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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없던 건물 더시스템랩 김찬중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 한남동 오피스, 래미안 갤러리, 한강 보행자 터널 리모델링, 울릉도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그리고 더시스템랩 사무실이 자리 잡은 성수동의 우란문화재단까지. 더시스템랩 김찬중 대표가 지은 건물은 전에 없던 시도와 살을 깎는 고민의 결과물들이다.

건축은 예술이 아니다 건축을 위해선 큰 자본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자본은 내 돈이 아니다. 의뢰인이 자본을 투입하는 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투자 목적이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살 집을 제외한 모든 건물은 결국 투자 개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용적률이라는 의미에서 한 평이라도 더 찾아내는 게 수익으로 연결됐다면 이제는 얼마나 좋은 건물인지, 사람들이 어떻게 인지하는지가 가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예술은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면 되는 영역이지만 건축은 그렇지 않다. 시작점부터 다르다. 예술적인 표현과 감성을 담아 건물을 지었더라도 비가 새고 금이 가면 무슨 소용인가.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항을 모두 뛰어넘을 수 는 없다.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 어쩔 수 없다. 예산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지만 예산에 따라 실현할 수 있는 선택지가 다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을 생각하지 않고 일을 시작하는 건 오히려 위선 아닌가. 그다음은 ‘어떤 가치를 찾을 것인가’ 이다. 프로젝트마다 창출할 수 있는 가치가 모두 다른데 이 가치는 클라이언트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클라이언트뿐만 아니라 이 작업을 실제로 수행할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꼬물꼬물 만드는게 좋아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이 일을 시작하고 보니 작업 시간의 절반가량을 커뮤니케이션에 쏟아야 하더라. 내성적인 성격인데 말을 계속해야 하니 한때 고민스러운 지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했다.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해야 결과물이 좋다는 것도 알았다.

건축가로서의 기쁨 돌아다니다 순간순간 내가 설계한 건축물을 만난다는 건 큰 기쁨이다. 친한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건물을 반기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있다는 것도 기쁨이다. 내가 창조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생활한다는 것도 그렇고. 가끔 내가 설계한 건물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지나가다 안부가 궁금해 잠깐 들를 때도 있다. ‘안녕, 잘 있네’ 뭐 이런 안부를 마음속으로 건넨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곳에 내가 지은 건축물이 생긴다는 것도 보람이고 기쁨이다. 건축가의 즐거움이란 게 대단할 건 없다.

사람 사는 세상에게 영감을 받는다 세상이 영감을 준다. 세상을 이루는 많은 모습들. 가령 어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보며 구현하고 싶은 건축물을 떠올리기도 한다. 활주로에 비행기가 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뭔가를 느낄 때도 있다. 드라마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는다. 세상만사를 직접 경험할 수는 없지만 드라마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과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와 감독은 자신 의 상상만으로 드라마를 만들지 않고 실제의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본 끝에 만들어낸다. 그들이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드라마에는 메시지가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 쇼핑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는다. 말하자면 사람들을 관찰하는 건데, 쇼핑하는 사람들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혹은 혼자 쇼핑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들이 어떤 사람일지 예측해본다. 물론 맞는지 틀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목적은 하나지만 쇼핑의 목적은 굉장히 다양하다. 저마다 취향도 다르고. 쇼핑하는 커플을 보며 저 둘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구나, 여자가 남자한테 별로 관심이 없네, 저 남자는 다른 여자가 있는 것 같아 하는 식으로 추론한다. 건축은 결국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다. 건축은 인문학적 속성이 강하다.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건물을 설계할 수 있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체부동. 누군가 이곳에서 만나자고 하면 전날부터 설렌다. 체부동 전집 골목도 너무 좋고. 어렸을 때 이곳에 있는 성결교회에 다녔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교회가 엄청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커서 가보니 기억에 남아 있는 것보다 훨씬 작더라. 오래된 교회가 아직 있고,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크게 변하지 않은 동네의 모습이 좋다.

동네, 성수동 성수동이라는 동네는 스케일이 서로 다른 건물이 혼재한다. 새 건물 대부분은 지식산업센터 같은 큰 건물이고, 또 한편에는 구두 가게나 식당처럼 작은 건물들이 있다. ‘더 시스템랩’ 사무실을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건물로 옮긴 것도 이 동네의 매력 때문이다. 성수동에 이 건물을 설계하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이 동네에 5천2백 평 정도의 큰 건물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동네의 풍경을 해치지 않고 주변과 잘 섞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존재하는 섬처럼 만들 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의 자기 완결적인 건물로 완성하지 않고 틈을 많이 주려 했다. 1층만 보더라도 한 층 전체를 쓰지 않고 골목길을 하나 만들어 사람들이 일종의 지름길처럼 지날 수 있도록 했다. 건물 안 골목길을 지나면 비슷한 너비의 동네 골목길을 만나게 된다. 외관도 성수동의 특징을 살렸다. 여러 덩어리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주변 건물의 덩어리들과 유사한 비율로 쪼개놓은 것이다.

지금 떠오르는 나의 건축물 기억에 남는 작업물을 딱 하나 고르긴 어렵다. 내가 대단히 오래 일한 사람도 아니고.(웃음) 모든 건물이 생생히 기억난다. 저마다 다른 고유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쉽게 지은 건물이 없다. 울릉도의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도 그렇고 삼성동 KEB하나은행 건물인 플레이스 원도 지을 때 고생을 많이 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짓지 않았기에 몇 배의 노력이 들어간다. 검증된 방법 대신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가다 보니 노동 강도도 굉장히 세다. 새롭지만 건물 자체는 잘 구축되어야 하고, 물론 안전해야 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설계가 끝나고 구축해갈 때. 하다 보면 도저히 구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럼 무척 고통스럽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다 보면 ‘이건 정말 완성 할 수 없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잠도 못 자고 사람이 반쪽이 된다. 정말 고통스럽지만 그때마다 결심한다. ‘내가 다시는 새로운 걸 하나 봐라’라고. 팀원들과도 우리 이제 다시는 이 런 거 하지 말고 편하게 가자고 맹세하는데 이상하게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더시스템랩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들 모두 혁신적인 것에 큰 가치를 느낀다. 조금이라도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건축 말이다.

새로움을 지향하는 것 결국은 ‘똘기’가 있어야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기존에 했던 대로만 살아왔다면 문명은 정지되었겠지. 어느 구석에서 누군가 계속 ‘돌아이’ 짓을 하니까 변화가 생기는 것 아 닐까. 분야를 막론하고. 기존의 틀에서 벗어 나는 건 불안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틀에서 벗어나 혁신을 이루고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 건축학과 교수로 일할 때는 학생들에게 열정을 쏟는 일이 나의 운명이라 여겼다. 그런데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학교교육은 이 상향을 향해 있고 아름답고 바른 것을 가르치며 가야 할 지점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주지만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구체적인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교수실 한쪽에 작은 작업실을 두었다. 그렇게 대학원생 조교와 만든 작업실이 이제는 43명의 직원과 함께하는 회사가 되었다.