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패션에디터 이세희

이세희 패션 매거진 에디터 1990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가부장적 기성세대와 열린 생각을 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어떤 것에 얼만큼 의견을 밝혀야 일이 유연하게 흐를지 가늠하는 생각과 판단의 연속. (내가 남자라면 이런 걱정도 안 할 테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어릴 때 엄마가 나를 수영 학원을 보내려 했더니 아빠가 여자아이가 어깨 넓어지면 못쓴다고 해서 여자는 어깨가 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듣고 싶지 않은  계집애들이, 계집애같이.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왜 남녀 사이에 임금 격차가 있고, 왜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복직하기 힘든지, 왜 여자는 경력 단절을 겪어야 하는지 많이 생각했다. 이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운좋게도 여자가 90퍼센트 이상인 업계에서 일하며 성 역할에서 해방됐다. 유리 천장은 없고 여자라서 안되는 일도 없다. 맨스플레인도 당연히 없다. 일할 때 단 한 번도 성 역할에 구애받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느낀 것은 성 역할은 결국 주변 환경이 만든 것이고,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

나는 패션 기자로서 ‘여성스럽다’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 합니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패션과 뷰티에 관련한 일을 하다 보니 페미니즘과 탈코르셋의 영향과 결과에 관심이 간다. 색조 화장품의 판매량이 떨어지거나 성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옷차림이 유행하고, 패션 브랜드에서 남성과 여성 컬렉션을 통합하며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등장하고 보디 포지티브 운동이 벌어지는 등 변화를 코앞에서 지켜보니 흥미롭다.

나의 위대한 여성 이화여대 김혜숙 총장. 2017년 한일간지에 실린 김혜숙 총장의 인터뷰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여대의 최종 목표는 자기 소멸’이라는 말. “이화여대가 자기 목적을 달성한 순간엔 여자 대학이 있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 되는 거니까요. 그러니 여자들이 진짜 성과를 낼 때까지 몸을 태워서 달려가야 해요.” (기사 발췌)

#백래시 나의 선택과 자기표현은 쇼핑몰에서 쇼핑하는 권리에 그치지 않는다. 남이 허락해준 당당함에 만족하지 말 것.

 

홍정은 방송 PD 1991

‘여성스럽다’를 정의하자니, 그렇다면 ‘남성스럽다’는 무엇으로 정의해야 하는가

페미니즘? 모든 성이 사회적으로 평등해지기 위한 사상 혹은 가치관, 그에 따른 행동. 여기에는 남성, 여성뿐만 아니라 LGBT 등 다양한 성 정체성이 포함된다.

여성스럽다 ‘여성스럽다’라는 단어는 ‘섬세하다’ ‘배려심이 많다’처럼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정적이다. 여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그러하고, 내가 아직도 그 단어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인 듯하다. ‘여성스럽다’를 정의하자니, 그렇다면 ‘남성스럽다’는 무엇으로 정의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점이 남아 차마 정의 내리지 못하겠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옷, 화장등 스스로 가꾸고자 하면 꾸밀 것도 많고, 클럽과 술등 음주가무를 즐기고자 하면 놀 것도 많고, 여행이나 영화, 책 등 배우고자 하면 배울 것도 많아 즐기기엔 더없이 좋지만 여기에는,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뒤따라오는 걱정과 우려, 질타가 있다.

일상 속 실천 무거운 물건 함께 들기. 웬만하면 ‘남자가’ 혹은 ‘여자가’처럼 성별에 따라 고착화된 특징이나 성격 등을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은행권과 공공기관에서 문제가 되는 성차별 채용 비리. 서류, 면접 점수 등을 조작해 뽑혀야 할 여성 지원자가 탈락하고 남성 지원자가 뽑히는 채용 비리가 있었다. 블라인드 채용을 하고 있다지만 한국 기업에는 아직 남성을 우대하는 관행이 남아 있는 듯하다. 취업준비생으로서 보고 느낀 것이 있어 그 문제에 가장 공감하고 관심이 갔다.

나의 위대한 여성 엄마. ‘대단하다’ ‘멋지다’라고 느낀 사람은 몇몇 있지만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존경을 표할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나보다 힘든 상황에서 나고 자라 많이 교육받지 못했지만, 3남매를 흠 없이 키워낸 점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여자가 능력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요즘 세상에’ 결혼, 출산이 무슨 대수냐고 말할 때면 든든함(?)까지 느낀다.

#탈코르셋 여기서 코르셋은 어떠해야 한다고 틀을 만들고 규정지은 사회적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코르셋이라는 말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남자, 여자 혹은 제3의 성이라는 이유로 어떠해야 한다고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탈코르셋을 위해 모든 것을 코르셋으로 정의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화장하는 걸 진짜 좋아해서 매일 공들여 화장하는 여자가 있을 수 있고, 땀 흘리는 게 좋아서 매일 근육운동을 하는 남자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코르셋이란 개인에 따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미디어아티스트 뮤지션 최영

최영 미디어 아티스트·뮤지션 1990

가장 아름다운 나 몸과 마음 모두 편안하고 유연한 상태에 있을 때 아닐까? 좋아하고 욕심 내는 일에 몰입한 순간이나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순간을 떠올려봤다.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일은 어색하지만 즐겁다. 유한한 삶의 매 순간, 스스로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셀카를 한 장 찍어보겠습니다.

페미니즘? 여성에게 질문하고 그 대답을 경청하는 일.

여성스럽다 매력적이다, 멋지다라는 말로 폭넓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자신과의 싸움을 멈출 수가 없다. 다양한 강박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가 왜 이렇게 힘든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미성년자 신분으로 성폭행당했을 때. 당시 ‘이것은 나의 책임이고 수치스러운 일이며 비밀이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친구와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평소 잘 따르던 여자 선생님께 찾아가 크게울고 나서 겨우 한마디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병원에 좀 같이 가달라고.

듣고 싶지 않은 말 몇 살이냐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 뒤에 따라오는 멘트로는 ‘의외로 많네?’ ‘적네?’ ‘큰일이네?’ 등으로 다양하다.

일상 속 실천 눈치 보지 않는 것. 나는 이것이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젠더 이슈를 넉넉히 품는 삶의 태도 역시 중요하다. 좌우명처럼 늘 마음에 새기려고 한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 안희정 비서 성폭행 사건의 2심 유죄 판결.

나의 위대한 여성 아직도 나는 서지현 검사의 TV 인터뷰를 보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개인의 용기가 얼마나 뜨겁고 밝게 빛날 수 있는지 확인한 사건이다. 정말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소설가 우다영

우다영 소설가 1990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게 될 사람들이 모두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젠더 가치관을 세습받은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시간. 물론 불행한 사람에는 나 자신도 포함된다. 그런 스스로와 주변의 모두를 미워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함께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남자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한 어른이 나를 혼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나는 화가 나기보다 왜 그게 나의 역할인지 궁금했다. 오히려 화가 난 사람은 그 어른이었고 끝까지 내가 설거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때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는지 알 것 같다. 스무 살 이전에 나는 보호받아야 하는 ‘어린아이’에 속해 있다가 성인이 되면서 설거지를 해야 하는 ‘여자’가 된 거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살면서 여성스럽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냥 나다운 건데 그들끼리 지레짐작하고 흡족해하다가 내가 자신들의 예상을 벗어나면 깜짝 놀라곤 한다. 때로는 순수한 호의로 그런 말을 한다고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단지 내 특징들을 칭찬하는 의미로. 그럴 때는 그 사람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을 조용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여자라는 듯이. 왜 여성스럽다는 말이 이토록 불쾌한 말이 되었을까?

일상 속 실천 조금 사소하면서도 용기가 필요한 규칙인데, 나는 잘못된 성 인식의 발언을 한 사람에게 그 발언을 그대로 돌려준다. ‘걔 여자친구 싹싹하고 괜찮더라.’ 그래도 상대가 눈치를 못 채면 이번에는 성을 바꿔서 다시 말한다. ‘걔 남자 친구 싹싹하고 괜찮더라.’ 친구의 여자친구가 싹싹하게 굴어야 한다고 생각한 스스로의 인식을 깨닫고 그게 옳은지 다시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이전과는 달라지도록, 그 사람이 영원히 무뢰한 사람으로 남지 않도록 말이다. 더 이상 이런 시도도 하지 않고 사람에게 실망하고 포기하게 될까 두렵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젠더 갈등. 젠더 갈등은 특정 대상이나 경험에 대한 분노를 일정 젠더 집단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너무 단순하게도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거다. 하지만 진짜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형체도 무게도 없이 압력을 행사하는 뿌리 깊은 부당함이고, 그 부당함은 남성이나 여성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 안에서 작용하며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의 행동을 제약한다. 그 분명한 사실을 잊지 않고 분노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위대한 여성 리베카 솔닛의 모든 글을 좋아한다. 솔닛은 여자들이 여성에 대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거의 다 했고, 우리가 어렴풋이 마음속에 품고 있었으나 언어화하지 못했던 많은 의혹들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이야기했다. 한 여자의 딸로서, 또한 글을 쓰는 한 명의 여자로서 살아가는 작가의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을 추천하고 싶다.

#가스라이팅 남자가 여자에게, 여자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엄마가 딸에게 물려주는 지겨운 연쇄를 끊어낼 때까지.

#노브라 한 아이돌의 노브라 사진에 달린 ‘한두 번이어야 봐주지 적당히를 모른다’는 댓글을 봤는데, 이 세상 어디에도 타인의 허락이 필요한 가슴은 없음.

#GirlsCanDoAnything 여자는 물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남자가 비난받지 않고 그런 의지를 품듯이.

 

이영경 재무회계팀 인턴 1995

낙태 합법화 운동. 이 이슈는 개인이 아닌 사회가 공유하는 성차별적 인식의 집합체다.

페미니즘? ‘Just the way you are’. 브루노 마스의 노래 제목을 빌려서 말하고 싶다.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물질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다. 마치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화장실을 얻어냈듯이.

여성스럽다 70억 인구의 모든 변수를 무시하고 생각의 편리를 위해 이분하는 방식.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혼란스럽다. 내 주위 남자들은 그러지 않을 거라 믿으면서도 여자인 친구들이 겪은 데이트 폭력, 학교나 직장 내 성희롱, 유리 천장 등에 관해 들을 때. 누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남자가 한 손으로 여자인 내 두 손목을 너무나 쉽게 제압할 때. 2차 성징이 일어나는 중학생 때, 남자인 친구와 장난치다가 처음 제압당했을 때 굉장히 당황했다. 물리적인 힘 앞에서 무력함을 느꼈달까. 지금도 가끔 애인과 장난치다가 제압당할 때면 속으로 조금 놀란다.

나는 성별을 앞세운 칭찬을 하지 않습니다. 여성스럽다, 남자답다기보다 강인하다, 주체적이다, 섬세하다 등 개인이 지닌 장점을 칭찬하려고 노력한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낙태 합법화 운동. 이 이슈는 개인이 아닌 사회가 공유하는 성차별적 인식의 집합체다. 해당 여성은 물론 의사도 책임을 지는 임신과 출산에서 오직 남성만 배제돼 있다. 여성의 정신적, 금전적 상황은 무시하고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숙명으로 강요하는 등 문제가 많다. 성취할 것이 많아진 여성들의 요구에 사회는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가장 아름다운 나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달성하는 모습에서 스스로 자존감을 올린다. 요즘 새벽 운동 후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근처 카페에서 공부를 하다가 귀가하는데 야근의 고비에도 두 달 가까이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나의 위대한 여성 (외)할머니. 내가 여성 차별적 인식에 불편함을 느끼고, 개인적 성취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은 그 시절에도 아들딸 차별 없이 기르신 할머니의 깨어 있는 생각 덕분이다. 자식들의 출가 후, 면학하신 것도 정말 멋지다. 이런 할머니 아래서 자란 어머니도 나를 차별 없이 키웠고, 할머니 역시 손주들을 차별 없이 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