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보고 들었기 때문일까. 어느 순간부터 꿈의 목적지라기보다 언젠가 가야 할 여행지 리스트로 취급되던 바르셀로나에 다시금 순수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남미 여행 이후부터였다.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그리고 멕시코에서 목격한, 저마다의 방식으로 뿌리내린 스페인발 라틴 문화는 고상하고 찬란한 동시에 악랄하다 할 만큼 짙고 강력했다. 맥락이야 다르지만 수탈의 역사를 지닌 민족의 일원으로서 그 옛날 스페인 왕국이 남의 땅에서 이룩한 문화적 성취를 오롯이 즐기기에는 일말의 ‘배덕감’이 들면서도, 한편 당시로선 우주 행성이나 다름없었을 신대륙에까지 뻗친 영향력이 이 정도인데 본진은 또 얼마나 대단할지 궁금한 것이다. 거기에 유럽에서 만난 친구들의 열병에 가까운 바르셀로나 사랑이 결심을 부추겼다. 얼마나 멋있나 두고 보자, 짐짓 뻗대는 마음으로.

 

바르셀로나는 과연 가우디의, 가우디를 위한, 가우디에 의한 도시임이 분명했다. 가우디가 40년을 작업했고 그의 사후에도 90년 넘게 공사가 이어지고 있는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평생의 후원자 구엘 남작을 위한 고급 주택단지 ‘구엘 공원’ 등 그의 건축물은 바르셀로나 사방에 흩어져 있다. 하지만 가우디라는 거대한 존재감이 곧 바르셀로나를 정의한다는 감상은 전투적으로 그의 명소를 쫓아다니느라 동분서주하던 와중에 조금 바뀌었다. 도장 깨듯 여행을 이어가던 중 이 도시 안에서 무심히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주는 생경한 느낌 때문이다. 이들의 삶을 일부나마 엿보는 건 때로 웅장한 건축 명소를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래서 빼곡하게 명소를 표시해둔 지도 앱을 잠시 닫고 바르셀로나의 가장 오래된 동네인 고틱(Gòtic) 지구에 들어섰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지인 바르셀로나는 13~15세기 항구도시로 번영했지만, 마드리드로 그 힘이 이동하면서 19세기까지 암흑기를 보냈다. 그런 바르셀로나를 구한건 산업혁명 때 대박을 터뜨린 면직 공업이었다. 도시가 팽창하며 토목기사 일데폰스 세르다가 자로 잰 듯 네모반듯하게 정렬된 계획도시 설계안을 내놓았고 에익삼플레를 비롯한 신시가지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계획도시가 세워지는 중에도 구시가지의 중심인 고틱 지구는 철저히 당시 모습이 지켜진 덕분에 중세의 도로와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심지어 로마 시대의 건물도 종종 보이니 지구 자체가 하나의 유적지나 다름없다. 아무렇게나 뭉쳐놓은 한 다발의 털실처럼 어지러이 연결되어 있어 빤히 지도를 보고 있는데도 어느새 길을 잃는 미로 같은 곳이기에 목적지를 찾아간다는 게 의미가 없다. 성인 4명이 나란히 하기도 좁은 길의 끝에서 난데없이 나타나는 광장들은 관광객으로 붐비지만 여전히 지역 주민들의 삶과 함께한다. 지금도 일요일이면 동네 사람들은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 노바 광장에서 카탈루냐 전통 춤인 사르다나를 추고, 시청 앞 산트 하우메 광장에선 카탈루냐 독립을 위한 집회가 계속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이사벨라 여왕을 알현한 왕의 광장, 1930년 스페인 내전 당시 21명의 아이를 비롯한 42명이 목숨을 잃은 포격의 잔해가 남아 있는 산트 펠립 네리 광장과, 천주교 박해가 이루어지던 로마 시대인 303년에 13세의 나이로 순교한 성녀 에울랄리아가 고문을 당하던 당시 칼과 못이 든 통에 담겨 굴려졌다는 내리막길 등 역사 속의 골목에 늘어선 수백 년 된 건물들에는 지금도 주민들이 살고 있다.

 

골목 끝에서 람블라스 대로가 나오기에 건너편 골목으로 발길을 옮겼다. 고틱 지구와 함께 구시가지를 이루는 라발(Raval) 지구다. 한때 불법 이민자들이 몰려 사는 험한 동네였다던 이곳은 시의 주도로 컨템퍼러리 아트 뮤지엄과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이 생기면서 로컬 아티스트와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이 연 리빙 편집숍, 서점, 카페와 펍은 좁다란 골목의 1층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주말엔 골목으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따라가기만 해도 ‘힙’한 밤을 보낼 수 있다. 바로셀로나의 청춘들은 도시의 가장 유서 깊은 지역에서 분명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여전히 중세 분위기가 짙은 거리에는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카탈루냐 전통 레스토랑과 20대 청년이 운영하는 빈티지 LP숍이 혼재되어 있다. 고틱 지구 오른편의 또 다른 구시가지 보른(Born) 지구도 마찬가지다. 소규모 갤러리와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옷 가게가 늘어선 골목은 벽화와 그래피티가 뒤섞여 독특한 예술적 정취를 만든다.

구시가지에서 영업이 끝나고 내려진 셔터마저 알록달록한 페인팅을 더해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작은 가게들을 보면서 엉뚱하게 다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떠올랐다. 한 세기를 지나 다음 세대에 이르러서도 지어지고 있는 미완성의 건물. 새로 지어진 첨탑은 가우디 생전에 완성된 파사드와 닮아 있으면서도 저만의 모던함을 가지고 있다. 안주하지 않는 현재 진행형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나는 미지의 땅 남미로 향한 스페인의 패기가 여전함을 느꼈다. 방향을 잃은 이방인들을 이리저리 이끄는 비좁은 골목이 더 이상 낡게만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