 다녀온 것처 럼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녀는 집에서 진행하는 수업이니 만큼 자유롭고 편안한 방식을 선호한다. “처음 짜다 보면 중간중간 구멍이 생기기도 하는데 저는 수강생들에게 이걸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해요. 커리큘럼에 딱 떨어지는 천편일률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건 지양하고 있어요. 소규모 홈 클래스 성격에 맞게 수강생 각자의 취향과 성향에 관해 서로 깊게 대화하고 그에 맞는 작업물을 완성하려고 해요.” 그녀 특유의 다정하고 편안한 작업 방식이 알려지면서 호텔을 예약해 1박 2일 일정으로 제주도에서 수업을 들으러 오는 수강생도 있다. “작가로서 개인 작업만 할 때는 일정 관리가 쉽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월급쟁이로 길들어 산 시간이 있다 보니 스스로 뭘 찾아서 한다는 게 익숙지 않더라고요. 아마 혼자서 작업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다음 클래스에 대한 기대감으로 열심히 하는 분들 덕분에 저 역시 더 준비하고 실력도 함께 키운 거죠. 수강생들의 공이 커요.” @noonmacrame

 

 

소셜 와인 클럽

이영지

매거진과 신문사에서 와인 전문 기자로 일했던 이영지의 집을 두고 그녀의 친구들은 ‘금호동 미슐랭’이라 불렀다.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매주 르 코르동 블루에서 배운 요리들을 호기롭게 차려내던 그녀는 1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이 사랑하는 와인과 함께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즐겁고 재미있는 일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집에 있는 거고(웃음) 가장 잘 아는 것은 와인이고요.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함께 먹고 마시는 건 늘 해오던 일이었으니 자연스럽게 와인 클래스가 꾸려진 거죠.” 블로그(yannc.blog.me)를 통해 수업 신청을 받는 그녀의 수업은 매달 공지와 동시에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다.

음식에만 제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와인에도 저마다 좋은 계절이 있다고 믿는 그녀는 지난 8월 클래스 주제로 화이트 와인과 로제 와인을 선택했다. 화이트 와인 수업에서는 프랑스 알자스의 게부르츠트라미너와 독일의 리슬링, 오스트리아의 그뤼너 펠트리너를 소개하고, 샐러드와 라비올리를 매치하는가 하면 로제 와인의 경우 루아르 지역의 로제 당주와 남프랑스의 방돌 로제, 론 지역의 로제와 함께 샐러드, 새우 관자 요리를 선보였다. 그녀의 성정을 닮은 정갈하고 믿음직스러운 구성이 매달 새롭게 업데이트되고 있다. “수업마다 와인과 함께하기 좋은 샐러드, 메인 요리를 준비합니다. 그날의 와인과 요리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을 간략하게 한 뒤 테이스팅하며 각자의 인상과 느낌을 자유롭게 나누죠. 요리가 완성되면 본격적으로 마십니다.(웃음) 와인 수업이라고 해서 와인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맛있는 식당, 숨은 휴가지 등 대화 주제는 무궁무진해요. 서로의 호흡이 유독 좋았던 수업은 수강생끼리 따로 2차를 가기도 하고요.” 와인 아카데미처럼 전문 교육기관이 있지만 많은 이들이 그녀의 수업을 찾는 건 ‘소셜 와인 클럽’이라는 수업 이름대로 ‘소셜’의 성격이 강해서일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와인은 맛있고 즐거운 술인데 이걸 어느 기관에 등록해서 공부해야 하나 의문이 드는 분들이 이곳을 찾는 게 아닐까요?”

많은 이들을 대접하다 보면 소모될 일도 많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녀는 채우는 것이 많다고 답한다. “수업 초반에는 어렵고, 화려하게 수업을 꾸리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좋은 시간을 나누고 싶을 뿐이라는 걸 차차 깨달았죠. 불필요한 것들을 거두는 대신 와인과 요리의 밀도를 높여 이 작은 공동체를 제 식대로 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1년이 지나니 이제 안정권에 들어선 느낌이에요.” @wickedwifesee

 

꽃 한 다발 앙금 플라워 케이크

김초이

인스타그램에 #앙금플라워떡케이크라고 검색하면 풍성한 꽃다발 하나를 얹어둔 듯한 수십만 개의 화려한 케이크 이미지가 뜬다. 공예품 같은 섬세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이 케이크는 버터 크림으로 장식하는 서양의 베이킹 기법을 그대로 차용하지만 크림 대신 앙금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거창해 보이지만 막상 시작하면 비싼 재료나 도구가 필요하지 않아 원데이 클래스의 인기 강좌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섬세하게 해야 하는 작업이니만큼 그룹 수업보다는 일대일 수업을 선호하는데 그럴 때 찾는 곳이 김초이의 홈 클래스다. “설기 찌는 법부터 가르치고 있지만 백미는 역시 꽃 만드는 일이죠. 꽃잎의 모양을 결정하는 도구 ‘팁’을 사용해 힘 조절과 움직임을 바꾸며 꽃 형태를 빚어갑니다. 8주간의 정기 수업 과정을 모두 마치면 리시안서스와 장미, 작약 등 총 20가지의 꽃을 빚게 돼요.” 섬세하게 장식해야 하니 차분하고 침착한 사람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그녀는 “저 안 차분하거든요.(웃음) 처음에는 꽃이 내 마음처럼 안 짜지니까 굉장히 화가 나요. 미술 하는 분도 배우다가 포기하고 가곤 하는데 예상외로 잘하는 분들도 많아요. 완벽한 꽃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꽃을 만들게 돼 있어요”라고 답한다.

그녀는 내내 다정하고 부드러운 톤으로 답을 이어가다가도 재료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단호했다. 기본 베이스가 되는 설기 재료는 물론 설기 안에 넣는 잼까지 국산 재료로 그녀가 직접 만든다고. 앙금의 노란빛을 내기 위해서 전남 단호박 가루를 사용하는 등 천연 색소만을 사용한다. “오히려 수업하는 시간보다 수업 전 밑작업을 하는 시간이 더 걸려요. 계절에 맞춰 호박, 고구마, 옥수수 등 쪄두고 대추도 한 알 한 알 씨를 바르고, 삶고 으깨고.(웃음)” 마음에 드는 재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설기에 흑임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후가 변하면서 이제 한국에서 흑임자 재배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산도 있지만 고소함이 확실히 달라요. 건너 건너 직접 농사짓는 분을 찾아 흑임자를 따로 받아 쓰고 있어요. 홈 클래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것을 홈메이드로 만들고 있어요. 수업료가 높은 편인데, 수강생들이 수업을 한 번 받고 나면 비쌀 만하다고 해요.” 재료도 재료지만 그녀가 강조하는 건 ‘두 집 살림’이다. “집에서 수업을 한다고 해서 김치 올렸던 접시에 재료를 올리지 않아요. 두 집 살림하는 것처럼 식기와 도구를 완벽히 분리해서 수업하고 있어요. 홈 클래스 특유의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유지하면서 기존 베이킹 공방보다 청결하게 관리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petit.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