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시오리 Ito Shiori

지난해 5월, 일본의 프리랜스 저널리스트인 이토 시오리는 자신이 2년 전 겪은 성폭행을 폭로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해자는 이토 시오리가 로이터 재팬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뉴욕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던 당시의 TBS 워싱턴 지국장. 사건을 신고한 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증거와 증언을 모으고 수사가 진행됐지만 돌아온 건 불기소처분이었다. 일본 언론은 여전히 성폭행에 대한 기사를 쓰길 원치 않았고 불기소처분을 받은 가해자는 스타 정치부 기자가 되었다. 법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편에 섰다. 이토 시오리는 자신의 목소리로 끔찍했던 그날의 사건을 언론 앞에서 밝혔다. 지금까지도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았고 기자회견 후 그녀의 피해 사실을 왜곡하고 공격하는 이들 때문에 이토 시오리는 영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싸움을 포기한 건 아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투쟁을 담은 책 <블랙박스>로 자신이 겪은 피해 사실과 이후 그 사건을 신고하며 일어난 일, 그러면서 느낀 성폭력 피해 신고와 수사 체계의 문제점, 자신의 사건을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차가운 반응을 냉정하게 담았다. 이 책은 얼마 전 한국에 서도 출판되었다.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참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저널리스트로서 진실을 좇아 전달하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로서 개인적으로 직접 조사하고 경찰의 수사에 의문을 갖고 질문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 상황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당한 사건을 직접 밝힌 것은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로서 내 경험을 말하는 것은 다소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미디어나 제3자가 취재하거나 성폭력 관련 법률과 사회 시스템에 대해 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 매체에서는 지금도 성폭력 사건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긴 싸움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기자회견 직후 많은 비방과 협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같은 피해자로서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받은 순간이었다. 피해자들이 말을 꺼내기조차 힘들어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자신의 상처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그런 계기가 되었다면 내가 해온 일이 의미 있다고 깊이 느꼈다.

<블랙박스>에서 언급한, NHK의 ‘성행위 동의가 있었다고 여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행동’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여성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후진적인 현실이 변할 수 있을까? 일본에서는 사람들의잘못된 선입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그런 인식은 매우 시대착오적이고 잘못된 일이다.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서는 ‘그건 이상한 일이다’라고 소리 내어 말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이 가진 또 하나의 문제는 피해자가 제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개인적인 일로 치부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지금 일본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늦었는지를 보여주며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며 ‘미투 운동이 활발한 한국에서 배울 게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역시 폭로만 거셀 뿐 가해자 처벌로 이어지지 않고 실체 없는 가십 기사만 난무한다. 가해자가 여전히 건재하며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이 상황에 지칠 것 같다. 법적 조치라는 점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강간 사건의 가해자가 기소되거나 유죄 판정을 받는 확률이 다른 범죄에 비해 낮은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은 이런 사건이 은폐되고 피해자는 침묵을 강요당하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거다. 이러한 사건이 드디어 가시화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법 개정이 필요한지 논할 수 있는 출발선에 서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1백10년 만에 마침내 강간죄가 개정되었다. 물론 개정이 앞으로 더 필요하며 3년 후에 재검토할 기회를 잡으려면 논의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한국의 활발한 움직임을 보면 매우 고무적이다. 우선 사실을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전진이 아닐까?

성폭력에 대한 인식 변화도 필요하지만 확실한 법적 제재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법률은 경찰, 검찰, 시민에게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은 법률상 ‘합의 없는 섹스가 강간은 아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건 서양의 사고방식과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스웨덴은 미투 운동으로 2017년 7월부터 성폭력 관련 법률이 개정되었다. 지금까지는 피해자가 ‘합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강간을 증명할 수 없었지만 법이 개정된 후에는 피의자가 강간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려면 성관계에 합의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부담이 훨씬 줄어든 것이다. 스웨덴의 스테판 뢰프벤 총리는 성폭력 피해자가 보다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했고, ‘사회는 당신의 편’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법률이 조금만 바뀌어도 사회를 향한 메시지는 크게 달라진다. 일본에서는 ‘성관계 합의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법률 용어로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합의가 가능한 연령이다. 일본의 학교에서는 성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법적으로 성행위 합의가 가능한 나이는 13세다. 다른 나라 법률과 비교해도 낮은 연령이다.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여성 인권 의식이 높은 스위스나 핀란드 등 유럽 국가의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프로세스나 법률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스웨덴에서 취재한 긴급 강간 센터는 병원 안에 있으며 24시간 열려 있다. 게다가 피해 검사 역시 사건 후 10일까지 확실하게 할 수 있고 검사 결과는 6개월간 보관된다. 피해자는 그 사이에 경찰 신고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스웨덴의 간부급 경찰 중 여성의 비율이 30퍼센트에 달한다. 이 점은 일본이 앞으로 꼭 지향해야 할 부분이다. 영국에서는 경찰에 성폭력을 신고할 경우, 피해자가 피해 경험에 대해 말하는 횟수를 3회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처음 신고했을 때 한 번, 그다음은 증언 전부를 촬영해 녹화하고 마지막으로 법정에서 증거하는 것이 전부다. 피해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정신적으로 힘든 피해자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최대한 숫자를 줄이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나는 수많은 조사원 앞에서 같은 이야기를 1년 이상 계속해야 했다. 또 인형을 이용해 사건을 재현한 일은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수사 방법을 바꾸는 일은 피해자의 인권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미투 운동의 중요한 점 중 하나는 여성들의 연대다. 하지만 그 연대가 남성 혐오로 이어져서도 안 되며 다른 생각을 지닌 여성들과 대립해서도 안 된다. 미투 운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태어날 때부터 강간범이자 괴물인 사람은 없다. 미투 운동은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리고 가해자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를 판단할 때는 사회적 배경, 가정환경, 교육 수준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피해자에게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범행을 저지르게 된 과정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지난해부터 나는 가해자도 취재하기 시작했다. 가해자야말로 미투 운동에 좋은 변화를 일으킬 열쇠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가해자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지난해 12월에 시작했는데 앞으로 장기전이 될 것 같다. 하나씩 진행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