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희 박서희화보 박서희페미니즘 페미니즘

박서희 모델 1996

듣고 싶지 않은 말 ‘예쁘다.’ 누구나 그렇듯 칭찬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나 역시 ‘예쁘다’를 칭찬으로 잘못 생각했다. ‘예쁘다’는 평가다. 우리는 칭찬을 위장해 타인을 쉽게 평가하고 평가받는다. 노력과 자질로 바꿀 수 없거나 선천적으로 가진 부분에 대한 칭찬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악의가 없든 순수한 의도든 좋은 마음이든 알겠고 감사하다. 그렇지만 단순히 외모가 예쁘다는 칭찬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 온전하게 ‘나’의 시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주체로서 결정하고 판단하며 사유하는 것.

여성스럽다 뿌리 깊은 성불평등 사회에서 성평등을 외치며 나아가는 여성들의 당당한 모습을 칭하는 말이라고 새롭게 정의하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올해 스물네 살이 됐다. 성인이 된 지난 4년을 돌아보면 새로운 인연을 만나 배우고 얻는 것들로 인해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내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군가 나를 예쁘지 않다고 생각할까 두려워 스스로 외모의 단점을 찾아내고 가리기에 바빴고, 밤늦게 혼자 집에 들어가는 길은 두려웠으며, 공중화장실에는 몰래카메라가 있지 않을까 불안했고, 술집에서 혼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으며, 자취방에서는 혼자 사는 여자임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어린 시절,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 13층의 집까지 걸어 올라 다녔으며 화장실 문을 꽉 닫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주택에 살 때 혼자 샤워를 하다가 화장실 창문으로 나를 훔쳐보던 남자와 눈이 마주친 다음부터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나를 보호하려 드는 어른들로부터 ‘너는 여자이고, 여자는 몸을 조심해야 한다. 남자는 여자의 몸을 보려하고, 궁금해한다, 위협할 수 있다. 그러니 여자인 네가 좀 더 조심했어야 한다’ 등으로 잘못 배웠다. 그래서 나는 당시 그 사건은 나를 훔쳐본 남자가 아닌 내가 여자여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잘못) 생각했다. 그때 내 생물학적 정체성이 여자임을 처음 인식했다.

일상 속 실천 탈코르셋. 남들은 관심도 없는 단점을 가리기 위해 거울 앞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나를 멋대로 평가하려는 남자들의 기준에 맞춰 나를 재단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내가 입은 코르셋은 오늘 태어난 여자아이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는 코르셋이라 생각한다. 오늘의 예쁠 나를 위해 모든 여성들이 꾸밈노동을 강요받길 원하지 않는다. 교복 재킷 안쪽에 틴트 주머니가 생기는 것을 우려하고, 7세용 화장품 장난감에 반대한다. 모델로서 일을 할 때는 코르셋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이 부분은 내가 풀어가야 할 아주 어려운 숙제다.

 

이창주 그래픽 디자이너 1992

#탈코르셋 우리가 벗지 않는 코르셋은 일상에서 전시되고, 다음 세대에 대물림된다. 우리가 시작해야 ‘여성이 꾸미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다음 세대를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우리 사회에서 20대 여성은 예뻐야 하고, 스물다섯 살이 넘으면 꺾였다고 표현하고, 연애는 꼭 해야 하고, 남자 잘 만나 결혼하는걸 인생의 지표쯤으로 여기며, 서른이 넘으면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군다. 그저 내가 살아갈 인생 중 ‘10년’일 뿐인데, 남인 나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다. 내 인생이 ‘완벽하게 짜인 여자의 인생’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것 같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어릴 적 나는 남자애들과 어울려 (사회적 통념으로) ‘남자애들처럼’ 뛰어놀며 자랐다. 어느 날 후미진 골목길에서 한 아저씨가 나를 콕 찍어 “혼자 와서 강아지와 놀고 가” 하며 불렀다. 무리의 틈에 숨듯이 끼어서 골목을 지나왔고,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저씨는 계속 나를 불렀다. 무리 중 내가 딱 하나 다른 건 성별이었다. 줄곧 ‘남자아이’처럼 지내던 내가 그 순간부터 ‘힘없는 여자아이’가 돼버렸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기가 세다, 드세다, 무섭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뚝심 있고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일상 속 실천 불편한 발언에 내 의견을 설명한다. 반사적으로 화내기보다 내 생각을 차근차근 이야기하려 노력한다.

나는 불편함에 침묵하지 않습니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여성 대상 약물 성범죄. 범죄로 이용되는 약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인 데다가 오래전부터 본 사람, 들은 사람, 당한 사람이 수없이 많음에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있고, 이에 따른 예방 노력이나 수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암묵적인 강간 문화가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최근 TV CF 속 여성을 전에 비해 능동적으로 그린다는 것을 느낄 때. 미디어가 그려내는 여성상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었음을 느낄 때.

가장 아름다운 나 내가 맡은 일을 잘해낼 때. 내가 가진 다른 요소가 아니라 순수하게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인정 받을 때.

나의 위대한 여성 캐나다 인상주의 화가 헬렌 맥니콜. 색감과 묘사 방식, 그림에서 풍기는 고요한 느낌을 좋아 한다.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시기에 주로 여성 노동자, 아이들을 그리며 여성들의 세계를 따뜻하게 표현해낸 화가이기도 하다. 당시 사회가 주목하지 않던 약자의 모습에 집중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시대가 그녀를 주목했다면 더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든다.

#가스라이팅 내가 중학생 때 ‘된장녀’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고, 이후 ‘OO녀’라는 말이 미디어에서 계속 들려왔다. 어릴 때부터 미디어의 주도하에 스스로 자기
검열에 빠져 살아온 것 같다.

 

슬릭 래퍼 1991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난도가 너무 높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연령으로, 다른 성별로 직접 살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20대 여성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무수히 많은 지표에서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절망적인 부분은, 미디어가 그려내는 20대 이후 여성의 삶이란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태어났던 그 순간. 물론 그때의 나는 의식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작명소에서 받아온 내 이름은 다음 아이를 남자아이로 태어나게 만들어준다는 이름이었다. 여성이라는 성별은 나의 존재 가치와 정체성, 자존감을 남동생의 절반만큼만 갖게 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여자세요, 남자세요?’라는 질문. 여성 혐오가 만든 프레임 때문에 그 틀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늘 받아야 하는 무례한 질문이다. 내가 여성이면 혹은 남성이면 뭐가 어떻다는 거지? 내 성별을 인지하고 나면 뭐가 달라지는 건지, 왜 궁금한지 이해할 수 없다.

일상 속 실천 언어 사용을 굉장히 조심하고 있다. 성평등뿐 아니라 모든 차별과 대상화는 언어 사용과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사를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말들이 어떤 맥락을 가지는지, 어떻게 읽히는지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페미니즘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과 친구 하지 않습니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성별, 성 지향성, 성 정체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어릴 때부터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지금은 위 세 가지 개념에 대한 정의조차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과거에 이 개념들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아 고통과 비극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최근에 읽었던 기사 중 ‘20대 여성 두 명 중 한 명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는 헤드라인. 멋진 변화라고 생각한다.

가장 아름다운 나 아름다운 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아름답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의 위대한 여성 지금 살아 있는 여성들 모두. 끝까지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노가은 카피라이터 페미니즘 맨스플레인 가스라이팅

노가은 카피라이터 1994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피곤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 매일 일어나고, 그 대상이 내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자유로운 사고를 가둔다. 수많은 잣대와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게 스스로를 지키는 일도 소홀해선 안 된다. 감옥에 갇혔으면서도 변변찮은 무기 없이 보초를 서고 있는 꼴이랄까.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초등학교 1학년 때, 난 노씨인데도 정원이 30명 정도 되는 반에서 25번이었다. 남자아이 먼저, 그다음 여자아이 순으로 번호가 배정됐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여성이어서 겪은 최초의 불평등이다.

나는 여자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여자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너무도 쉽게 여자를 미워하는 것 같다. 각종 미신과 단어들로 말이다. 이 사람이 남자였다면 욕먹을 일인가? 여자라서 더 나쁘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이기적이고, 제멋대로 굴고, 욕망하는 여자들을 좀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 나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생리를 ‘그날’이 아닌 생리라 말하는 광고가 만들어지고,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어느 정도 납득할 판결문이 나오고, 여자 아이돌이 탈코르셋의 내용을 담은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조금씩 바뀌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맨스플레인 #가스라이팅 “아갈머리를 확!”

 

이지원 IT 업계 매니저 1992

페미니즘? 남성 중심 사회를 청산하고 여성 중심 사회로 재편하고자 하는 여성 중심 사회 운동. 으레 페미니즘을 성평등 운동이라 정의하는데 사실은 그게 맞다. 하지만 나는 2분의 1을 원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원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여성 중심 사회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여성스럽다 관철하다(본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소신대로 끈기 있게 나아가다)라는 동사의 유의어였으면.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사람이기 전에 여성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여성’이다. 남성에게 성적으로 매력적이어야 하고 항상 웃어야 하며 소위 ‘빻은’ 말을 들어도 공격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말해 현명하다는 평을 들어야 하는, 임신이 가능한 상태인지 아닌지 측정당하는 젊고 싱싱한 여성. 고유의 개성을 지닌 개인으로 보지 않는다.

듣고 싶지 않은 말 ‘시집가야지’. 20대 후반이 되면서 결혼 얘기를 듣는데 정말 듣기 싫다. 결혼 생각도 없을뿐더러 나는 결혼 말고도 하고 싶은 일, 할 일이 많다.
결혼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내 인생을 커다란 허들이 가로막은 것 같다.

나는 지랖^^이 넓지 않습니다. 남의 인생에 심각하게 오지랖 넓게 참견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 있다. 이런 사람들은 꼭 타인의 결혼, 애인, 옷차림 등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다. 이들을 보며 확실히 다짐했다. 누군가의 삶에 참견하는 일은 전에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하지 않겠다고. 윤리적, 사회적,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동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 이상 남의 인생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매 순간. 하루하루 터져 나오는 이슈들이 이를 방증한다. 이전에는 몰랐던 것, 알아도 눈감았던 것, 차마 눈감지 못해 목소리를 내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젠더 이슈가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제 우리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소리 지른다.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 위에 발자국을 내는 기분이다.

나의 위대한 여성 딱 한 명은 아니고 불특정 다수. ‘메갈리아’ 등장 이전부터 비혼의 길을 걸은 분들. 결혼이 여성 삶의 디폴트 값이었던 때에 비혼을 생각하다니. 나처럼 사회체제에 의심 없이 순종하는 사람은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개인의 생각이 사회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크게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요즘 들어 더욱 존경스럽다. 혜안이 있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탈코르셋 밖에서 가끔 탈코르셋을 한 자매들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표현을 못했지만 이 지면을 통해 말하고 싶어요. 반가워요. 고마워요. 우리 서로에게 용기를 주도록 해요.

#백래시 나도 아직 힘겹게 싸우고 있다. 다른 것이 그러했듯 이것 또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떼어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